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반장이었다.
학창 시절, 단 한번 해봤던 반장.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너무나도 해보고 싶었던 반장을 고2 때 드디어 하게 되었다.
반장이 너무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손을 들었고, 제일 많이 표를 얻어 그렇게 반장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왜 그렇게 반장이 하고 싶었을까 모르겠지만, 나서는 걸 좋아했던 성격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내 학창 시절 인생의 내리막길은 그게 시작이었다.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던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본보기가 되지 못했고, 존중의 대상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담임선생님은 반에 관심도 없었던ㅡ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아웃사이더ㅡ 같은 존재셨다.
그러다 보니, 조회나 종례, 짝 바꾸기 등 선생님께서 하셔야 하는 일들을 거의 반장이었던 내가 했다.
부반장이 있었지만, 부반장은 나보다 공부를 더 잘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별로 안 좋아했던 것 같다.
거의 말을 섞어본 적이 없고, 반장과 부반장 사이에서 공유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들을 거의 못했다.
그 원인 중 가장 큰 것이 공부라고 생각했다. 보통 반장이나 부반장을 하는 친구들은 공부를 제일 잘하는 친구들이 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내가 반장이 되었으니 얼마나 내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 생각도 든다.
그래도 다행인 건, 부담임 선생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돌리거나, 나와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밥을 준비해 주시는 등 마치 나의 고충을 아는 듯 내 힘듦을 덜어주려는 노력이 보이셔서 너무 감사했다.
이 당시에도 학기 초에는 친구가 많았지만, 학기말에는 이상하게 반 친구들이랑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나와 말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친구들도 나랑 말을 섞지 않으려 했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게스 아니 싫어하는 게 눈눈에 너무나도 보였다. 고2땐 학교 가는 게 너무나도 고통이라 매일 집에 와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소풍 때는 반장이라고 엄마가 친구분과 새벽부터 일어나서 손수 만드신 정말 너무나도 예쁜 꽃모양의 김밥을 선생님들 나눠드시라고 10인분 이상의 양을 준비해 주셨고, 예쁜 금색 보자기에 정성껏 포장해서 주셨지만 그 조차도 환대를 받지는 못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선생님께 전달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친구들과 나눠 먹었지 않았나 싶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께 죄송하면서도 나에게도 가슴 아픈 상처인 시간들이었다.
대학교에서도 학과 총 여학생 회장을 잠시 도맡았던 적이 있었는데 별로 썩 결과가 좋지 못했다. 이 당시에는 내가 자발적으로 한 건 아니었고, 추천과 투표로 선발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의 리더로서의 아픈 기억이 있어 다시는 리더 같은 건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어쩔 수 없이 총 여학생 회장을 하게 되었다.
지방 사립대의 특성이었을까.
당시 선배들이 후배들을 소위 말하는 굴리는ㅡ 아니, 기합을 주는 문화 아닌 문화가 있었는데 나는 그게 정말 싫었다. 안 가면 됐을걸, 그 당시에는 부르면 아무도 안 가는 사람도 없없고 안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 문화가 너무 싫었기에 내가 총 여학생 회장이 되면 그 문화는 없애리라, 생각했고, 그 문화를 없앴다.
대학교 3학년 때 내 임의대로 없앤 그 거지 같은 문화를 4학년 선배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본인들은 다 거쳤던(?) 과정이었는데 후배들은 당하지 않으니 무언가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중간에서 나는 선배들을 설득하거나 아니면 원망의 대상이 되어 따가운 눈살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은 기합을 받거나, 억지도로 술을 마셔야 하는 시간들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이 있어서일까.
이제는 누구가 앞에 나서는 게 두렵고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운 마음이 있다.
다시는 리더 따윈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삶은 또 모른다.
다시 리더를 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땐 리더로서의 자질과 면모를 모두 갖추는 것이 정말 중요할 듯하다.
리더는 리더를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