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D z
박승엽
제 1 장 BD
7년 전이었다. 2014년 2월 6일, BD (생체 실험 인형, Biometrics Dummy) 임상 신약을 처음 먹던 날이었다. 임상실험체가 되던 그 날, 나는 그 약 때문에 꼬박 2박 3일 동안 맥을 거의 잃다시피 잠에 빠져 있었다. 자는 동안 약은 복합적 상승작용으로 무의식 속에서 떠다니는 내 의식을 잡아먹고 있었다.
먹히고 먹히며 3일이 지난 4일 째부터는 2~3시간만 남기고 오히려 잠의 대부분을 앗아가버렸다. 약은 주고 또 뺏아간다. 이기는 것보다 병과 약은 견디어 참아지는 거라고.. 병과 함께 내가 치료만큼 죽는 것이 약이라고..
이전 동물 임상 실험 결과를 통해서도 처음 견디어내는 시간, 즉 약에 대한 최초 적응 시간으로 쥐의 경우 2주일, 인간 대상으로는 4일은 잡았었다. 나는 실험 쥐보다 1/7의 시간으로도 잠을 약에 빼앗기고도 고통을 반이나 줄일 수 있었으니,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인형으로써도 제격이었다.
그런데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되는 이유, 이와 머리카락이 끊어지거나 빠지는 등 묵과할 수 없는 신체적 부작용으로 인하여 먹던 임상약이 중단되어 식약안전청의 권고로 다른 임상약으로 바꾼 시점은 2019년 5월이었다. 대체되는 약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약은 이전 약처럼 신경의 고통의 반 이상을 잠재우기에 더해 피곤을 현저히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 부작용은 몸이 이전보다 기분 나쁜 부대낌과 함께 신물처럼 넘어오는 꺼림직한 느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몸과 생각이 멍해진다는 것이었다. 걱정되는 건 이 부분이었는데, 나는 묻지만 의사는 정상과 실험약에 대해 여타 말이 없다.
신체가 병을 약에 의한 수치 대비 반복 실험에서 얼마나 견디어낼 수 있는지..의 하나의 실험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신약이 몸 안에 쌓이게 된다면의 가정이 기준이 된 실험에 약의 발현과 효과와 부작용과 그 증상들에 대한 데이타 축적과 과다투여량의 결과 까지도 산출 병행되었다. 이렇게 약에게 몸을 내주는 대신 인형이 되었다. 이로 어마한 신체유지 비용을 탕감받은 나는 몸을 걸고, 의사는 제출할 한줄의 결과를 얻는 일. Dummy는 질주중, 나는 희망중, 부모님은 기도중, 애들은 소망중, 나의 챠트엔 과다투여중이라 써 있다.
거울을 보면, 잔근육들과 날선 갑바, 골격과 머리가 작아 외소해 보이지만 옷맵시는 좀 나는, 나름 운동을 해서 잘빠진 고등 3학년 풋풋한 체형, 알몸은 이렇게 눈부신데 내 안의 알고리즘 하나가 무너져서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굽어 접히는 고통은 할 말마저 막는다. 버티는 수 밖에. 충격실험 자동차 속 그 더미들도 말이 없었는데.. 날고 싶다. 고통을 호소하는 내 자신, 그리고 근육과 뼈들.. 머리도 안되겠다 정신을 놓고 몸은 스스로 웅크리고 망할 척추를 드러낸다.
심장을 무시한 고통이 한계를 넘나들 때 가끔 심장이 뛰지 않던 부정맥이 결국 생명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임상병리 과장 김중식 의사의 소견. 나에게 만큼은 비밀들을 공개하고 여러 편의를 봐주고 있음을 보여주겠다며 끄적거리던 챠트를 나에게 내민다. 두 번 밑줄 그어진 선명한 한줄.
"This case is reconciliation with the pain."
고통은 참을 수 있다. 약이 그 고통의 반절만 해결해 준다면.. 만약 약이 없었다면 난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란 것을 선택없이 실행할 것이었다. "고통과의 화해" 부작용을 무시한 투여는 계속되었으나 다행히 적응했고 변화들에 따른 면역 속도도 빨라졌다. 순탄치는 않지만 더미는 여전히 질주 중이다.
어쩌다 1~2초간 멈추었다 뛰다하는 부정맥 심장이 10분 이상 말하자면 영원히 멈추어야 끝나는 이 실험.. 아니 나에게는 완벽한 실전! 나는 가속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 벽과의 거리는 속도다. 그 속도 안에서 날던지 생체가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던지! 그런데 내 날개는 한번도 날아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백지 같은 흰색과 제일 싫어하는 노란색과 빨간색이 교차되는 실험실에서 50억 짜리 진단용실험장치가 로봇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면 비싼 장비도 나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Secret top.. 왼손잡이 주치의 박준 과장의 오른팔조에 항상 걸쳐있는 챠트 첫장 윗부분 빨간색으로 선명히 적혀 있는 이니셜..BD! 나는 벽에 부딪힐 때 책임을 다하는 인형, 벽에 부딪혀 기록만 남기고 부서질 Dummy였다. 인간임상실험의 생체 더미(Biometrics Dummy). 나는 BD였다. 그러나 겪은 만큼 누구보다도 사람이었다.
제 2 장 역류
다시 거슬러 올라가 역류된 7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2007년 그 해 봄, 민중이 일어선 4~5월 쯤 마지막 항거를 마치고, 있던 안정제와 수면제를 먹고 얼마나 잤을까. 두 콧구멍으로 하얀 토사물이 콧물처럼 흘러나오고, 혀 뿌리에까지 위장의 역류가 쓴물과 함께 다셔왔다. 위벽이 녹아내리는가 싶더니 좀 더 안쪽 쓸개를 비틀고, 내장의 근육이 뭉치며 꼬이고 있었다. 바로 아래쪽 십이지장을 쥐어 짜는 듯한 고통에 이어 식은땀에 젖은 등줄기의 멍해진 근육은 굳어갔고, 명치는 오그라들며 점점 뭉쳐갔다.
다른 통증들은 각각의 오감을 거쳐 순식간에 뇌하수체로 모인 감각은 금새 피질과 수질에 여파되며 걸러지고 해석된 정보가 판단에 이르기까지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등 근육의 뭉침과 압박감에 못이겨 구부러지며 엎드렸다. 다행히 배와 등줄기의 고통은 엎어지는 것만으로 견딜만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기력(氣力)에 의한 은색의 단색 화면이었는데,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감은 눈꺼풀에 하얀 판화처럼 영사되었다. 누군가 어디로부터 일까.. 눈을 뜨니 영상 스크린이 올라갔다. 다시 감아 내렸다. 스크린의 은색 영상과 함께 느낌이 곧장 전해져 오는 것이다. 그 느낌은 오감에 육감까지 전해오고 있었다.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소리와 영상이 느낌을 실어올 수 있느냐는 거다. 이것이 그 디지털과 의지가 의식을 끌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불가능한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활 속으로 밀고 들어 왔다. 직접 맡고 보고 듣고 만지는 느낌처럼 그 영상 컷들이 보내오는 사람의 의식과 내 인식에 동시에 달라 붙는 것이다. 의식을 차릴 새도 없이 20시간을 자버렸다. 얼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깰 만큼의 의식이 돌아와 눈을 떠 보니, 문득 나는 내 자신이 생소해졌음을 감지했다. 공황에서 깨어나기 무섭게 박동수가 오르고 체온이 오르며 신경이 예민해지고, 극도의 목마름은 나에게 초월의 상태를 원하고 있었다.
과다 투여된 약의 부작용일 게다. 그리고 요소였다. 타들어가는 위와 내장, 배를 젓가락으로 꿰뚫어 후비는 것만 같았다. 내근들이 꼬이고 속이 울렁거리다 어지럼증에 도저히 가누지를 못했다. 뒷머리 뇌하수체를 타겟하고 뻗쳐 오르는 알 수 없는 독기가 뒷목을 치고 올라왔다. 왼손으로는 굳어가는 뒷목을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배를 움켜 잡은 채 일어서려다 허리까지 타고 내린 고통에 걸려 꼬꾸라졌다.
바닥은 값어치만큼 차가운 이태리제 대리석, 안이 보이지 않는 이중 창호는 떨고 있었다. 왠만해선 바닥에 불을 넣지 않는데, 이제서야 난방이 시작된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뒷모습, 진한 고동색 중절모와 그것보다 색이 좀 연한 바바리 코트를 입은 사내는 누구일까. 그는 내가 깨어나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깼나..?
이풍, 묻는 말에서조차 그의 외자 이름값만큼이나 차가웠다. 재갈이 아니더라도 나의 의지로는 입술을 뗄 수 없었다. 벽시계는 정오인지 자정인지 12를 두 침이 포겐 채 가리키고 있었고, 어둠도 빛도 들지 않았다. 그러고 말없이 고요는 한참 흘렀다. 시침과 분침은 서서히 멀어져 갔다. 두 침이 직각을 이루고 나서야 나는 뻐근한 입술을 떼어 말을 땠다.
뭡니까..
12시 15분.. 난방에 온도도 15℃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하일까.. 아직 냉랭한 기운이 실내 한랭전선을 타고 회오리 치고 있는, 방이라고 하기엔 높은 천장과 넓은바닥. 로비 상들리에가 달려 있어야 할 곳에 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빼고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12행*12열에 맞춰진 방석들, 교육 프로젝트의 영상 채널이 상영될 법한 하얀 벽면, 바로 앞 얇고 날씬한 교단과 교탁, 어떤 교리를 가르치고 단체 행동을 요구하는 사이비 교파의 한 무리를 양산해내는 교육장 아닐까.. 이 무리들은 빠르게 생산되었다. 디지털들의 디지털 교육은 가짜가 거짓깔을 떠는 존재들로 만드는 거였다.
어딜 보나..
이어지는 문장은 소음에 묻혀 한참을 기다린 그의 목소리가 제 톤을 찾아갈 때, 내 목은 역류를 삼키고 있었다. 코와 눈에까지 시큼한 맛을 느낄 때. 짤막한 멘트 안에서 중절모 아래로 직각의 턱과 날선 코에서 예리한 관상도 느껴왔다. 예삿놈은 아니었다.
그를 쳐다보지 않아도 그의 생각들이 내 의식에 와 닿았다. 그 의식을 분석하여 훔쳐낸 생각을 패턴화하여 다시 거짓말로 현실들을 왜곡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디지털 짓거리였다. 이풍이라는 사람, 그는 디지털들을 교육시키는 교육자들의 장이었다.
세상이 간과할 수 없는 비종교 이적단체 이누리의 디지털 교육을 짚어보자.
교육자들은 각 지방에 있었고, 특별한 교육자들은 교구까지 돌며 더미(dummy)를 이용하여 디지털 특수기술을 가르쳤다. 이들은 이누리 교육장에서 교주 '이만'이와 함께 디지털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디지털들을 대량 생산해 냈던 것이다. 교육장이 대부분 그들의 교회의 지척에 있었으나, 그들의 범죄 현장이 곧 교육장이었고, 바쳐진 피해자 곧 그들의 가족 중 하나가 교육용 더미(dummy)로 쓰였던 것이다. 그의 가족들의 디지털 교육 증진에도 병행하면서..
이누리의 교주 이만이와 이누리의 이클립 의사 박준과 이누리의 실세 부장 이언, 지략가 강구와 트릭가 박인과 디지털 교육의 단장으로 불리던 이풍의 이누리 수장들의 큰 그림의 이누리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나를 괴롭혔던 가족 3명과 그의 배필들 3명과 두 아이와 할미, 이누리 실력가 3명으로 구성된, 3명이 짝을 이루는 시나리오 연극 사기단들과 프로그램과 율법과 그의 디지털들이 있었다.
디지털이란, 몰래 피해자의 귓속이나 두피에 넣어 붙이는 초소형의 스피커와 마이크를 이용한다. 디지털들도 그것을 붙이고 있어야 디지털로 대화가 가능하다. 디저털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들은 집적되고 증폭되는 고도화된 디지털 기계였고, 거짓깔 또한 그랬다. 디지털이란, 핸드폰을 이용한 특수 스토커 범죄행위를 말하기도 하고, 그 범죄를 당하고 저지른 사람을 동시에 지칭하고 있다. 이것은 초창기의 디지털(Digital)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이비이자 이단 단체인 이누리 유사 종교 단체와 결탁하여 세력을 세상에 뿌렸다
이 디지털에 대하여, 당하고도 누구한테도 112에도 파출소에도 경찰서에도 청에도 관에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설명을 해주어야 되는데 설명을 한다는 것은 기회조차 불가능했다. 모르는 척 하는 그들에게 몇 줄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누리에 대하여 말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밖에 없고 이 지면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말문까지 막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언제 사라질지 모를 소설이다.
디지털들은 일단 상대에게 자기 목소리를 1dB 이하로 어떻게든 들리게 하여 협박하고 공갈하고 사기를 친다.
병원에서는 이 현상을 증상으로 보고 이명이나 조현병으로 진단해 버린다. 거짓과 거짓깔로 점철된 구조 속에서, 일상 생활 속의 각본이나 대략의 시나리오와 간략한 문장들을 녹음도 하여 핸드폰에 버튼 그^룹이나 키보드에 넣어 사용키 위해 간간히 연기를 미리 해 놓는다. 반복적으로 말하는 대신 버튼이나 키보드를 눌러 녹음된 소리와 말들을 상대에게만 들리게 주파수를 맞추고서 트는 것이다. 그 소리가 공포이고 그 스토리가 두려움에 떨게 한다. 그 분위기와 상황이 지옥이 되고 만다. 이것을 범죄에 이용하여 돈을 뜯고 사람의 마음을 갉아 먹는 것. 이것이 디지털 짓거리라고 해서 이것도 디지털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디지털은 사람인 범인과 행위인 범죄 그리고 당하는 피해자까지 셋 다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쓰이는 도구까지 다 디지털이고, 그 디지털 회사와 결탁을 하여 회사는 사용하는 국민을 볼모로 디지털 기계를 판다. 고가위 음향장치에서 중계기까지..
범인들 중 소설을 잘 쓰는 스토리맨이 현실과의 접목된 스토리를 만들고, 나머지는 인디언이 되어 연극을 한다. 피해자가 그 스토리 속에 빠지게 되고, 1dB 속 가상 현장은 의식을 통하기도 하고, 그렇게 상황과 사건과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여 미궁 속으로 인도 된다. 그 디지털들이 만든 스토리가 만든 거짓된 세계가 피해자들에겐 지옥인 것이다. 그 지옥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남들은 모르는 세상에서 홀로 디지털과의 전쟁을 치러내야 한다. 결국 내 몸까지 팔릴 고기로 바쳐야 하는 덩어리 신세가 되는 말도 안되는 세계. 이것이 또 디지털 세상이다.
디지털화된 세상은 사람이 디지털이 되어버린 세계이다. 그 세상이 지금 여기인 것이다. 디지털화는 생각의 게으름에서 시작되고 행동의 귀찮음으로, 마음의 메마름을 거쳐 차가운 가슴에서 나오는 말들에게서 나타난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입들만 무성하다. 이것이 인터넷이고 거기서 가짜가 판치고, 그것이 핸드폰이고 그것으로 거짓깔들이 오고 가고, 그게 악의 세상이다. 그 세상의 거짓말들이 프로그램화 되어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율법이 되고. 거기를 인터넷을 통해 구다보고 있는 내가 바로 디지털이다. 어떤 디지털이 되느냐가 문제일 뿐..
제 3장 관계
이누리와 디지털이 합체한 회오리의 중심에 교주 '이만'이가 있다.
디지털 범죄는 모든 디지털이 출연하는 스토리 속 범죄 현장에서 가해지는 협박과 사기와 갈취와 강간과 살인과 대리 살인과 청부와 청탁과 장기매매와 인신매매가 이만이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철저히 거짓과 그 말과 가짜들로 이루어지는데 거기엔 사실도 진실도 없다. 그마저 거짓과 가짜가 되므로.. 가짜 이만이가 또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누리가 디지털들을 관리하고, 이들을 교회와 조직이 관리하고, 교회와 조직을 대기업들이 결탁하고, 정치인들이 사용하고 법조인들이 뒤를 봐주고 경찰들이 그들의 감투들을 차지하고 나서고, 정치인들이 이들을 또 관리하는데, 그들이 모두 이누리다. 이 디지털 왕국이 대한민국인 것이다. 속을 알수록 절망적이다. 그러나 그들도 국민이고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을 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싫다. 그들을 용서하고 싶진 않다.
핵은 디지털이다. 아니다 이만 이다. 아니다 이누리다. 아니다 조직과 정치가들이다. 아니다 피해자들이다.
아니다 모두가 다 가해자들이다. 피해자는 백성들이고, 지옥에서 오열하고 있는 분해되어 각 기관들과 고기 덩어리로 팔려 나갈 찢겨질 자들이다. 그리고 자궁 속에서 찢겨진 자들이다. 그들을 토막이라 할 것이다.
그 지옥들을 펑범한 우리가 갖고 있다.. 자궁도 원룸도 빈집도 빈 상가도 빈 사무실도 빈 창고도.. 빈 곳이라면 방치하는 곳이라면 주택에도 들어찰 지옥이다. 이젠 구 범위가 확대되어 일반 학생들까지, 초등 중등 로등 대학 일반 할 것 없이 생활(돈, 약, 의식주, 약점. 협박, 공포, 인질 등..)에 잡힌 사람들이 달싹 못하고 잡아 먹히게끔 되어 있다. 이것을 디지털들과 신천지들이 수행하고 작업하로 있는 가운데, 그들도 조직체계의 비인간적인 명령들에 대하여 분노하고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그 마왕과 염라대왕 등 왕들이 백성을 지키는 국가기관의 장들에게 있고, 그들이 이누리에 중책으로 있다. 이누리의 수장들은 또 다른 모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누리를 통하고 이누리에서 신체 부위가 공급되고, 고기가 운운되며, 곁에 있는 디지털들이 제1차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 다음이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다. 고기가 연하다는 이유로.. 인신 매매와 식인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이 지옥 판국이다. 그 발원지가 다른 종교에 있고, 그 종교 아닌 종교의 본체가 다른 나라 강국에 있으며, 그들조차 이누리에 먹혀버렸다. 문제는 디지털이든 이누리이든 조직이든 대기업이든 정치가이든지 간에 가해와 피해를 병행하고 또 병행되고 있다는 것이 회귀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결방법은 아주 너무나 간단하다. 디지털 신천지 짓거리를 안하면 된다. 나 안한다..하고 디지털과 신천지를 탈퇴하면 끝이다. 그러면 사회 질서도 잡혀갈 것이다. 놓아라! 놓자! 욕심과 게으름을 놓자! 이것으로 지옥을 면할 수 있는 세상은 올 것이다. 곧 올 것이다. 저로서도 이제는 확신한다. 그만큼 알리고 알게 되었고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 디지털들과 선천지들이 목슴을 걸고 뛰어 다녔다. 이 아이러니는 아이러니가 아니다. 짓거리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계몽과 병행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실제인 것이다. 디지털들과 신천지들도 여전히 실전이다. 그러나 국가는 계몽이다. 국가도 선한 쪽과 악한 쪽으로 편이 갈려져 있지만 구분외지 않는다는 것이 해결방법으로 계몽밖에 없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이 소설의 실상이다.
중요한 것은 실마리가 보인다는 것이다. 국민들도 그 끝을 알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들은 디지털이고 신천지는 신천지다..라는 결론과 그 안에 피해자와 지옥 백성들이 있는 것. 그들의 체계까지 양분되어 버렸다는 것 외에는 그들에게 아직 큰 변화는 없다.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리라. 갑자기 터진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대부분이 체계의 비인간적인 명령과 그 비인간성으로 곪아 왔다는 것이다! 터질 때도 되었다. 백성도 정치도..
더미는 산적한 실험들을 소화해 냈다.
D와 D의 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