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를 사게 만든 남자와 연애

망한 연애 이야기 01

by 탱자


소개팅으로 만난 나의 n번째 남자.


처음 만난 날, 나를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만 데려다준 뒤,


"택시 탔다, "

"집에 도착했다"


마음에 쏙 드는 시차의 카톡을 받고

이 남자는 남자친구로 삼기에 괜찮을 것이라고 바로 예감했다.


폭풍 같은 대시와 귀여운 외모에, 바로 사귀기로 했고

만난 지 5일 만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로맨틱해 보였다.


어딜 가든 기사 노릇을 자처하고

모든 문장의 끝마다 나를 칭송하고, 쏟아지는 애정 공세에 정신없이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고


"이 나이”에 이렇게 "열렬히 나를 좋아해 주는 모습"에 '아, 얘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Honeymoon phase*가 지나고

'날 만나는 대신 친구를 만난다'거나.. '데이트코스를 매번 짜오지 않는다'거나 하는 진부한 다툼의 이유들은

근 20년간 "연애인"으로 살아온 나는 가볍게 무시하며 '드디어 네가 정상인으로 돌아오는구나...!' 하는 마음에 참으로 기뻤다.

*Honeymoon phase: 연애 초기 모든 게 사랑스럽게 보이고 순조롭게 지나가는 시기



허나 순하디 순한 줄 알았던 그는 여러 개의 red flag*들을 보여줬는데..

*red flag: 흔히 무언가(연애)의 초기단계에서 감지되는 위험신호.


소소하게 운전 중 난폭성을 보였고,

각종 지역 "역시 OOO 사람이라 저래",

학벌 "으 분명히 OOO도 못 나왔나 봐",

외모 "쟤 생긴거 봤어? 으으" 비하발언을 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싸웠다. 나도 아주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사회생활도 할 줄 알고! 그렇지만, 옳고 그른 것은 알고 있었다.


충격 그 잡채였지만, 콩깍지 호르몬의 노예로서

매번 미안하다는 그의 말을 (진짜로)믿고 대화로 문제를 풀 수 있을 줄로 심각한 망상을 했다.



그는 나를 만난 해 초 금연을 시작했다고 묻지도 않은 얘기를 했고 그게 자기 발을 찧게 됐다.

어느 날 차에서 담배가 발견됐는데, 차를 정리하던 중 나온 옛날 것이라고 했다. okㅋ

이후 다른 날 전자담배가 발견된 날은, 그건 왜 여깄 는지 모르겠으니 집 앞 화단에 고이 숨겨 두겠다고 했다. ok..?

또 한 날은 내 손을 잡아넣은 주머니에서 액상 담배가 발견됐는데, Houdini*처럼 반대쪽 주머니로 옮겼다.

*Houdini: 유명한 마술사


여러 차례 물증이 잡혔지만 창의적이지도 않은 거짓말을 했고, 처음엔 나에게 잘 보이려 거짓말한 것이 귀엽다 생각할 요량이었는데

이 정도면 내가 ㅈㅂ같이 보이나.. 기분이 나빴다.


궁지에 몰렸는지 자발적으로 니코틴검사를 받겠다던 그는,

모발 검사가 불가한 삭발로 나타났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반삭에 준하는 스포츠머리였다.)


아직도 당시 자문을 구했던 회사 흡연자 동료들은 그를 삭발남이라 칭하며 "과장님, 그때 그 삭발남은 잘 지내요?"라고 묻곤 하고, 나는 짧은 욕으로 대꾸해 준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갈수록 그와는 유치한 사랑의 속삭임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고,

지적 호기심이 많고, 토론을 즐기며 말이 많은 나는 더 이상 그와의 미래를 그릴 수 없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침대 위 대화도 소원해졌고, 온갖, 정말 온갖 대화와 갖은 노력에도 우리의 육체적, 감정적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좋은 레스토랑, 배려, 말, 선물과 꽃을 고를 줄 알았던 그의 센스는 보기 드문 것이었고,

30대 중반이었던 나는 결혼의 기회 앞에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이 무섭기도 했다.



여름휴가 차 떠난 경주의 한 호텔 주차장에서, 내 짐을 들어주겠다는 그가 짐을 낚아채다 내 팔을 쓸리게 하여 "아!"라고 내지른 나의 외마디 비명에 "가지가지하네.."라는 소리를 들은 뒤,


35세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는 다시 싱글이 되었다.



당시 폭등하는 부동산 경기에 대해, 내가 결혼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그와 헤어지기 전까지 인지하지 못했다.

자칭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나는, 실연과 동시에 내가 '벼락거지'가 된 것을 실감했다.


엄습하는 공포에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고,

그가 일전에 나에게 넌지시 우리 미래의 신혼집으로 어떻겠냐 물었던, 당시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아파트 단지는

나의 재정상태로는 턱없다는 것도 배웠다.

알게 되면 될수록 경제에 무지했던 내 상황이 개탄스러웠고

불안이 심해져 공황발작을 했다.


직장 부서 내 나랑 시시덕거리던 열명 남짓 한 동료들 모두 배우자, 집, 차, 토끼 같은 자녀(들,) 심지어 귀여운 개까지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들 이렇게 자기들끼리만 잘 살고 있었는지 배신감을 느낄 판이었고, 상대적 박탈감이 말도 못 했다.

집을 사야지만 불안함이 없어질 것이라고 판단하여,


결국 나는 2021년 말 아파트 신고가를 경신하며 1 주택자가 되었다. (박수~~~~~~~짞짞짞)


sticker sticker


어차피 결혼은 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였기에 (현재도 마찬가지,) 언제 올지, 올지 말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저금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 생각됐고, 답답했다.


주택 매매 이후에도 부동산 경기는 순환하고 있고,

구매비용 마련을 위해 감당해야 했던 기회비용도 있다.


하지만 과정에서 결과까지 정말 많이 배웠고 인간적으로 확실히 성숙됐다.

누군가가 배우자를 고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첫 직장과 첫 주택마련이라고 하는데,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비로소 내 두 발로 사회에 서서 나만이 나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다는 무게감도 느낀다. 이 모든 걸 삭발남과 헤어지며 배웠다는 것이 지금은 웃음이 난다.




지금도 가끔 그의 인스타를 훔쳐보며 결혼은 했는지, 여친사진이 올라오는지.. 확인하지만, 시간과 금융치료(?)로 그 횟수는 줄어들고 있다.


열심히 임장을 다니던 때에 그를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마주쳐 펑펑 운 적이 있는데,

그날 나를 달래주지 않았던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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