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박승엽
야심과 꼭두 사이, 꿈은 지나는 1년을 달빛 처럼 밤새 꺼질 줄 모르고, 하루의 끝과 시작, 새벽 4시.. 등이 휘는 시간, 접혀가는 어깨를 모르고 걸었다.
밤 거리에 서 부풀었던 풍선들의 숨이 죽고, 오래된 여관의 간판 불이 쉬러 들 때, 현란한 불빛들도 하나둘 기울어 잦아들었다. 물고 있던 담배 연기는 뒤를 향하고 넘어가야 할 언덕은 앞에 있었다.
앞만 보고 가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항상 시간은 가파르게 지나가는 과거형이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는 나아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다. 가야할 길도 놓여 있는 길도 모두 지나온 길의 연장이 현실이기 때문에.. 언제고 모든 언덕의 과거가 현실이었다.
그것이 슬픔일까 아픔일까 고통일까 서툼일까 바쁨일까 모여 보람일까 그것이 사랑일까.. 나아질까 기대가 하루의 문을 닫고 연다. 그래서 새벽 4시는 옷장 같은 특별한 시간이다. 연장되는 시간 위에서 연명하는 삶을 깨고 드는 끝이자 시작이다. 그래서 하루의 반의 밤이 또 하루의 반의 낮에게 조용히 부탁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밤이 오는 낮에게 낮은 다음 밤에게 서로 하루를 유언하고 나절을 이르며 제 때를 부탁한다. 그 시간이 이 때이다. 하루를 닫는 때와 준비하는 출근으로 개점으로 만듦으로 차림으로 다듬으로, 아침으로 바삐 가는 오늘이 모닝커피 한 잔에 달래질 때, 상기된 얼굴엔 미소 짓는 어제가 내렸다.
접고 펴고 꿇고 서고 들고 가는 굵은 땀들이 흐르는 가늘고 굽은 시장 골목마다 이유 있는 냄새들이 들끓었다. 이 냄새처럼 오늘 손님도 그러하리라. 쓸어내리는 빗질과 쓸리는 비질이 아문 아침을 쓰다듬고, 어제를 떨어낸다. 그렇게 모래내의 새벽은 어깨 아래 언덕 밑으로 내리고 있었다. 한 낮의 햇살처럼..
내리 쬐는 농토 옆 버스길 위에서 첫차를 기다리는 시장통 아지매들의 왁자지껄 속에 어젯밤 정류장에 똥 싸놓은 미령의 개를 새끼하며 욕해 대는데, 우리 집에도 이런 개 저런 개가 있다고 그렇게 재미질 수가 없다. 웃음은 시간을 멈춘다. 잠깐 멈춘 시간들을 버스가 한꺼번에 싣고 가버린다. 어디고 어딘가에 태우고 내리다 종점에서 빈 버스로 다시 시작이다. 버스 뒤로 벌써 오늘이 언덕을 따라 오르고 있다.
감자 고구마 버섯 실파 포도 자두 복숭아 도란도란 한 박아지에 단돈 오천원 한 장, 손바닥과 얼굴만한 떡 한 접시들은 비스듬히 찰진 속을 드러내고 팥고물과 편견과가 넘쳐나는 순간들을 한컷 한컷 랩이 잡았다.
아침에는 손님 없는 찜질방처럼 다리를 모으듯 순대는 혼자서 자기를 모아 놓고 훈짐을 쐬고 있을 때, 됫박 아래 번데기들은 막무가내 쌓인 다음 막순번을 기다리고, 상품 과일들이 광채를 뽐내는 박스 안에서 재고 있는 시장의 꼬물꼬물한 시간들.
다툰 만큼 신선함이 회것들의 도인가. 활어차에서 내리는 활것들 사이에서 물망이 좋은 넓다란 홍어, 저평가된 몸을 저들끼리 엎고 덮은 얼음 몰래 삭고, 은색 갈치 비싼 때깔에도 못받는 제 값을 삭히다가 갈치 제 속이 먼저 삭아 젓갈이 되고마는 운명을 홍어의 무침에 물어볼까.
시간을 얼마나 내려야 삭는 걸까. 삭는다는 것은 냄새처럼 농후한 삶이 다시 물이 되어가는 인고의 깊이로 내려지는 생이 익어가는 살.
채소와 건어물들을 다듬고 썰고 찢고 으깨고 뒤집고 데우고 치고 넣고 아침부터 버물어대는 찬들은 갖가지 종류대로 줄을 섰다. 마다의 덧뿌린 들깨 같은 시간의 만단의 부탁을 뿌린 새벽 6시, 샷다 없는 점포들은 밤새 단촐해진 모양새에 두 칸이었던 세를 한 칸으로 줄이던 날, 반토막이 난 아침들이 울었다. 이름이었고 얼굴이었던 간판이 비스듬한 태양 아래 희미해진 시간들이 내걸렸다.
오늘도 시작이다. 이처럼 부산떠는 손놀림들이 손맛이 되는 아침이다. 8시 굿모닝 뉴스의 카랑한 앵커의 목소리가 점포마다 음악처럼 울려 퍼진다.
아저씨의 뒷짐으로 버텨온 반찬 가게, 고추와 잔멸치를 엿기름으로 짠지 달짝지근히 버무린 것과 더덕을 하나하나 으깨 먹기 좋은 크기로 맵게 버무린 것과 신김치를 양껏 많이 담았다. 담을 때는 그것과 함께 담아지는 게 있다. 미소와 정이다. 담글 때는 정성이었으리라.
화덕 가득 오늘이 부푼다. 소소히 고소한 빵들이 즐비하다. 남는 것들과 아까운 것들은 뭉뚱그려 멍청이 빵이 되고, 내내 굽다 보면 내 등도 살이 올라와 굽는다. 볼고족족한 볼이 갈색의 광대살에 뭍혀 빵순이가 되었다. 그 열정 뒤에 눈물을 알까.. 빵순이는 슬프도록 착했다. 뜨거운 화덕처럼..
태어나며 얻는 삶은 외상일까.. 태어난 이 몸이 외상인 걸까.. 이 몸이 사는 것은 이 생이 갚아야 할 삶, 살며 갚아야 할 살기 전에 지며 사는 외상. 우리가 오늘 하루도 서로를 외상으로 사고 산다. 오가는 정으로 미소 지으며 그 외상으로 삶는 식당에도 굽는 빵집에도 지는 애환을 먹는다. 뜸들이는 찰진 밥도 구워진 빵도 젖을 줄 알아서 일까. 바빴지만 젖어 못살았던 하루가 외상으로 지기도 했다.
술 한 잔의 여유도 없이 낮과 밤이 서로 부탁을 들어주다 다시 새벽 4시다. 선술집 손님들이 버리고 간 헛소리를 여운으로 지걱거리는 바닥을 쓸고, 내일 쓸 재료들과 술과 잔돈을 정리하고, 벌렸던 것을 추스려 넣고, 놓인 것들을 만단히 하고, 쓸던 손으로 오늘 매출을 따져본다.
셀 때마다 돈은 내 하루를 따지고 한 생을 따진다. 돈이 무엇이관대 내 사는 것을 따지는 걸까. 벌수록 돈에 얽메이는 것 같다. 필요 밖에 안되는데, 자꾸 돈이 밟혀 길이 되어 목적이 되고 성공이 되고 꿈이 되는가 말이다. 내가 떨어진 돈이 되어 간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돈 앞에 꿇는 지경에서 인생에 몇 개 안되는 설움 중에 설움을 알게 된다. 이 시장통에서 그 설움이 없는 이가 없다. 그것으로 돈 그로 눈물도 말랐었다.
왈칵 쏟아졌던 눈물이 왁자지껄 수다가 될 때, 겨웠던 과거를 뒤로 모래내의 언덕을 버스를 타고 넘어 오는 시골 아지매들과 같이 내리는 정이 겹다. 힘에 겨운 삶들, 흥겨운 콧노래는 남아 있을까. 몇 점 안되는 물건을 놓고 2천원 3천원 5천원 짜리들, 하나 팔 때마다 행복한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본다. '등 진 것이 웬수라 나왔구먼..' 이 말 저 말 못할 것 없는 이유가 있었다.
억신 엄마의 가녀린 것들과 묵묵히 일하는 아버지의 조용한 노고가 셔터처럼 아들 눈에 잡히고, 딸은 어느새 수도꼭지를 틀어 재끼며 다라이에 이문 설거지감을 쏟고 있다. 각자의 시름은 한 컷의 흑백처럼 단촐한 식구들의 단란한 행복 너머 모래내의 언덕을 넘고 있다.
달이 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