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어려워 잊을 수 없는 인도의 기억들
Incredible India
인도에 2005년 7월 달에 처음으로 방문한 이후 2009년 11월말까지 약 4년 6개월의 주재원 생활을 했다
이후 23년 1월에 다시 방문한 인도는 말그대로 상전벽해였다. 업무상 출장인지라 공항에서 고객사 방문까지 촘촘히 정해진 일정에 정해진 루트, 정해진 사람들이지만 눈에 보이는 변화는 분명했다, 특히 뉴델리 인근의 구루가온, 노이다 등 신도시의 변화는 말 그대로 incredible India였다.
2005년 인도에 처음 랜딩 했을 때 뉴델리의 첫 인상은 타이어 타는 냄새가 강하게 나는 탁한 공기를 가진 도시였다. 그 당시 뉴델리 국제 공항은 한국의 중소도시의 시외버스 터미널을 연상케 할 정도로 열악했다. Duty free shop은 사실상 없었고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길은 전쟁으로 폭격 맞은 도시를 연상케 했다. 심야에 도착한 별 5개짜리 호텔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올라가던 중 정전이 발생해 난생 처음인 낯선 도시의 엘리베이터에서 몇초 동안 갇히는 경험을 하였다. 후끈한 공기가 엄습하여 머리에 후끈한 열기를 느끼는 그 몇초 동안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인도에는 이제 많은 우리 기업과 개인 사업자들, 유학생까지 진출해 있다. 그래서 인도에 대한 정보도 이미 넘쳐난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인도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 흔하고 가치가 없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살면서, 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내가 경험한 얘기들이 오히려 가치가 있는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세우고 운영하면서 경험한 다른 사람, 다른 문화, 다른 생각들이 어떻게 보통의 한국 샐러리맨인 나에게 다가왔고, 거기서 나의 알아차림은 무엇이었는지를 나누고자 한다. 몇 분이나 읽을지 모르지만 글을 읽는 분들에게 그만한 가치를 드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 작은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할 것이다
이름과 출신지역을 묻는 인도인의 Frame
처음 만난 사람과 상호 인사할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이 분은 어떤 분일까?라는 호기심은 국적을 막론하고 사람이 갖는 보편적인 욕구일 것이다. 인도 사람들도 마찬가지 이지만 그 관점(frame)이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약간 차이가 있다고 본다. 이름과 고향을 얘기하면서 이 사람의 카스트(Varna, Jati)를 가늠해 본다. 엄밀히 얘기하면 카스트는 영국사람들이 인도의 고전 문헌속에 나오는 Varna( 거시적으로 교과서에서 배운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사, 수드라 등 4계급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방식)를 기반으로 정리한 개념이고, 실제로는 이보다 더 복잡한 개념인 잣티(실제 마을이나 지역 사회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구분할 때 쓰는 수천 개의 세부 집단)를 가늠해 본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긴다. 그러면, 이렇게 상호간의 카스트를 가늠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우선은 계급간에 섞임으로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막는다. 이들에게는 이상적으로 정돈된 질서가 카스트에 의한 사람구분인데 이것이 허물어지면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이 생긴다는 관념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나아가 다른 계급간에 접촉이 생기면 불결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가령, 인도의 H 자동차 현지인 대표가 카스트중 가장 높은 브라만 계급(브라만 중에도 최상위 브라만)이었는데 이 양반이 출장을 가게 되면, 전담 요리사(역시 브라만 계급)까지 데려가야 한다. 아니면 그들만이 먹는 불순하지 않는 별도의 음식을 준비하여 이를 여행기간 동안 내내 그것만을 먹는다. 재미있는 것은 인도의 모든 호텔의 주방장은 브라만 계급이라는 것이다. 논리는 이렇다. 높은 계급이 만든 요리는 아무도 더럽히지 않는 것이기에 호텔은 자연스럽게 최상위 계급 출신의 요리사를 쓴다는 것이다. 인도인 직원이 한국에 출장을 오면, 반드시 음식에 대해 사전에 물어서 이들의 계급을 더럽히지 않는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 우리 기준에 의해 회를 먹게 한다든지 하면 큰 결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21세기임에도 인도인들이 여전히 카스트나 잣티에 민감한 이유는 여전히 카스트나 잣티가 혼인, 식사, 거주, 직업 등 실제 생활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가령, 혼인 상대를 구할 때 보면 얼마나 카스트가 민감한지를 알 수 있다. 다른 계급과 결혼을 하면 둘중의 낮은 계급으로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불가촉 천민이 된다고 하면, 이것이 같은 성을 가진 집안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젊은 청춘 남녀가 눈이 맞아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계급이 달라 자신은 물론 자기 집안 모두가 불가촉 천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종의 명예 살인이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21세기에 사는 인도인들이 과거에 비해 카스트를 생각하는 것이 완화 되었고, 세계 곳곳에 이민을 간 인도인이 많은 상황에서 보다 자유로운 종교나 세계관을 갖게 되었을 것이지만, 여전히 힌두교를 믿는 대다수의 인도인에게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람을 구분하는데는 카스트나 잣티가 작동되고 있다. 결혼시기의 청춘남녀가 비슷한 계급 출신의 파트너를 찾는 일간지 광고면을 여전히 발견할 수 있는데 보통 이를 matrimonial ads(힌두어로 Vivah vijnapan)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신랑이나 신부감을 설명하고 파트너를 찾는 광고가 특정 요일마다 실리는데 보통 나이나 직업 소득외에도 카스트나 종교, 별자리에 대한 정보가 실리고 반대급부로 요구도 한다. 이를 통해 온집안이 불행해지는 결혼을 막고자 한다. 물론 기계적으로 모두가 같은 계급끼리만 결혼을 매칭 시키는 것은 아니다. 카스트 중에 가령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계급이 서로 결혼해도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보통은 유명한 브라만 승려를 통해 특정 지역의 크샤트리아 계급은 사실상 순수한 높은 계급이라는 것을 검증받는 경우가 그렇다.
인도에서 법인을 세우고 운영하면서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은 카스트가 이들의 생활에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선 점심시간에 발견한 것은 대부분이 도시락을 싸온다는 것이다. 계급이 다른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먹는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계급까지는 같이 식사를 하되 반드시 자기가 싸온 것만 먹는다. 이외의 사람들은 별도로 모여서 도시락을 먹는데 불가촉 천민들과 결코 같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 특히 이종교(대부분 이슬람)를 가진 인도인들은 힌두교도들의 입장에선 모두 불가촉 천민들이다. 한국인 CEO가 호의를 배푼다고 회식을 하는 경우, 식당 어랜지와 메뉴, 그리고 참석자는 현지인 책임자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사람에게 아무 문제가 아닌 것이 현지인들에게는 엄청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처음 만나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카스트의 Frame에서 바라보는 것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선 위에서 보았듯이 힌두교에서 사람들간에 이상적인 질서가 있는데 이 질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을 막아준다. 나아가 다른 계급끼리 접촉이나 교류를 하면서 순수성을 잃을 수 있는 것을 사전에 알고 적절한 대비를 할 수 있다.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힌두교 질서에 어긋난 계급간 청춘 남녀의 만남으로 온 집안이 현재 계급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막아주는 것이다.
이름과 지역에 따라 계급을 구분
그러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간에 어떻게 이들의 계급을 알아볼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 소개할 때 제일 먼저 얘기하는 것이 이름이다.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성(last name)이다. 성을 보면 그 사람의 카스트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으며 나아가 대강의 직업도 알 수 있다. 가령, 필기·기록의 신(서기 신) 치트라굽타(Chitragupta)를 가문 수호신으로 모셔 온 카야스타(Kayastha) 집단을 가리키는 성은 스리바스타바(Srivastava, Shrivastava) 삭세나(Saxena),마투르(Mathur),니감(Nigam), 가우르(Gaur), 아스타나(Asthana) 등이 있다. 이들은 보통 기록을 하는 사람으로 왕조에서는 사관이나 총리 등 벼슬을 지내는 사람이고,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크샤트리아 계급으로 정치,행정업무를 하고 접대를 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술과 음식은 거의 무엇이든지 다 먹는다. 현대에는 언론사, 법관, 교수, 엘리트 공무원 같은 직업에 많이 종사한다. 인도의사를 보면 대부분 Dasgupta나 Vaidya(Baidya) 등이 많고 이들은 뱅갈 지방의 브라만에 속한다. 반면 비슷한 발음의 Gupta는 인도 북부 중부의 상인(바이샤)계급에 속한다. 같은 이름이라도 지방에 따라 계급이 다른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런 이유로 처음 만나면 이름과 함께 어느 지역 출신이냐를 자연스럽게 물어본다. 이런식으로 사람이 속하는 계급을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브라만의 경우 제사나 학문 점성술 분야에 종사하는데 대표적인 이름이 Sharma, Pandey, Tiwari, Mishra, Mukajee, Chatterjee, Chakraborty 등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학자(교사), 제사(종교인), 점성가 등의 직업을 가진다. 이상을 정리해 보면 직능(전통 역할) => 이를 수행하는 대표 성씨 => 이들이 차지하는 계급 => 지역 순으로 묶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정리해 보고자 한다 .
전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직능과 성씨, 카스트의 관계
바르나(카스트) 직능(전통) 대표 성씨
브라만(Brahmin). 제사/학문/점성가. Sharma Tiwari/Joshi /
브라만 상층지식인 Banerjee, Mukherjee, 뱅갈지역.
Chatterjee,Chakraborty 방글라데시
브라만 의사,약사 Vaidya, Baidya, Dasgupta 벵갈지역
의학지식층
카야스타 서기,관료,법관 Srivastava, Saxena, Mathur, 북동인도 전반
(크샤트리아) 언론인 Nigam, Ghosh, Mitra 상층3집단
바이샤/바니야 상인·무역·재정 Gupta, Agarwal, Bania 북 서인도 지역
바이샤(남인도) 상인·금융·향신료 Chettiar, Chetty, Nagarathar 남인도
슈드라(상층농민) 농민,지주, Patel, Chowdhury/chaudhary. 구자라트(Patel)
마을지도층 Naidu,Despande 벵갈(Chowdhury)
슈드라 장인, 수공업 Soni(금세공), Dhobi(세탁), 인도전역
Luhar(대장장이)
슈드라 소, 목축, 우유 Ghosh, Yadav, Goel 벵갈(Ghosh),
*OBC 북인도(Yadav, Goel)
바이샤 향신료, 향기 Gandhi(향수향료상인) 지역에 따라 상인
슈드라 잡화상 Pansari(향신료, 잡화상인) 또는 슈드라 층
*OBC : other backward classes 로 사회적 교육적으로 불리한 계층을 일컫는 인도의 법적 용어
**주의 사항: 전통 직능과 성씨가 연결되어 있지만, 현대 인도에서는 성씨와 현재 직업이 일치하지 않으며,
지역에 따라 자티, 계급 구분이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현대에 있어서 성씨로 개인을 판단하는 것은 맞지 않고 자칫 차별로 이어질 수 있어서 과거의 전통을 이해하는 수준에서만 참조하기 바란다
나에겐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
지금은 어디서 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인도에 주재하는 동안 공영방송의 L모 PD와 지금은 대학에 교수로 계신 L모씨, 그리고 미얀마에 주재하고 있는 그리운 친구 Y 씨, 사회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위해 실제 인도의 농촌 마을에서 살면서 잣티를 연구하던 외대 출신의 K모씨가 모여 스터디 모임을 가졌었다. 주로 L모교수와 K 모씨의 논쟁이 많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알게 된 카스트와 잣티에 대한 이해는 실제 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하던 나에게 실제적인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령 근무 중 가벼운 두통이나 복통을 겪는 직원들은당시 카피라이터였던 뱅갈 출신의 Dasgupta한테 민간 요법을 자주 묻곤 했다. 병원에 갈 정도로 심각하지 않으면 그리 하였다. 직능과 성씨의 관계를 알지 못하면 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현지인 관리자나 책임자를 뽑을 때, 가령 전통 관료나 언론계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면 Srivastava, Saxena 등의 성을 가진 직원을 뽑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촌이나 아저씨 등 친척들이 유관 기관에 많이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모은행의 뉴델리 법인 개소식때 인도은행 총재(제1경제부총리 다음의 서열로 제2경제부총리 장관 보다 높음)가 참석했는데, 이는 비서실장이 직원의 사촌 동생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특정 사안에 대해 궁금해서 물어보면 관련되거나 이미 아는 것까지 모두 가르쳐 주려고 하는 직원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카스트와 성을 알고 난후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는 전통 직능에 따르면 가르치는 브라만 출신이었던 것이다.
21세기에 이제 인도의 카스트도 절대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위치에 있다면, 이들의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