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거제도의 기억

기억의 역할

by Small Big Coach

1. 1박 2일의 부산 여행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이하 S)의 초대로 다른 친구 2명과 함께 1박 2일 일정으로 부산여행을 갔다.

"도대체 몇 년만이야!"

수십 년 만에 친구와 재회하는 경우, 긴 세월 동안 변한 친구의 모습과 내 기억 속의 모습에 불일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S는 기억 속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일치했다.

"하나도 안 변했네" (물론 배는 서로 복스럽게 변해 있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우리는 포웅을 했고, 이내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는지 서로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과천 집들이? 아니다 너희 어머님 돌아가셨을 때인 것 같다 "

"맞다 그때 봤었구나, 그러니까 한... 25년 전이네"


식탁에는 S의 처남부부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중국요리와 이에 잘 어울리는 52도의 백주가 등장했다

"존의"라는 브랜드로 S의 처가 직접 이 술이 나오는 고장에서 사 왔다고 한다. 눈 수술 이후 처음으로 마시는 술인지라 나는 최대한 절주 했다. 대신 끝없는 수다를 즐겼다. 각자의 기억 속에 숨어 있던 고교시절, 대학시절, 사회초년병 시절의 기억들이 하나씩 꺼내져서 마치 퍼즐을 맞춰 가듯이 스토리가 완성되었고, 더 풍성해진 스토리는 다시 새롭게 기억 속으로 저장되었다.

이날 모임은 "S의 처남 부부가 손수 만든 푸짐한 중식과 백주를 마신 날"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 날 오전에는 스크린 골프를 쳤다. 우정의 샷을 날리며 화기애애한 초반의 분위기는 우리 중에 키 크고 군살하나 없이 슬림한 친구(이하 J)가 갑자기 약을 먹었는지 환상의 샷을 날리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평상시 필드에서 그의 드라이버 샷은 잘 가다가 끝에서 심한 드로우가 걸려 좌측 오비로 가는 코스로 기억되어 있었다. 기억과 달리 오늘 J의 샷은 똑바로 멀~리 날아가는 것이었다. 반면 오늘따라 샷이 마음대로 안 되는 친구(이하 K)에게는 이미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게임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찌하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에피소드가 오히려 오랫동안 잊허지지 않는 법인 것을... K에게 오늘의 게임은 "J의 골프가 약 먹은 날"로 기억될 것 같다 ㅎㅎ.



오전 분위기를 깔끔한 돼지국밥으로 지우고 우리는 거제도로 달렸다. 많은 비가 내린 후 공기는 맑았고 하늘의 구름도 적당한 그늘을 주었고 다양한 모양까지 만들어 우리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꽈배기랑 커피도 마시고, 풍광 좋은 곳에서 사진도 찍고, 바닷가에서 물제비 놀이도 하면서 우리는 몇 장의 추억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거제도에 있는 김영삼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방문자가 적어 천천히 생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언덕이라 넓지 않았지만 여유가 있는 마당, 단순하여 오히려 품위가 느껴지는 아담한 본채와 사랑채가 있었다. 옆에 현대식 건물인 "김영삼 대통령 기념관"의 2층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2층부터 1층으로 내려가면서 역으로 한국 현대사를 하나씩 상기해 보고 마침내 입구에 이르렀다. 그런데 입구에 배치해 놓은 임시 안내문 문구 하나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전체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 하여 서울대 가자!” 로 끝나는 문구였다. 김 대통령이 서울대 졸업생이고, 학생관람객이 많아서 그런 문구를 배치해 놓은 것으로 추측이 된다. 나만 그런 불편함을 느낀 것 같지는 않다. 친구 K도 불편함을 느꼈나 보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마음의 불편함을 안내 데스크에 계신 분께 토로했다. “국민들한테 총부리를 겨누는 대통령을 배출한 대학인데, 이 기념관에 저런 문구를 배치하는 게 맞을까요?” 안내 데스크에 계신 분의 표정도 미안해하는 느낌이다. 우리만 불편했을까? 누가 저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지만, 이 기념관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근본을 잊은 그 문구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2.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자다가 깨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기념관에서의 불편했던 그 문구가 다시 생각이 났다.


작년 12월부터 최근까지 몇 개월은 정말 격변의 시기였다. 다행히 심각한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우리나라는 둘로 나누어져 대립했고, 그 간극을 좁히기가 쉽지 않은 상황으로 간 것 같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과반수 이상의 국민이 한쪽을 지지하여 짧은 시간 내에 안정을 찾았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중심을 잘 잡고 있다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숨겨져 왔던 대한민국의 리더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민낯을 제대로 목도했다는 것이다. 이들 리더들 대부분은 학벌지상주의와 법조인 엘리트주의의 특혜를 받은 자들이었다. 말도 안 되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 편협하고 위험한 짓을 서슴지 않고 하는 자들이었다. 이젠 성숙한 국민이 이들을 제대로 심판을 해야 할 차례인 것 같다. 무엇으로 이를 이룰 수 있을까?


이들의 망상과 불법행위를 막은 것은 "기억"이었다. 정확하게는 시민들의 "기억"이었다. 과거 계엄과 5.18을 기억하고 있기에 많은 분들이 방송과 함께 국회로 달려갔던 것이다. 길거리를 지켰던 것이다.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는 "기억"을 해야 한다 12월 3일 이후 목도한 리더들의 민낯을 기억해야 한다. 학벌지상주의, 법조인 엘리트주의의 수혜자들의 한계와 폐해를 확실히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모 국회의원이 말했듯이 "다 잊어 먹고 또 뽑아주더라"는 일이 다시 안 생긴다. 기억은 사회나 개인 모두의 정체성을 만든다.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억을 제도화" 한다. 역사도 배우고 기념관도 짓고 박물관도 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맥락에서 거제도의 김영상 대통령 기념관에 "~~ 서울대 가자"라는 문구는 치워야 한다. 생각해 보자, 12월 3일 "하나회"가 아직 군대에 남아 있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김대통령 기념관에서 우리는 이런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을 빨리 잊어버린다고 흔히들 얘기한다. "기억"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우리 사회의 정체성이 분명해지고 자손들의 미래도 예측가능해진다.

3. 독일 나치의 교훈

독일에 몇 년간 사는 동안 "기억"을 재생시키는 일을 제도화하고, 잘못된 "기억"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교육시키는 독일 정부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집요하리 만큼 많은 노력을 보이는 이유는 나치가 미디아와 영화 등을 통해 국민들을 망상에 빠진 나치의 충실한 추종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짓된 허위 정보를 지속적으로 "기억"시켜 나치의 맹신자로 만든 것이다. 독일의 학생들에게 미디어 자료(신문, 영상, SNS 등)를 읽고, 그 의미와 의도를 스스로 분석·평가하는 숙제를 주고 미디어의 프레이밍, 편향, 허위정보 등을 주제로 토론하는 등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실시한다. 우리나라에는 편향된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빠져 황당한 주장을 하는 리더층이 의외로 많다.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플랫폼이 늘어감에 따라 허위의 편향된 정보가 넘쳐난다. 이런 변화를 감안할 시 우리나라에도 이런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기억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새로운 기억을 만들었고, 수박 좋아하는 J가 스크린에 강한 것도 한동안 우리를 즐겁게 할 기억이 될 것이다. 서로 수다 떨면서 개인의 기억들이 우리의 기억들이 되어 새로운 기억으로 저장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잠시 생각해 보았다. 기억은 스토리가 되어야 우리의 머릿속에 장수한다고 한다. 기억의 관점에서 이번 여행은 많은 스토리로 연결되어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 스토리는 또 친구를 만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고, 그렇게 다시 만나 우리는 기억을 재생하고 오래가는 우정을 만들어 갈 것이다. 우리만의 정체성은 그렇게 완성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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