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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란 Mar 15. 2023

태풍을 뚫고

 

손꼽아 기다리던 제주여행을 하루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태풍으로 인해 제주도에 비행기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항이 된다면 숙소, 렌터카 계약금은 100% 환불이 되지만 비행기가 결항이 안 되면 계약금은 손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딸과의 제주여행, 설레었던 마음이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는 계획대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나오니 비가 무섭게 퍼부어 간신히 차에 몸을 싣고 실내에서 관람하는 빛의 벙커를 관람하기 위해 출발했다. 제주에서의 운전은 차도가 한산한 편이라 운전이 즐거워 피곤함을 모르고 다니는 편인데 이번에는 태풍으로 인해 힘들 듯하다.

빛의 벙커를 향해 가는 길에 갑자기 비바람이 세차게 퍼붓기 시작했다.  태풍을 뚫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옛 국가 기간 통신시설이었던 벙커를 국내 유일 몰입형 예술 전시관으로 재탄생시킨 문화재생공간이다.

 빛의벙커에 들어서니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모네, 르누아르, 샤갈, 중세시대의 거장들의 작품들이 재생된 공간이다. 역동적으로 되살아난 화가의 그림이 빛과 함께 나타났다 사라지는 영상들이 번쩍번쩍 눈을 황홀하게 한다. 사방의 그림들이 형형색색을 띠며 우리를 놀라게 한다. 나도 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 있는 착각에 빠져든다. 멋진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그 시대의 화가들은 타고난 재능을 어떻게 발휘했고 멋진 표현을 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다른 세상에서의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태풍을 헤치며 숙소를 향해 운전을 한다는 것이 걱정이 앞선다. 비가 무섭게 퍼붓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오니 하늘 높이 솟아오른 야자수가 흔들거리다 휘청이며 우리 차를 덮칠 거 같은 위험한 순간이다. 넓은 도로에는 시야가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앞에 트럭과 우리 차 외에는 보이지 않고 한산하다. 또다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니 나의 두려운 마음을 들킬까 봐 의연한 척 내색을 안 하고 천천히 운전을 하고 있다. 딸에게 말했다.

“카페가 보이면 우리 잠시 비가 주춤할 때까지 쉬었다 가자."

그 말끝에 앞의 트럭이 옆길로 들어가고 있다. 우리도 그 트럭을 따라서 들어가 보니 마트 주차장이 아닌가? 와! 이름을 알 수 없는 트럭을 따라 들어간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빛의 벙커 전시관에 갈 때보다 더욱 세차게 내린 태풍은 불안과 긴장감 속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기에 우연이 아님을 실감했다. 마음을 추스르며 한숨 돌리고 차 안에서 비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안전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피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여행의 첫날,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니 감사가 절로 나왔다. 내일 염려는 내일 하기로 하고 딸과 함께 시원한 음료 한잔을 한 후에 잠을 청했다.


  둘째 날도 비가 내리는 거리를 나섰다. 그래도 하루 종일 비가 퍼붓는다면 나갈 수 없겠지만 시차를 두고 내리는 비는 우리 여행을 도와주는 듯하다.

 오늘도 태풍은 제주도에 머물러 있어 실내에서 구경할 수 있는 전시장을 향해 갔다. 태풍‘힌남노’가 오늘을 고비로 제주도를 지나간다는 뉴스를 듣고 여행 내내 비 오는 날씨는 아니겠지 내심 기대해 본다.


반가운 해님


  이번 여행의 이틀은 긴장감 속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다녔지만 셋째 날은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에 반가운 해님이 얼굴을 내민다.

 이틀 동안은 사나운 바람에 바닷가 근처에도 갈 수없었지만 오늘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허니문카페를 찾아 분위기를 맘껏 즐겼다. 제주도 주민인 어떤 분이 엉또폭포는 평상시에는 말라있고 이번 비로 볼 수 있는 폭포라고  추천해 주어 달려갔다. 비포장도로에 협곡이라 들어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비 온 뒤에만 볼 수 있는 곳이라 행운의 폭포라 한다.   


 무시무시한 태풍인 ‘힌남노’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 뉴스를 보고 딸과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여행을 즐기고 있는데 태풍으로 인해 집도 잃고 한 가정이 무너진 소식들이 들릴 때마다 속상해서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다.

또한 포항 아파트에서 중학생이 엄마와 함께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다가 ‘엄마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떠난 그 아이의 마지막 인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딸과의 여행은 비 오면 비를 피해 실내 전시관으로 햇살이 비치는 날에는 자연경관 속에서 보고 느끼고 또 하나의 추억을 간직한 시간이었다. 요즘은 제주 한 달 살기나, 터를 잡고 제주에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복잡한 서울살이에서 벗어나 제주바닷가를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뻥 뚫린다. 나도 언젠가는 제주에서의  한달살기를  꼭  보고 싶다.


 제주는 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독립된 도가 아니었다. 전라남도에 부속된 섬이었다가 비로소 분리, 승격되었고, 지금과 같은 특별자치도로의 개편은 2006년에 이루어졌다. ‘제주’라는 이름은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가 고려시대에 처음 붙여졌다. 그보다 더 이전에 이 섬은 ‘탐라’라 불리는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제주는 외지인 외국인의 투자가 많다고 한다. 우리의 제주를 잘 지키고 많은 관광객들의 도시로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제주도는 갈 때마다 새롭고  친근감이 드는 편안한 곳이다.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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