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5
임신 37주차 4일
아침부터 묘하게 무겁고 낯선 공기가 감돌았다.
그날은 단순한 정기검진이었다. 이제 막달에 접어든 아내는 매주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입덧은 진작에 사라졌고, 배는 단단히 차올라 있었다. 우리는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말을 서로에게 되풀이하며, 평소처럼 가볍게 병원으로 향했다.
담당 선생님이 초음파 화면을 바라보던 시선이 멈추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기 몸무게가 3.2kg이에요. 배둘레는 38주 5일 정도고요. 태변이 가득 차있고 아기가 크는 속도가 빨라서 이번 주에 유도분만을 진행하는 게 좋겠어요.”
‘이번 주.’
그 짧은 한마디가 공기 중에 오래 맴돌았다.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고도 없이 출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내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나도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그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진료실을 나와 복도를 걸을 때, 아내의 걸음이 유난히 조심스러워 보였다.
“이번 주래...”
아내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동안 몇 번의 위기와 불안을 겪었기에, 이제 웬만한 소식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도 아내에게서도 씁쓸한 미소가 나왔다. 태변이 찬 찹쌀이, 갑작스러운 유도분만, 예정일 보다 빠른 출산일까지 임신부터 찹쌀이를 만나기까지의 여정이 참 쉽지만은 않은 듯했다.
그날 저녁, 아내는 평소처럼 다이어리에 몇 줄을 썼다. 나는 직접 읽지 않았지만, 손끝의 움직임과 눈빛으로 그 내용이 어떤 결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걱정과 기대가 반반 섞인 얼굴이었다.
아내는 늘 그랬다. 두려워하면서도, 그 두려움 속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그 말의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 무렵 나는 몸이 좋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가 계속 기침을 하더니 결국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와 같은 공간에서 일했던 나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바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음성이었다.
하지만 고열과 몸살이 이어졌고, 목도 심하게 부었다.
‘혹시 양성이면 어떡하지? 출산 때 병원에도 못 들어가잖아…’
그 생각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내는 내게 말했다.
“괜찮아, 조심하면 되지. 그래도 가까이 오지 말고.”
그 말에 웃으며 “그건 꼭 지킬게”라고 답했지만, 마음은 쉽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집에서도 각방을 썼다.
분명 아내와 찹쌀이가 함께 있는 집인데 너무나
문 밖이 멀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같은 집 안에서 서로를 피하며 살았고,
그 시간 동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아내와 찹쌀이의 존재를 크게 느꼈다.
2025.08. 28
병원에서 분만 전 필수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음성’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병실 문을 마주 보며 “이제 괜찮겠지?” 하고 웃던 아내의 얼굴은 잠시나마 평온해 보였다.
그 웃음 하나로 일주일의 긴장이 눈 녹듯 사라졌다.
15:30 분만실 입원
입원 수속을 마치고 분만실로 들어가니 간호사가 들어와 아내에게 링거를 꽂으며 말했다.
“무통주사는 자궁문이 열리면 들어갈 거예요. 지금은 주삿바늘만 잡아둘게요.”
얇은 바늘이 손등을 스치자 아내가 미세하게 몸을 움찔했다.
그 작은 반응 하나하나가, 이제 곧 ‘출산’이라는 단어로 이어진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18:00 저녁식사
저녁으로 병원식이 나왔다.
“8시 이후로 금식이래.”
아내는 마치 마지막 만찬처럼 천천히 식사를 마쳤다. 이제 찹쌀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물도 마실 수 없다.
“이제 진짜 시작인가 봐.”
작게 웃었지만, 그 웃음엔 묘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20:17 관장
화장실을 다녀온 뒤 아내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졌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출산 준비 모드’로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21:00 태동검사
기계음이 일정한 리듬으로 울려 퍼졌다.
130~140bpm, 찹쌀이의 심박수는 안정적이었다.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숫자를 외우듯 되뇌었다.
‘130… 140… 그래, 잘 뛰고 있네.’
23:52 첫 내진
자궁문이 1cm 열려 있다고 했다.
배는 아직 뭉치지 않은 상태
아내는 아프지 않냐는 당직 선생님의 물음에 “괜찮아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긴장감이 가득한 아내의 얼굴에 나는 가만히 손을 잡아주었다.
2025.08.29
01:00 두 번째 내진
다시 내진이 이어졌다.
“자궁이 뒤로 휘어져 있고, 아기도 위에 있어서 좀 힘들 거예요.”
당직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검진 도중 아내는 숨을 고르지 못해 어깨를 떨었다.
“천천히, 숨 쉬세요.”
그 말이 오히려 더 긴장을 불러오는 듯했다.
자궁문이 잘 열리지 않아 약을 넣고 기다리기로 했다.
05:27 첫 번째 무통주사
진통이 더 심해져 주사를 맞고 20분쯤 지나서야 아내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이상한 느낌이야. 저릿저릿해.”
전기 오듯 흐르는 감각이라 했다.
"그래도 아까보다 덜 아프니까 다시 힘내야지!"
조금 느려진 감각 속에서도, 아내의 눈빛은 여전히 또렷했다.
06:00 세 번째 내진. 촉진제 투입. 양막파수
여전히 내려오지 않는 찹쌀이
촉진제를 투여하고 당직 선생님이 들어왔다.
“양막 파수할게요.”
짧은 설명 뒤, 파수 진행.
‘찹’ 하는 소리와 함께 미묘한 긴장감이 공기를 갈랐다.
07:00 촉진제 투입속도 늘림
투입량이 늘어났다.
촉진제가 늘어나 찹쌀이의 심박이 느려져
아내는 산소 호흡기를 착용했다.
흔한 일이라는 당직 선생님의 말씀에도
떨어진 심박만큼 우리의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다.
자궁문은 여전히 2cm.
양수는 터졌지만, 아기는 아직 위쪽에 있었다.
당직 선생님은 “조금 더 기다려보자”라고 했다.
08:05, 네 번째 내진. 안쪽 양막 파수 시도
여전히 찹쌀이는 내려오지 않고 있어
내진을 하던 당직 선생님은 몇 번 더 시도해 보다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미안해하며 말했다.
“너무 위에 있어서 안되네요. 30분만 있다가
다시 해볼게요”
08:31 다섯 번째 내진. 양막파수
다섯 번째 내진에서야 마침내 안쪽 양막이 터졌다. 그제야 당직 선생님은 “좋아요, 이제 진통이 본격적으로 올 거예요.”라며 미소 지었다.
아내는 땀에 젖은 손으로 내 손을 꽉 잡았다.
“나 괜찮아… 아직은 견딜 만해.”
그 말이 오히려 나를 더 울컥하게 했다.
09:10 두 번째 무통주사
자궁문은 2cm가 열렸다.
12:00 여섯 번째 내진
담당 선생님이 오셔서 내진을 진행했다.
자궁문은 2.5cm
“이 속도면 내일까지 갈 수도 있어요.”
담당 선생님의 말에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내일 까지라니. 이 고통을 하루 더 견뎌야 한다니. 힘들어하는 아내의 얼굴에 마음이 더 쓰라렸다.
13:50 일곱 번째 내진
찹쌀이가 엄마, 아빠의 조바심을 안 걸까?
자궁문이 5cm가 열렸다.
14:40 여덟 번째 내진
자궁문이 8cm 열렸다.
하지만 이 이후로 다시 고착상태.
아내의 진통은 더 심해져 이후 17시까지
무통주사는 여덟 번까지 늘어났다.
17:45 아홉 번째 내진
자궁문 10cm!
담당 선생님은 나에게 나가서 대기하고 있으라 말하셔서 아내에게 힘내라고 손을 꽉 잡아준 뒤 복도 의자에 앉아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분만실 안에서는 힘을 주라는 담당 선생님과 간호사의 외침이 울려 퍼지고 나는 간절히 찹쌀이와 아내를 무사히 만날 수 있게 기도를 하였다.
3분, 5분.. 내 인생 가장 길었던 시간이 지나갈 때쯤 들어오라는 간호사의 말에 가운을 입고 위생모를 쓰고 손 소독을 끝내고 분만실로 들어갔다.
"엄마! 아빠도 왔네. 이제 우리 마지막으로 힘 꽈악 주고 찹쌀이 만납시다! 힘! 더더더더더!"
18:07 찹쌀이 탄생
"응애! 응애! 응애!"
그 짧고 또렷한 울음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긴 시간 동안 눌러왔던 모든 긴장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풀렸다.
아내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나는 그저 조용히 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잠시 후 내 품에 안긴 찹쌀이
너무나 작고 소중한 우리 딸
찹쌀이가 태어나면 해주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는데 흐르는 눈물과 목이 메어와서 짧게나마 겨우 말할 수 있었다.
"우리 딸. 고마워. 우리에게 와줘서"
예정일보다 조금 일찍 세상에 온,
목에 탯줄을 두 바퀴나 감고도 꿋꿋이 버텨낸 작은 생명.
‘찹쌀이’는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에필로그
돌아보면, 임신부터 출산까지 참 길고도 짧았다.
행운이를 떠나보내고 엄마 아빠가 더 슬픔에
잠기지 않게 찾아와 준 우리 딸 찹쌀이.
여러 이벤트로 걱정으로 시작해, 안도와 눈물로 끝난 지난 10개월.
25년 8월의 마지막 금요일.
그 속에서 처음 세상에 들려온 찹쌀이의 울음소리
그날의 모든 빛과 소리, 냄새와 공기는 내 인생의 기준점이 되었다.
그날 이전과 이후의 나는, 아내는
그날을 경계로 완전히 달라졌다.
찹쌀이의 엄마로, 아빠로
이제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인만큼
우리는 이제 3명이 함께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