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에서 자리 맡는 사람들

by 탱자

회사 앞 헬스장.


리모델링 후 새로 열어 인근 헬스장 중 시설이 가장 좋고 너무 넓어 따로 유산소를 할 필요가 없다는 곳.

파우더룸 개수는 대략 20~25개.


2년간 아침 출근 전, 점심시간, 퇴근 후 모든 시간을 다 가봤는데, 파우더룸 (헤어드라이기와 거울이 있는 1인 사용 공간) 이 가장 붐비는 시간은, 아침.


헬스장 내 유산소 공간은 분명 점심시간에 가득 차는데, 파우더룸은 아침에 머리와 화장을 하고 단장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나는 가끔 집에서 full shower routine* 할 때를 제외하곤 간단히 샤워만 하기 때문에 헬스장에서도 머리만 말리고 나온다.

full shower routine*: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샅샅이 씻고, 바르고, 관리하는 루틴. 반신욕, 머리 트리트먼트, 바디 스크럽, 마사지 기타 등등을 포함.


분명 사우나 내부와 락커룸 안에 자리를 맡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 강제 퇴장한다는 팻말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지만, 자리 맡기는 여전하다.

내가 쓸 자리가 남아있으면 개의치 않지만, 아침 시간 얼른 머리를 말리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에

떡하니 화장품 꾸러미, 타월 등으로 자리 맡기를 하는 분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눈이 위로 돌아가고 한숨이 나온다.


도대체 왜 자리를 맡을까? 순서대로 이용하면 되는데..


한 번은 급한 맘에 짐이 놓여있는, 꽤 오랜 시간 비워져 있던 자리에 가서 헤어드라이기를 쓰다 자리 주인(?)이 와서 비켜주기도 했다.


보통은 조금 기다리면 자리가 나기 마련인데, 하루는 체감 상 십분 넘게 기다리게 되어

도대체 저 양심 없는 자리맡기한 몰상식한 인간은 누군지 지켜봤다. 속으로 째려봄..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알몸으로 자리가 나길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새치기(?)하는 분들도 있고 좀 오래 기다리고 있자니

어떤 한 분이 물어보셨다.


“여기 와서 같이 할래요?”


헉 그 아줌마였다.

매일 아침 김치통 같은 화장품과 목욕용품 두 꾸러미로 자리를 맡아두시는 사우나 베테랑이신 듯한 아주머니!


그날은 나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머리를 말리고 계셨는데,


나도 머리만 말리면 됐기에 웃으며 사양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자리가 좀처럼 나지 않아 더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머리를 다 말리셨는지, 자꾸 순서를 뺏기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내가 안타까우셨는지

본인이 다른 자리로 가시며 본인 자리에 나더러 오라고 손짓하셨다.

(다른 자리로 이동하셨다. 본인 지정석인지 친구 옆자리인지 모름.)


순간 이 이기적인 아줌마! 에서 너무나 너그럽고 정감 있는, 깨어있는 아주머니로 내 마음속의 혼자만의 선입견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주머니에게 감사하다며 (알몸으로) 인사를 하며

맘 속으로 지독히도 흉을 보고 있었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웠다.


도대체 이 아주머니는 어떤 분이신 걸까? 좋은 사람인 걸까 나쁜 사람인 걸까?

꼭 그 누군가를 내 기준으로 판단해야지만 나는 왜 마음이 편한 것일까?


여러 생각을 하며 아주머니가 양보해 주신 자리에서 머리를 오분만에 휘릭 말리고 나와 심란한 마음으로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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