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이 (무려 세 번) 난자를 얼린 이야기

난자동결 이유와 장점

by 탱자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부모님의 부부생활 탓인지, 제 멋대로 살아온 생활 습관 탓인지, 한 번도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왜 다른 사람과 국가가 만든 제도에 우리의 관계를 맞춰야 하냐고, '남들 다 하니까..'라는 이야기로는 설득되지 않는다고, 세금 혜택의 이유가 아니라면 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냐며 반항했다.

Hopeless Romantic*으로서 연애를 할 때마다 애인과 미래와 영원을 약속하지만, 결혼은 목전까지 갔다가 돌아온 적 있다.

*Hopeless Romantic: (현실적이지 못한) 로맨티시스트



그럼에도 난자를 동결하기로 결정한 것은, 결혼과 출산이 순서대로 오는 세트 상품이 아니라는 나의 생각과 더불어 적절한 아기 아빠를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믿지 않지만 평생의 반려자는 원했고, 가정이 주는 안정감을 갖고 싶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그와의 아이를 만들고 싶어 졌을 때, 내 나이가 걸림돌이 된다면 너무 좌절스러울 것을 알았기에 그 가능성을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실로 35살에 신혼집은 어느 아파트가 좋겠냐고 묻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후로 상실과 불안감이 말도 못 하게 나를 힘들게 했다. 갑작스럽게 엄습하는 불안과 지나친 우울감의 원인은, 나이와 안타깝게도 시간이 정해져 있는 출산의 가능성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가 치유의 한 수단으로 난자를 얼리기로 했다. 나는 T임이 확실하다.


아기 엄마들이 다른 아기 엄마들과 친하게 되듯이, 주변에 난자동결을 고민하는 미혼 친구들이 많았고 때 마침 난임병원 연구소에서 일하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 병원을 결정했다. 처음에는 '일단 검사나 받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병원 진료 일정을 잡았다. 첫 진료에는 전반전인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소변검사 및 '난소나이'라 불리는 AMH수치를 확인하기 위한 피검사를 진행하게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제 나이보다 높은 40대 초반의 수치를 받았고, 그 자리에서 시술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좋은 난자는 하루라도 어린 난자라는 전문의의 가볍지만 단호한 설명이 한몫을 했다.


감정적으로는 때 마침 애인이 없어 시간이 남았고, 뭔가 하고 싶다는 동력이 있었다. 쉽게 말해 심심했다.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으로 난자동결 여정을 시작했다.

이성적으로는 당연히 약 3백만 원 이상의 예상 비용이 필요한 시술이기에 여러 가지를 따져봤다.

주변에 난임부부가 대부분이었던 것, 난임치료 시 난자동결은 어차피 첫 번째 단계란 것, 35세 이후 난자의 질이 유의미하게 급격히 떨어지는 것 등을 감안했다. 어차피 할 거면 한 살이라도 어린 난자로 하는 게 좋은 것은 당연하고, 시간과 돈이 있다면 정말이지 안 할 이유가 없는 시술이다. 2주의 시간과 시술비용으로 사는 보험과 같다.


정말이지 내 맘대로 되지 않던 배우자 만나기, 애기아빠 찾기라는 과제의 마감 시한을 어찌 보면 간단한 시술과 돈으로 늘린 것이다.

그로 인한 부담감이 없어져 이후 연애도 쉬워졌다. 초조한 마음에 잘못된 결정을 내릴 확률이 적어졌고, 무엇보다 내가 내 인생에 끌려가지 않고 주도하는 느낌이 좋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확실히 줄어 전보다 편안하다.


모든 사람의 신체 컨디션은 다르고, 정신건강 상태도 다르다. 난자동결이 아니더라도 꾸준한 운동과 규칙적인 식사 등의 몸관리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금전적인 부분도 근래 정부의 지원이 검토되고 있는 시점이다. 난자동결은 아직까지 과학자들이 만들어내지 못한 타임머신에 가장 유사한 산물이라 생각하고, 신체적/정신적/금전적 조건이 된다면 무조건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