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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란 Mar 09. 2024

무의식의 두 얼굴

     


 구정 날 우리 부부는 딸과 함께 새벽부터 서둘러 경기도 광주 큰 집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남편은 주차를 하는 동안 나와 딸이 먼저 큰집에 들어서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겉옷을 벗어 두려고 현관 바로 옆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형님의 말 “옷에서 먼지 떨어진다, 저 쪽방에 갖다 놔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들어올 때부터 큰 형님 기분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는 내심 ‘옷에서 먼지가 떨어지면 얼마나 많이 떨어질까?’ 깔끔한 성격은 알겠지만 새벽부터 먼 곳에서 온 사람한테 잔소리를 하는 건 아닌데!!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내 속은 기분이 상했다.

나는 얼른 부엌방으로 옷을 옮겨놓고 우리 딸도 일손을 거들려고 식탁 의자에 앉아 있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머리를 살짝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음식에 머리카락 떨어진다. 머리 만지지 마라” 두 번째 말이 이어졌다. 그러려니 하고 내 할 일을 하려고 과일 바구니를 식탁 위에 올려놨다. 그런데 전이 담아있는 소쿠리를 들고 오던 형님이 “과일 소쿠리를 내려놓아라”라고 말을 한다. 순간 나와 딸의 행동에 일일이 잔소리를 하니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가만있으면 안 되겠네’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순간 쏟아 낼 상대를 찾다가 너 오늘 잘 만났다는 듯이 갑자기 형님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네가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 하며

집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다. 이런 난리는 처음 본다.

그 현장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 딸을 데리고 나왔다. 딸은 집으로 가고 나는 이대로 집으로 가면 안 될 거 같아 한참 후에 큰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집 안은 다시 평온을 찾고 조용했다. 나는 형님이 있는 부엌으로 다가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형님을 대하니 그때부터 형님도 나에게 친절하게 대한다. 이번에도 역시 불편한 명절이 되고 말았다.


 요즘 들어 큰집에 분위기가 좋지 않아 딸에게 이번 명절에는 가지 말라고. 했는데 결혼을 앞둔 딸은 큰집에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 같다고 함께 했는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딸은 그 와중에 큰아버지한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왔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듯하고 한편 그런 딸이 기특해 보였다.      

  우리 형님이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50여 년 동안 집안의 큰일을 일 년에 열 번은 넘게 제사를 모셨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형님도 힘드니까 짜증 내는 건 이해가 된다. 어쩌면 자신의 억울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을 거 같다. 며느리가 넷이나 있지만 감당해야 하는 시댁의 행사는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은 형님의 억압되었던 감정들을 마구마구 쏟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형님을 조금 쉬게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일을 계기로 형제들 간에 의논이 되어 앞으로 집 안 큰일을 간소화 하기로 했다.

 

 살다 보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받는 억울함으로 기분 상함을 경험했을 때 우리는 바로 기분을 표출하기보다는 참고 내면에 담아둔다. 억압된 감정들을 쌓아두게 되면 언젠가는 성난 사자가 되어 난동을 부릴 때가 온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무의식 점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바로 해소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다.

‘내가 왜 그때 그 말을 했을까?

‘좀 참을 걸,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하며 금방 쏟아내고 후회를 한다.

나도 그전에는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했던 적이 종종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나를 알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다. 일기를 쓰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느낌을 적어본다. 또한 나의 나쁜 습관과 단점을 파악하고 어디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생각해 본다.

과거의 삶이 지금 현재의 일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바라보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잘 살아내야 한다고 다짐해 본다.

 형님의 마음에 겹겹이 싸여 있을 수 있는 분노와 억울함을 이해하고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큰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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