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서사시

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을 라면받침으로 쓰는 이야기

by AnKaa

나는 평생을 딴짓에 한눈이 팔리는 학생이었다. 그 기질이 지금이라고 달라지지 않아서 [소설의 이론]을 처음 접한 이례로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완독한 적은 없다. 지금도 책장 한켠에 잠들어 있다. 이 글 역시 [소설의 이론]과 아무 상관이 없다. 단지 별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대학교 처음 들어간 수업에서 지적이고 멋들어진 교수의 그 한 마디에 나는 홀려버리고 만 것이다.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 게오르그 루카치


단지 그 한 문장이 멋있다고 생각해서 꽂혔을 뿐 당시의 나는 루카치의 이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고 이해하고 있느냐하면 아니다. 그러나 별하늘의 시대를 가정한 세계관 자체에 대해서 떠오른 게 몇 줄 있다.


게오르그 루카치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자. 정작 그의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단지 첫 구절. 별하늘을 보고 길 찾던 시절이 복되다는 문장의 아름다움에 겉멋들여 읽었다. 나는 내가 그의 문장 속 그리스인들과 어떤 부분을 공유, 공감한다고 느낄 정도로 문장에 심취했다. 그 문장을 시대를 잘못 태어난 비극으로 이해했기에. 나의 순박한 이해는 어찌보면 정말 그러했다. 왜냐하면 그 문장은 내 심상 - 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은 모든 이의 세계관이 하나인 분열없는 시대였고, 발명된 개인과 자아 대신 편안한 숙명이 죽음까지 함께했다. 현대적 인간은 문장으로만 말할 뿐 이해할 수 없는 감각아닐까. 모든 이가 총체성의 축복을 누리는 세계를 가정하는, 존재한 적 없는 것에 대한 향수에 대해서 '지금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저 어딘가에 있을것이다.'라는 감각만큼은 아마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것이다.


나는 루카치와 달리 마르크스에서 총체성을 발견할 수 없다. 나에게 별이란 길을 알려주는 존재였다. 나에게 별은 중요한 상징이며 그것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있다. 앞에서 현대적 인간은 총체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으나 모순되는 진술을 하자면 나에게 총체성은 가졌으나 잃어버린 것이 맞다. 왜냐하면 나의 유년기는 가톨릭이었고 그 안에서는 질문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삶의 고통에 신이 응답하지 못했을 때부터 질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래서 그가 말한 향수를 공감한다. 그것은 거창한 그리스 신화시대가 아니어도 된다. 모두가 지나친 유년기여도 되겠지.


지금의 관점에서는 그런 이상적인 별하늘은 완벽한 세뇌공동체, 군체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총체성에서 벗어난 외부의 시선은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한다. 나는 나이를 먹고 있고 세상에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 쉽게 바꿀 수 있는건 하나도 없으며, 심지어 내 육체, 마음, 능률조차 그렇다는걸 매일 배우고 있다. 쉽게 보수화, 자기보전 위주로 되기 쉬운 흐름이고 내 안에서 예전의 윤리에 대한 강렬한 열망 - 그것이 영웅주의나 합리화, 권력획득 등의 사리사욕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만 -이 사그라드는, 선량함보단 내 욕망과 이익에 충실하고 싶어지는 정동을 느낀다. 겸사겸사 행복한 삶을 사는 김에, 보람있는 일도 같이 하고 싶다는 그런 욕심까지 내고 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첫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