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콤한 흑설탕 캔디의 시간
"할머니는 저의 롤모델이에요." 엄마의 팔순기념 영상 속에서 조카는 이렇게 말했으나,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가 없다. 왜냐고? 그냥 취향과 성격문제일 것이다. 엄마는 소녀감성에 판단기준이 좋고 싫음이라는 것부터 나와 많이 다르다. 나는, "사람이 어떻게 좋고 싫은 것을 이유로 매사 결정해?" 이런 생각을 하니까. 어쩌면, 엄마가 '좋아', '싫어'라고 얘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엄마의 모든 판단의 기준이고 결정기준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나는 그런 말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엄마는 언제부터 할머니였을까? 어린 시절 앨범 속 엄마는 언제까지나 예쁘고 젊은 모습 그대로인데 말이다. 아마도 맏딸인 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처음으로 '할머니'라고 불렸겠지? 그때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도 젊었다. 그러던 엄마가 이제는 원래부터 할머니였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할머니'로 불린다. 우리를 돌보던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돌봐드려야 할 존재가 되었다. 내 아이들이 어릴 적만 해도 친정에 가면 숙박과 끼니를 그냥 해결했었는데. 어느덧 그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고, 나도 나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의 이름은 자연스레 '할머니'로 고정되었다.
언제부터였나, 한밤중에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했던 게...
엄마의 팔순 기념 영상 속에는 우리 세 딸과 사위들과 손주들의 축하메시지, 그리고 나의 노래가 함께 들어있다. '어머니의 마음'을 제대로 부르기 위해 10번도 넘게 연습해서 담았다. 그 노래를 듣고 있자면 숙연해지는 것이 목이 잠길 지경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일상 속 나는, 출근하면 커피부터 찾고, 점심 먹고 산보를 하고, 퇴근 후에 운동을 챙겨가면서도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왜?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렇게 일주일이 금방 가고 주말이 와도 집안청소와 빨래 같은 것으로 시간을 다 보내며 전화하지 않는다. 반면, 엄마는 매일 단톡방과 개인톡에 안부를 전하는 톡을 남긴다. 나는 아주 가끔 답장을 한다. 명절과 어버이날, 생신에 동생들과 조카들을 모두 모아 만나는 것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엄마와 우리 자매, 그렇게 4명이 만나는 것으로 사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할머니에게>라는 책에 나오는 글들을 읽으며 나는 현재의 할머니인 엄마와 미래에 할머니가 될 나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 이 책에는 총 6편의 작품이 소개되는데, 그중 백수린 작가의 "흑설탕 캔디"가 가장 가슴에 남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할머니가 할머니의 집을 포기하고 우리와 같이 살기로 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가 할머니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 또한 안다"
이야기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연히 할머니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며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잔잔한 마음으로 써 내려가고 있다. 처음에는, 엄마 없는 5살, 3살의 손주들을 돌봐야 해서, 그리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을 때는 아들이 프랑스로 발령이 나서, 지인들에게는 "아이들은 내가 없으면 안 되니까요."라는 말로 담담하게. 자신의 시간과 삶을 포기해 가며 손주들을 돌봐온 할머니의 희생과 고독을 그때는 몰랐었다고 말한다.
"마음은 팔딱팔딱 뛰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작가는 얘기한다.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할머니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의 정체는, 언젠가 남편이 입원해 있던 요양병원에서 보았던 뇌졸중 환자처럼 전신이 마비되고도 또렷한 의식을 지닌 채 울부짖으며 여생을 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시간, 프랑스에서 브뤼니에 씨와 함께 피아노를 치고 연애감정을 느꼈던 1년여의 시간은 아버지의 귀국으로 또다시 단절되었다. 브뤼니에 씨가 건넸다는 작별의 말에 대해서는 대명사 두 개와 동사 한 개라고만, 할머니는 적어놓았다. 대학을 다녔었고, 일본어에 능숙하고, '에델바이스'를 영어로 부를 줄 아는, 교육 수준이 높은 할머니는 언제나 세련되고 기품이 있어서, 그런 할머니를 동경하는 눈빛으로 우러러보곤 했다는 부분에서는 '할머니는 저의 롤모델이에요' 하던 조카의 말이 생각났다.
나의 엄마, 아이들의 할머니!
내가 중학생이던 때, 학부모회의에 가면 학부모들도 선생님들도, 공부 잘하는 아무개 엄마시냐며 환영하고 반기는 바람에, 엄마의 어깨가 저절로 으쓱해지곤 했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또, 성적발표가 있을 때마다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나의 엄마! 교육열 높았던 엄마 덕분에 어려서 책도 많이 읽고, 장래에 대한 희망과 포부도 가져볼 수 있었다. 그 공부 잘하던 맏딸이 이제는 그저 평범한 중년의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때로 홀로 서글퍼진다. 아니, 미안한 마음이 불쑥불쑥 밀려든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할머니와 꿈속에서 만난다. 할머니는 '나'를 안아주는 순간에도 주먹을 꼭 쥔 채 펴지 않고서 말한다. "이건 내 것이란다" 독자에게, 그건 아마도 할머니가 어릴 적 맛보았던 달콤한 '흑설탕 캔디'였을 거라는 짐작을 남겨놓는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흑설탕 캔디'는 그렇게 다시 맛보고 싶은, 돌아가고 싶은 행복의 순간일 것이다. 이제, 할머니가 되기 전의 나의 엄마에게도, 언젠가 할머니가 될 미래의 나에게도, 감사와 격려를 함께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