라떼 교사의 인권침해(?) 이야기
"인권감수성 말고 현장감수성이요."
대략 십 년 정도 된 거 같다. 교육 현장에 "인권"이 훅 하고 들어온 지. 낯선 일은 아니다. 창의성, 인성, 인공지능 같은 추상적인 용어에서 생존수영, 딥페이크 같은 구체성을 지닌 용어까지. 학교에는 들어오지 못할 게 없으니까. 신체발달과 정서행동발달도 검사하고 처리하는 곳이 학교다. 새롭게 학교에 들어오는 용어 중 반대하기 까다로운 용어들이 있다. 인권, 인성, 창의성과 같은 용어들이다. 한빛미디어 박태웅 이사장님이 지적하듯, 눈떠보니 선진국이 되어있던 대한민국에서는 그동안 이런 용어들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는 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물어야겠다. 도대체 인권이란 무엇인지. 어디까지 인권이고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으며 무엇만큼은 결코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인지.
놀랍게도(?) 여기에 대한 판단은 교사가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권감수성이 부족하기에. 그래서 인권감수성 높은 선지자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전파하고 다녔다. 전북특별자치도의 경우 '학생인권센터'(지금은 '교육인권센터'로 바뀌었다.)가 있고 인권 관련 연수를 할 수 있는 강사풀도 마련하였다. 이 분들이 하고 다니는 말 중 하나가 모든 구성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실의 규칙을 정할 때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뜻이다. 하늘에서(혹은 교사로부터) 뚝 떨어진 규칙을 누가 지키겠냐며. 규칙을 만들 때부터 학생이 참여하여 스스로 만들어야 규칙을 더 잘 지킨다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매우 그럴싸하다.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기 전까지는. 초등학교 1학년은 아예 말할 것도 없이 불가능하다. 그냥 6학년을 예로 들어보자. 무단횡단하면 벌금 300만원 같은 규칙이 등장한다. 수업 시간에 1분 이상 늦으면 앉았다 일어서기 100번 하기, 다른 사람 때리면 앉았다 일어서기 1000번 하기 뭐 이런 식이다. 자기 목 조르는 일을 진짜 하겠어? 하는 심정으로 투표를 해보았다. 거의 모든 학생이 찬성한다. 학급 회장이 진행한 회의에서 학생의 절대다수가 결정한 사항이 명백한 위법일 때, 교사는 이를 인정해야 할까 아니면 지도해야 할까? 나의 경우 후자를 택했다. 현행법을 예로 들며 아무리 우리 모두가 동의해도 현행법을 넘는 규칙을 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같은 일이 몇 번 더 반복되자 결국 볼멘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표현은 다 다르지만 결국 그냥 나보고 다 정하라는 말이다. 결국 내가 하나하나 제시하고 학생들의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다.
"선생님, 그런데 그 규칙 안 지키면 어떻게 되나요?"
"규칙 안 지켜도 되는 거면 아무도 안 지킬게 뻔하잖아요."
솔직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지금 당장 내가 규칙을 어기는 중인 현행범(?)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 굳이 따지자면 그만둬라, 하지 마라 말로 할 수는 있다. 그 말 무시하고 계속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수업을 방해하여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면? 학교 생활규정(심지어 인권센터 홈피에 탑재된)에 따라 이러이러한 조치를 할 수 있고, 학교 규칙에 따라 학교생활교육위원회에 징계를 요구할 수 있으며 심하면 교권보호 위원회도 열 수 있다. 교사가 직접 생활지도를 하는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벌어질 수 있으니,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른 지도와 징계를 마련했다.
하지만 내가 한 대답은 이렇다.
(정색하고,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을 목소리에 실어 단호한 눈으로) "왜, 넌 규칙 안 지킬 예정이야? 혹시 여기서 지금 정하는 규칙 안 지킬 예정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면서 일 년 동안 학교 다닐거다, 손 들어봐."
육군훈련소에서 2년 동안 조교(분대장)로 다져진 나의 복식호흡에서 우러난 내공의 압박이 성공해서였을까. 다행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하긴, 6학년 새학기 첫날부터 여기서 손드는 학생이 있을라고.(물론 이런 순진한 생각은 1,2학년 담임을 경험하며 와장창 박살난다.)
현장 교사들의 인권감수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다만 그 주장을 하는 인권전문가, 인권옹호관, 인권조사관 등의 사람들에게 현장교사로서 나 또한 똑같이 주장하고 싶다. 여러분도 현장감수성을 높여야 한다고. 그래야 학교 현장에서 정말로 인권을 서로 존중하고 서로 지켜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