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aarami’s Diary(40)
12월 9일
대학교 교수 중 시니어 교수의 월급이 300,000루피라고 한다.
미화 1천 불 정도다. 일반 교수는 100,000루피라고 한다. 한화로 40만 원이다.
단기 계약직 강사는 50,000루피, 20만 원 정도이다.
단기계약 강사 H 씨의 자취집 임대료는 8,500루피다. 매달 전기요금으로 1,500루피를 쓴다. 주거에 드는 최소비용이 1만루 피다.
나머지 4만 루피, 16만 원으로 사리도 사 입고(교수들은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고 출근한다.), 밥도 사 먹고 주말마다 3시간 거리인 본가에도 간다. 본가에 가는 차비는 편도 820루피다. 주말에는 인터넷 강의를 한다고 한다. 어쨌든 그녀는 예쁜 옷도 많이 입고 커피도 마시고 나랑 수다도 많이 떨어준다. 재미있게 살고 있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는 H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H도 묻지 않았다. 내가 코이카에서 매달 받는 생활 지원금은 H가 대학교에서 일하고 받는 월급의 3배 정도이다. 그런데 나는 그 돈으로 사는 게 빠듯하다. 같은 나라에 사는 데 이 돈이 부족하다. 스리랑카에서는 계란이 10알에 2~3천 원이고, 닭고기는 500그램에 4~5천 원이다. 한국에 비해 싸지 않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 2~3천 원은 한다. 파스타는 한 그릇에 1만 원 안팎이다.
스리랑카 사람이라고 해서 H가 사는 계란 값이 내가 사는 것과 다를까. 에어컨이 나오는 마트가 아닌 시장에서 사면 조금 저렴하기는 하다. 그래도 하루에 한 번 계란이나 닭고기를 먹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외식은 더하다. 아마도 에어컨이 나오는 커피전문점이나 웨이터가 서빙을 해주는 식당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학교식당이나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에서의 식사 한 끼 1천 원~2천 원 정도이고, 커피나 주스는 300원 안팎이다. 많게는 열 배쯤 차이가 난다. H와 어울리려면 에어컨이 없고, 강아지가 다리 사이로 지나다니고, 수저 없이 손으로 밥을 먹는 식당으로 내가 가야 한다.
나는 더 이상 학생들에게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는다. '주말 활동'은 한국어 초급 학습자들과 '친근한 주제'로 말하기 연습을 할 때 곧 잘 던지는 질문이다. 어제 뭐 했어요, 주말에 뭐 했어요? 방학에 무엇을 할 거예요?
랑카 대학생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집에 갔어요. 집에 있을 거예요. 한국어가 제법 능숙한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돈이 없어서 집에서 드라마만 봐요.
아이들이 할 말이 없다고 하니 대신 내가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떠들어댔다.
콜롬보에 있는 영화관에 갔어요. 바비라는 영화를 봤어요. 이벤트를 했어요. 많은 여자 관객들이 핑크색 옷을 입고 왔어요.
친구하고 여행을 갔어요. 미리사에 가서 배를 탔어요. 바다에서 고래를 봤어요. 쇼핑도 했어요. 기차를 타고 엘라에 갔어요 10시간 동안이나 기차를 탔어요...
지금은 더 이상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주말활동 말하기 금지다. 내 딴에는 주말 활동에 관한 다양한 표현을 알려주고 대화의 기술을 연습한다는 목적으로 하던 것이었지만, 아이들 눈에는 외국인의 돈자랑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는 영화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아마, 여럿일 것이다. 어떤 아이는 외출을 잘 하지 않고 집에서 내내 한국 드라마를 본 덕분에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 드라마를 볼 때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텔레그램을 이용한다. VPN은 필수다. 인터넷을 항상 이용할 수 없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자꾸만 너의 경험을 이야기해보라고 말하는 건 못된 짓이 아닐까.
선생님들은 사무실에서 매일 차를 마신다. 작은 디스펜서에 얹힌 18.9리터 용량 생수통은 사용감이 있었다. 그런데 생수통이 사용감이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생수통은 재활용되고 있었다. 물통이 비면 수돗물을 채워서 다시 얹어놓았다.
젓가락질을 태어나서 처음 해 본 선생님은 김밥 집는 걸 어려워했다. 그러나 배우려고 노력했다. 김밥이 터지면 노란 단무지를 집어 들려고 노력했다. 어렵게 식사를 마친 선생님은 젓가락을 들고 수돗가로 갔다. 깨끗이 씻어서 책상에 널어 말렸다. 컵라면을 먹을 때 쓰는 나무젓가락이었는데도.
A4용지를 박스로 샀다. 종이팩을 모두 꺼내어서 박스가 비었다. 그러나 박스는 버려지지 않는다. 사무실에는 아주 오래된 종이 박스들이 쌓여있다. 반쯤 쓰다 만 아주 오래된 공책도 있고 세로로 쓰인 색 바랜 책도 있다.
나는 오늘도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에 앉아 얼음이 가득 찬 유리잔에 담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노트북을 켰다.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을 보고, 메신저로 한국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쇼핑을 하고,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았다. 카페에는 현지인이 많았다. 그들도 나처럼 노트북을 앞에 두고 손에는 아이폰을 귀에는 에어팟을 장착했으며 만 원 짜리 라자냐나 팔천 원짜리 베이글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으므로 나는 여기서 경제적 격차를 인식하지 못했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 격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감은 잘 하지 못한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화장품을 그냥 버릴지, 꾸역꾸역 쓰다가 버릴지를 결정하면 살았다. 여기에서도 그렇게 산다. 생활비가 빠듯해도 버릴 건 버린다. 나의 생활비는 한국에서도 여기서도 언제나 빠듯했다. 그런데도 자꾸 사고, 계속 버렸다.
아이들 앞에서 할 말을 고르고 조심하게 된다. 아이들은 가끔 한국에 가고 싶다는 욕망을 표출하고, 한국에서의 생활, 임금, 물가를 궁금해한다. 월급 200~300만 원, 월세 50~100만 원, 통신비 3~10만 원, 사과 한 알에 4천 원 운운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오로지 월급 200~300만 원에서 희망을 찾는다. 나는 또 망언을 한다.
지금은 어렵지만 노력하면 잘 살게 될 거예요.
아이들은 누구도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은 안 돼요. 이 나라에서는 안 돼요. 여기서는 부자가 될 수 없어요.
카페에 앉아 견고한 격차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왜 있을까를 생각한다. 답을 찾으려면 이번 생이 모자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