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을 걷다

[Dark Soul 3]

by AnKaa

모든 시절이 괴롭고 우울했지만 더 심한 해가 있는 법이다. 가장 우울하던 시절, 친구의 선물로 시작되었던 경험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원래부터 게임을 좋아했던 나는 프롬소프트 웨어의 게임 [다크소울] 시리즈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마치 글에 등급을 나누고 권위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다크소울] 시리즈는 권위를 두르고 있었다. 음침한 분위기, 끔찍한 조형의 캐릭터들, 악명 높은 난이도. 다크소울을 시작할 때 나는 어떤 게임도 지속해 나갈 에너지가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였다. 나는 삶의 무의미와 죽음에 대해 매일 곱씹고 있었다.


[다크소울]은 어반판타지라고 불리는 어둡고 끔찍한 세계를 기반으로 한다. 신화시대의 종말이다. 최초의 불, 소울을 발견한 신들이 번영기를 연다. 불이 사그라들자 최초의 왕이자 신은 자신의 몸과 혼을 장작 삼아 불을 연명했다. 대대로 왕은 자신의 몸을 바쳐 시대를 연명해 갔으나 불은 약해졌고 말세의 징조가 하나둘 나타난다. 사람들은 죽지 못하는 저주를 받았다. 저주는 무작위로 번졌다. 기억을 잃고 죽지도 못하는 사람뿐인 종말의 시대, 플레이어는 불을 연명하라는 모험의 사명을 받는다.


꺼져가는 불과 세계. 직관적인 상징을 납득시키듯 마주치는 모든 것이 기괴했다. 다른 게임에서 본 적 없는 충격적인 디자인의 괴물을 연달아 만났다. 어딜 가도 사람들은 죽어있었다. 사실 이 세계에선 시체가 된다는 건 곱게 가는 것이었다. 불사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은 치매를 앓으며 영원히 생전의 습관을 되풀이했다. 주인공은 불을 연명시키기 위해 희생제의를 되풀이한다. 즉 장작이 되길 거부하는 이들을 죽여 땔감으로 바치는 것이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멸망을 외면하고 도피하는 사람. 죽는 순간까지 인간됨을 추구하는 사람. 인간을 포기하고 용이 되려는 사람. 새 시대가 온다는 종교를 믿고 식인을 하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욕망에 충실한 사람. 기존의 세계를 유지하려는 사람, 대부분의 마주치는 인물은 모험 중에 죽는다.


멸망 앞에 어떤 선택을 해도 죽는다. 가혹한 세계를 거닐며 모험을 따라갔다. 이상하게도 죽음을 곱씹던 나에게 [다크소울]은 큰 위로로 다가왔다. 왜 그랬을까. 곧 사라질 세계 안에서 발버둥 친 경험은 하나하나 소중한 것이 되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물과의 대화를 기억했고, 유품과 소울에 얽힌 이야기를 외웠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서 작은 화톳불의 온기로 어둠을 견뎌보려는 밤이 좋았다. 목숨을 건 대등하고도 절박한 전투가 좋았다. 덧없는 생을 미련 없이 구가한 동료가 좋았고, 끔찍한 모습이 되어버린 생물들에게서도 의미를 찾았다. 죽음은 무섭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마치 게임 자체가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두려움을 다독여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해서 감정이 요동친다. 고통, 슬픔, 두려움, 억울함, 허무함, 집착, 분노, 미련. 그러나 그것뿐일까. 사라짐이 아름다워서 흘리는 눈물도 있다. 감사, 씁쓸함, 잘 정리한 후련함, 보람, 담백한 직시, 사랑, 최후까지 기뻐할 용기.


불은 꺼질 것이다. 새로이 불이 타올라도, 아니어도 좋다.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죽는 꿈을 꾼 10살 이후로 늘 한 켠에 밀쳐두었던 죽음의 공포, 무의미의 공포를 마치 친구처럼 내 곁에 둔다. 그래도 된다.

작가의 이전글정체성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