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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Oct 24. 2021

[여름호] 마지막주 : 배가 고파지게 만드는 김라면님께

여름호 마지막 주제 : '편지'

 라면님의 이름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배가 고파집니다. 별로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안성탕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안성탕면을 특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저만의 비법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직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면 한 번 따라 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먼저 냄비에 물을 적당히 담아 불 위에 올립니다. 스프는 물이 끓기 전에 넣습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면을 넣습니다. 라면님도 봉지에 남은 부스러기를 털어 넣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면이 적당히 익었을 때 계란을 하나 풀어 넣습니다. 계란국처럼 잘 풀어내야 합니다. 그릇에 참기름을 큰 스푼으로 두 스푼 두른 다음에 잘 익은 라면을 옮겨 담습니다. 마지막으로 볶음참깨를 작은 스푼으로 한 스푼 뿌려줍니다. 그러면 완벽하게 참깨라면의 맛이 나게 됩니다. 이럴 거면 그냥 참깨라면을 사서 끓여먹으면 될 일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라면을 '요리한다'와 '끓인다' 정도의 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글을 쓰며 살아가는 것'과 '그저 살기만 하는 것'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살기만 해도 충분한 세상이지만 굳이 글을 쓰며 살아가는 라면님은 분명 제 레시피를 따라 해 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그나저나 요즘에는 밤에 에어컨을 켜지 않고도 잘 자고 있습니다. 여름의 한복판에서 처음 만난 우리가 서로의 글을 나눈지도 벌써 한 달도 더 되었다는 소리지요. 저는 아직도 라면님의 첫 번째 글을 읽었을 때 느꼈던 서늘함이 잊히지 않습니다. 라면님이 슬쩍 바꿔치기하시기 전의 글 말입니다. 라면님이 말씀하셨던 글로 하는 피서가 이런 걸까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라면과 같은 글은 어떤 맛이 날까 궁금했었는데, 뼛속까지 시원한 백종원 선생님의 냉라면이었습니다. 가끔은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혹여 라면님이 차디찬 겨울 바다에 몸을 던지기라도 할까 봐, 슬픔에 잠긴 어른이 되어버릴까 봐. 그럴 때마다 저의 이런 걱정이 괜한 것이기를, 라면님이 너무나도 글을 잘 쓴 것이기를 바라왔습니다.


 뜬금없지만 어쩌면 우리는 자리가 바뀌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늘 차갑고 냉철한 맛을 흉내 내고 싶어 하지만, 이내 뜨뜻미지근한 맛 밖에는 낼 수가 없었거든요. 자리가 바뀌어 있다고 적고 나니 서로가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네요. 아니면 이렇게 합시다. 우리는 같은 곳에 서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요.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우리 둘의 글은 전혀 다른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같은 곳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 외로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 듣고 보니 그렇지 않나요? 너무 다른 우리가 사실은 닮아있습니다. 그럼에도 각자 자신만의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제 라면님은 안성탕면을 마주칠 때마다 제 생각이 나실 겁니다. 하지만 너무 억울해 하시지는 말아주세요. 라면님의 글을 먹고 나니 제 뱃속에 라면님이 끓인 온갖 맛이 오래도록 남아버렸거든요. 이런 말을 하면 단번에 제가 누구인 지 알아채실 테지만, 아니 이미 알아채셨을 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라면님의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매번 정성스레 제 글을 읽어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긴 편지를 쓰면 영영 긴 이별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2021년 여름의 끝자락에서

from.어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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