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심층리뷰

by 아무



★★★★★

5.0 / 5.0 구부러지지 않는 나무는 부러지는 법.



노 스포 리뷰


이번 리뷰부터는 문어체보다는 구어체를 사용해 볼까 합니다. 손에 더 익는 맛이 있네요.


<어쩔 수가 없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와 그것에 저항하다 휩쓸리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불쾌하고 더럽게 진창을 휘젓고 다니면서 늪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달까요.


박찬욱 감독의 주특기를 꼽자면, 저는 더러운 인간이라 할지언정 불쾌하리만치 아름답게 그려내는 색채라고 하겠습니다. 화면에 잡히는 거의 모든 캐릭터와 장면이 수려하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더 만수의 악행이 도드라지게 보이기도 하죠.


폭풍우 속에 흩날리는 나뭇가지처럼, 쏟아지는 눈을 그대로 맞고 선 나무처럼. 우리는 바람과도 같이 지나가는 세상 속에 버티고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래는 스포일러가 가득한 리뷰입니다. 저의 미흡한 글 솜씨로는 스포일러 당하기 아쉬운 영화이니, 꼭 원하신다면 영화 관람 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는 주인공 만수가 회사에서 장어를 선물 받아서 가족과 함께 그릴에 바비큐를 해 먹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만수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제지를 만드는 공장입니다. 그의 종이 사랑은 어찌나 지극한지, 직접 온실을 만들어 분재를 가꾸기도 하고 저택 앞마당에 직접 나무를 심기도 합니다. 만수의 아내는 회사가 명절도 아닌데 장어를 선물해 줬다며 남편이 회사에서 좋은 평판을 얻는가 보다 하며 좋아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중요한 장면이 흘러갑니다. 먼저, 찬란하게 떨어지는 햇빛 아래 만수와 가족들이 포옹을 하는 모습. '다 이루었다'라고 말하며 미소 짓는 만수의 표정을 보자면 정말 만족스럽고 행복해 보입니다. 큰 저택에, 토끼 같은 자식들에, 미모의 아내, 좋은 차, 거기다가 두 마리의 레트리버까지. 그렇지만, 이 행복은 머지않아 깨지게 되죠. 그것은 모래 위 집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택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산 데다가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와 원금은 땅을 판다고 나오진 않으니까요.


사실, 이 집은 소비의 규모가 턱도 없이 큽니다. 매달 그 큰 저택을 관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테죠. 딸은 첼로를 하는데, 예체능이라는 게 그렇듯이 웬만큼 잘 사는 집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재능을 키우려면 가세가 기울기도 합니다. 차 보험료도 나가겠고, 제대로 계획하지 않으면 4인가구 식비도 우습게 볼 게 아닙니다. 거기다가 대형견 키우는 값은 또 어떻고요. 이 모든 소비의 원천은 다름 아닌 만수의 직장, 단 하나입니다. 젠가의 맨 밑바닥 조각을 빼면 전체가 기울어 쓰러지듯이, 파도가 모래를 쓸어가 버리면 집이 무너지듯이. 그렇게 만수의 가족은 서서히 무너져 갑니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아주 작은 소리까지 증폭해서 들려주고, 영화의 몰입에 방해가 되는 타이밍, 특히 사람이 대사를 하고 있을 때 겹쳐지는 부분에 거슬리는 소리들을 집어넣습니다. 만수가 회사에서 온 감사장 종이를 쓱하고 손으로 쓸어보는 소리가 아주 생생하게 들려서 소름이 끼칠 정도죠. 의도적으로 관객에게 불쾌감을 심어주고 앞으로 있을 일을 암시하는 재밌는 요소입니다. 돌비로도 개봉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는데, 그만큼 사운드가 중요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만수는 제지 회사에서 관리직을 맡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짧은 가방끈에도 틈틈이 사이버 대학에서 학점도 이수하고, 동료들과 튼튼한 유대관계도 만들면서 유지한 직장이죠. 그런데,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가 요새 종이라는 도구를 얼마나 쓰겠습니까? 아직도 여전히 사회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학교에서 교과서를 태블릿으로 바꾸거나 회사의 문서 작업을 클라우드로 대신하는 등, 불과 십여 년, 이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 소비하는 종이의 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았을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만수도 직장에 뼈를 묻고 싶을 정도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직장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AI의 등장입니다. 그나마 축소된 일자리도 AI 자동화 시스템이 다 가져가는 마당에, 그나마 만수는 관리직 자리를 유지해 주는 대신, 자기 동료들 중 일부를 해고할 것을 통보받습니다. 여기서 만수는 '어떻게 나랑 동고동락한 직원들을 버리라는 거냐'며 항의하지만, 수뇌부는 만수의 말을 한마디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습니다.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기계를 쓰면 인력비의 반 이상을 절감할 수 있는데, 기업의 입장으로 보나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보나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결국 만수는 해고되기에 이르죠. 그렇게 실직 상태로 13개월이 흐릅니다.


그 와중에 만수의 재밌는 점이 나오는데, 만수는 자기가 할 말을 미리 리허설해 보고 본인 생각에 괜찮은 부분은 손바닥에 빨간 펜으로 적어 실전에서 커닝을 하듯 말합니다. 어떻게 보자면 만수의 캐릭터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일단 되는대로 계획하고, 계획이라고 불러주기도 애매한 계획에서 벗어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이중적인 성격 말입니다.


만수는 자기 나름대로는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여깁니다. 종이의 재질이나 무늬, 무게 같은 것들, 다시 말해 일반인의 시선으로 볼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집착적 증세를 보이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는 만수가 이후에 살해하게 되는 세 사람, 즉 제지 공장 관리직으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나타납니다.


이성민 씨가 연기한 구범모는 음악을 꼭 바이닐 레코드 판으로만 듣고 편지는 수기로 작성합니다. 차승원 씨가 연기한 고시조는 제지업계와 마찬가지로 사장되어 가고 있는 시장인 내연 자동차를 고치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희순 씨가 연기한 최선출은 아내에게 시골 주택에 가서 살자며 설득하다가 별거를 당하게 됐습니다. 이 셋은 마치 짠 것처럼 만수와 많은 부분 닮아 있습니다. 가장 비슷한 부분이라고 하면, 변화에 적응하기를 거부한다는 점이겠죠.


가정생활의 원복과 자폐 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딸의 미래,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위해 만수는 이 셋을 살해하려는 끔찍할 정도로 멍청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깁니다. 이 모든 것을 이뤄줄 단 하나의 무엇은 제지 회사에 재취업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요.


영화의 제목이 <어쩔 수가 없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변화를 거부하는 네 남자는 어쩔 수가 있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만수는 분재를 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솜씨가 좋아서 분재원을 차리거나 식물원 콘셉트의 전시장이나 카페를 해도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도 그렇게 말하고, 앞서 언급한 그 고급 생활을 실직하기 전과 다름없는 수준으로, 퇴직금과 저축해 놓은 돈만으로 13개월을 유지할 수 있었을 정도면 분명히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만큼 괜찮은 시드머니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하게 구범모는 레코드 판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심지어는 장인이 카페를 차려주겠다며 제안까지 했었고요. 고시조는 구두 판매업을 하면서 번듯한 수입은 아니어도 딸이 친구들하고 놀러 갈 때 눈치 안 보게 챙겨줄 수 있을 정도로는 수입이 됐습니다. 최선출은 말할 것도 없이 와이프 말대로 그 집은 적당히 포기하거나 타협하고 재결합하면 되는 일이었죠.


이 네 사람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괜한 이기심과 욕망에 시달리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 '내 욕심을 채울 수 있는 것'만 고집한 거죠. 만수는 이들이 고집을 꺾을 인간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본인 역시 내 자식들의 미래나 내 와이프의 행복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나는 원래 그런 인간이다', '어쩔 수가 없다'면서 게으른 변명과 합리화만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만수는 자신의 라이벌 셋을 모두 제거하기에 이릅니다. 이 과정에서 또 골 때리는 장면을 자주 연출하는데, 만수는 누가 봐도 초짜 티가 너무 납니다. 총이라는 무기는 소리가 상당히 큽니다. 당연히 내 주위에서 격발음이 들리면 누구라도 두리번거리게 되겠죠. 그런데도 번번이 만수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증거를 훼손할 생각도 하지 않고, 단순하게 이 시체를 어떻게 처리하나 하는 것에만 끙끙댑니다.


또, 이 인물은 참 답이 없다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잘 아는 사람이 쉽겠습니까, 아니면 생판 모르는 사람이 쉽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안면이 없는 사람이 백 번은 쉬울 겁니다. 그런데 자꾸 만수는 자기가 죽이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을 빨리 처리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느리고 우유부단하게, 심지어 그 사람에게 동정심과 동질감을 느끼면서 살해합니다. 오히려 그러지 않았다면 총 한 발씩만 맞고 깔끔하게 죽었을 사람들이 너무나도 끔찍한 모습으로 고통을 음미하며 사망합니다. 고시조는 그나마 총 한 발에 갔지만, 나중에 시체를 처리할 때에 이르러서는 또 어설프게 머뭇거리고 움찔대다가 시신 토막 내는 걸 포기하고 말죠. 그리고 하는 짓이라는 게, 인간을 최대한 접어서 공 모양으로 만드는 거라뇨. 차라리 토막 내는 게 덜 기괴할 정도입니다.


제일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최선출은 더 가관입니다. 인간적인 감정에 죽이는 걸 망설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러면 차라리 머리를 쏴서 한 방에 보낼 것이지 더 번거롭고 창의적이게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합니다.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여실히 증명하고 있죠.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겨우 '당신을 안 죽이면 앞에 죽은 두 사람은 그냥 개죽음되는 거 아니냐'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로 또 한 명의 사람을 죽음에 몰고 가는 것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앓던 이를 펜치로 쑥 빼버리듯이 마지막 남은 한 가닥 양심마저 없애버렸다는 의미였을까요.


그 과정에서 만수의 아내는 남편의 살인 사실을 알게 되고야 맙니다. 사실, 모르기가 힘듭니다. 살해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과정이 너무 볼품없이 어설프거든요. 아빠가 시신을 처리하는 걸 본 것 같다는 아들에게 엄마는 '아빠가 돼지를 묻었다'라고 합니다. 그 위에 심긴 사과나무를 위해서 말입니다.


작품 초반, 만수가 보고 있는 영상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종이 회사가 숲을 다 베어버린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나무를 베면 그 자리에 또 나무를 심어 자라게 한다.



그리고 만수의 아버지는 지금 만수가 살인까지 불사하면서 지키려고 하는 저택의 창고였던 곳에서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했죠. 그 자리는 현재 만수가 온실로 개조해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은 나무 분재를 키우고 있는 곳입니다. 만수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나무에 주는 비료는 똥, 오줌으로 만들었고, 그 더러운 비료에서 우리가 먹는 과일이 맺힌다는 것.


실제로 만수가 모든 살인을 완수하고 제지 회사에 취직해서 첫 출근을 하던 날. 만수의 딸은 여태껏 한 번도 들려주지 않던 첼로 연주곡을 엄마에게 들려줍니다. 더러운 비료를 먹고 자란 나무에서 탐스러운 과실이 열리는 법이라는 만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입니다.


이 작품은 내내 '빛'이라는 요소를 강조합니다.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첫 시퀀스에서 만수가 햇빛 아래로 가족들을 불러 포옹을 하고 있는 장면과 만수가 면접을 보러 갔지만 그렇게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의 면접관 뒤에서 햇빛이 다른 건물에 비쳐 만수가 반사광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장면입니다. 만수는 결국 비가 잔뜩 내리는 어느 날 재취업에 성공해 첫 출근을 합니다. 영화에서 흔히 비가 내리는 장면은 누군가의 몰락이나 상황이 안 좋아질 것을 예보하는 역할을 합니다.


만수는 결국 다른 경쟁자들을 모두 죽인 대가로 그토록 원하던 제지 회사 관리직을 맡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공장에서 홀로 여기저기를 누비는 위로 AI에게는 필요 없는 조명이 저 멀리서부터 마치 공포영화의 그것처럼 차례차례 꺼져오는 장면은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 만수의 앞날이 어두울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수미상관의 구조를 띄고 있는데, 작품 초반에는 자신의 동료들을 자를 수 없다며 자기가 해고되기까지 한 만수가 이제는 경쟁자는 다 제거해 버리고 혼자만 남은 것을 자축하듯 소리를 지릅니다. 애초에 변화에 발을 맞춰서 필요 없는 인원을 감축하고 원래 다니던 회사에 잘 다녔으면 이 모든 살인과 가정의 파탄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돌아 돌아왔지만, 결국은 같은 자리로 온 것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사건이 겨우 어설프고 애매한 연민에서 왔다는 것이 만수의 위선을 강조합니다.


흥미로운 연출을 하나만 더 말하자면, 주인공들의 옷 색과 패턴입니다. 작중 초반에는 과할 정도로 강렬한 패턴과 색감의 옷을 입고 나오던 만수와 아내의 옷 색이 진행되면서 어떻게 어두 칙칙해지고 종반부에는 결국 무채색밖에 남지 않는지를 생각해 보면, 만수가 그토록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던 가족은 이미 손에 쥔 모래처럼 빠져나간 뒤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염혜란 씨와 이성민 씨의 연기는 그야말로 혼신을 다한 연기였습니다. 이성민 씨는 총에 맞지 않았어도 이미 고혈압으로 쓰러질 것만 같은 울그락불그락한 피부까지 표현해 내고 염혜란 씨는 평생 '여성'이라는 타이틀 하나만 의지하고 살아온 표독스러움을 그보다 잘 그려낼 수 없었습니다.


이외에도 만수의 아내가 가지고 있는 섹스심벌적인 은유, 장면 하나하나 속에 들어있는 미장센, 만수의 양아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등을 생각해 본다면 훨씬 더 다채롭게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번에 또 다른 리뷰로 돌아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