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풍경과 노후 된 시내버스 탑승 /23년9월9일(토)

by 강민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벼리가 어제 있었던 군인의 야비한 행동에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그 문제를 다시 꺼내면서 엉엉 울었다.

"난생처음 이런 일을 당했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케냐 흑인에게 애원하듯이 사정 사정했어야 했나."

"실랑이를 하는 동안 가슴 앓이 하면서 마음이 상한 일을 생각하니 분하고 억울해서 못 살겠다."

"부러울 것도 없고 만족하며 소신껏 살아가면서 봐 달라고 빌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왜 이런 험한 꼴을 당해야 하는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아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안고 달랬지만 흐느낌이 계속되니 내 마음도 아팠다.

밤새 잠도 못 자고 눈물만 흘렸다는데 마르지도 않았는지 아침에도 펑펑 쏟아낸다.

어제 벼리가 말없이 자러 가기에 곤히 잘 자기를 바라며 조금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울었는지도 몰랐는데 혼자서 끙끙거리며 하얀 밤을 지새웠다니 벼리에게 미안했다.

케냐의 군인에게 한번 봐달라고 사정 사정했던 것에 자존심이 상하고 비굴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케냐에게'

'내가 흑인에게'

당장 국회경찰서를 찾아가자고 했다.

오늘 경찰서에 가서 그 군인을 찾아내어서 직접 사과를 받거나 무릎을 꿇게 만들어야 마음이 풀릴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정의로운 경찰로부터 케냐를 대변하는 사과를 받았는데 벼리는 아니었다.

오늘은 토요일, 내일은 일요일이니 관공서가 모두 휴무일이다.

월요일까지 기다리려면 멀다.

일단 우리나라 대사관에 편지를 보내서 방안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래서 편지를 적어 주 케냐 한국대사관에 이메일을 보내고 나니 벼리가 조금 안정이 되는지 기다려보자며 보낸 편지 내용을 읽어 달라고 했다.

벼리의 눈물과 어제의 기가 막힌 시간들이 떠올라 읽는 내가 울분이 차올랐다.

메일을 보내고 유튜브를 보니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이 케냐에서 무리한 협박으로 돈을 요구당하는 사례가 많이 보였다.

젊은 유튜버는 감옥에 6번이나 갔다 왔다고 했다.

관행처럼 행해지는 케냐의 실태에 놀라움이 컸고 뒷돈을 뜯어내는 미개한 나라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케냐 나라 자체가 아직도 그런 문화의 잔재가 사회 구석구석에 있기 때문에 관광객인 우리가 바로 잡을 수는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돈으로 해결한다면 그런 일은 계속될 것이며 제2, 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겠는가?

우리의 행동이 케냐를 투명하게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일조가 되었을까?...

잠시 뒤 한국의 군위에 있는 압곡사 스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주신 것이었다.

마치 어제의 상황을 알고 위로를 해주는 듯했다.

벼리는 무현스님을 무척 좋아한다.

3년 동안 108배 새벽기도에 대하여 높이 평가를 해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 절에서 3년 108배 회향을 했고 다시 2년 차에 접어들었다.

벼리 덕택으로 압곡사의 음악회에 세 번이나 참석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재미있게 들어주시고 찾으시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스님은 무사히 여행을 잘 마칠 것을 기도하며 항상 마음은 우리와 같이 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페이스톡 연결이 불안정하여 제대로 된 통화는 못했지만 스님을 뵙는 것 만으로 벼리의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스님과의 통화를 끝내고 마트로 가서 부족한 식재료들은 사 왔다.

외식보다는 숙소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가 있어 매우 좋다.

레스토랑의 주 재료는 고기, 빵, 야채, 감자로 다양하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내어 놓지만 한국의 맛이 우리의 입을 압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서 어제에 이어 다시 나이로비 시내로 갔다.

걸어서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시내는 매연가스로 인하여 냄새가 좋지 않고 무분별한 교통체계로 인하여 길을 걸어 다니기가 사실은 좋지 않은 환경이다.

늘 마스크를 끼고 다닌다.

가다 보니 나이로비 국립병원이 보여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병원 분위를 봤다.

토요일인데도 진료 중이었고 대기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제법 깨끗한 환경에서 병원이 운영되고 있었고 깔끔했다.

난 젊을 때부터 걷는 길에 병원이 보이면 들어가는 습관이 있었던 것처럼

여행하면서도 마찬가지다.

건강을 돌아보는 시간이며 자신을 다 잡아보는 계기가 된다.

조금 더 내려가니 담장 아래 신발 닦는 곳이 있었다.

한 남성이 운동화를 신은 채 한 발을 내밀고 앉아 있으니 구두처럼 닦으며 새것으로 변신시키고 있었다.

구두약 바르듯이 비누칠을 하고 솔질을 하는 모습이 참 신기하고 새로웠다.

우리에게 한 번 닦으라는 주인의 요구가 있어 가격을 물으니 1,000원이었다.

운동화에 물이 들어올 것 같아 사양하고 길을 재촉했다.

재미있는 구경만 하고 나온 셈이다.

마사이 마켓을 가다가 길을 잘못 들었나 보다.

좁은 길 양 옆에서 자동차 수리를 하는 엉망진창의 거리에 진입을 했다.

한쪽 길 비스듬한 언덕 아래 질뻑거리는 물이 군데군데 고였고 쓰레기가 뒤엉켜 지저분하기가 극에 달했다.

거지꼴 행색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딱 어울리는 길이다.

흑인들이 기름범벅이 된 채로 하얀 눈과 이로 우리를 부르며 쳐다보는 것이었다.

약 200미터 정도의 길이 자동차 수리점인 듯 폐차 직전의 차들이 총출동하여 자리 잡았다.

온전한 차가 없이 문짝이나 바퀴가 하나 이상 달아났거나 고장 난 상태다.

차 밑으로 들어가 누워서 작업하는 사람, 볼트 너트를 조이거나 광택제를 뿌리는 사람, 물을 뿜는 사람으로 얼굴에 흙과 땀범벅이다.

바닥은 깨진 유리조각이나 박스나 종이들이 굴러다니며 난장판이다.

밀가루 같은 하얀 가루들이 날리는데 다 쓰러져가는 가게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은 뭐란 말인가?

까치발로 겨우 딛으며 냄새나고 더러운 분위기에서 재빨리 탈출하였다.

벼리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혼비백산하며 나오면서 하는 말.

"세상에 안 봐도 될 것들을 너무 많이 봐서 이제 그만 보고 싶다."라고 했다.

지지리도 가난하고 못 사는 동네인지 행색이 초라하고 누추했다.

공원을 걸으며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힐링되어 살 것 같단다.

시내의 중심가로 가서 상점들을 구경하니 아까 보았던 잔상이 사라져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듯했다.

벼리는 사지도 않으면서 구경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니 여자의 깊은 감정에 갸웃거려진다.

어제 일로 인하여 케냐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함부로 사진을 찍기가 부담스러워 매우 조심하고 있다.

시내를 걷다가 오늘은 숙소로 돌아갈 때 현지 버스를 타고 가자는 벼리의 제안이다.

나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숙소 방향으로 가는 현지 시내버스를 찾아 나섰다.

퇴근 시간이라 물밀듯 몰려나온 인파와 차량들이 도로와 인도를 꽉 메웠는데 길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까지 합세하여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골라 골라 오백 실링~~"

인도의 반 이상을 점령한 상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장날인지 평소의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많이 저렴했다.

버스도 차도 많은 복잡한 도로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우리의 아파트 방향으로 가는 버스 타는 곳을 물어 물어 찾았다.

버스는 매우 낡았지만 이곳 현지인들의 귀중한 발이 되고 있었다.

우리 돈으로 일인 500원 정도 하는 대형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우리나라 버스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름 깨끗했다.

양 쪽으로 각각 세 좌석인데 의자가 좁아서 몸을 약간 삐딱하게 틀어 앉았다

이색체험을 하며 현지인들과 같이 동행하며 달렸다.

현지의 시내버스는 출발시간이 따로 없고 차에 손님이 다 타면 떠난다.

차가 출발하면 차장이 요금을 징수하는 방식으로 카드나 버스티켓은 없고 오로지 현금을 받았다.

내리는 곳을 말하면 차장이 달리는 차 출입구를 열고 손을 내밀어 차 몸체를 두드리며 외친다.

여기는 서울, 부산, 김해...

케냐 버스 탑승의 새로운 경험이다.

'야호 다 왔다. 김해~~'

------대사관에 보낸 편지내용-----

안녕하십니까?

어제 우리는 케냐시내 국회의사당 앞 도로에서 군인인지 경비인지는 몰라도 어떤 사람에게 국회의사당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우리 휴대폰을 거의 강탈하듯이 빼앗았고 사진을 찍었으니 감옥에 가서 판사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협박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돈을 요구하여 케냐 돈 3,000실링을 주고 풀려 났습니다.

이에 우리는 케냐 국회경찰서를 찾아가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가해자의 책임자를 경찰이 찾아서 돈은 돌려받았습니다.

경찰이 저에게 케냐를 대변하여 사과의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해를 하고 케냐 국회경찰서를 나왔는데 우리 아내가 밤새 잠도 못 자고 억울하다며 울고만 있습니다.

낯선 타국에서 이런 곤란한 일을 겪으니 더 서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과를 받았지만 저의 아내 심정을 풀어 주려면 국회경찰서에 다시 가서 가해자를 찾아 직접 사과를 받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대한민국의 국민이 케냐의 국민 그것도 관복을 입고 근무 중인 사람들에게 당한 이 억울한 심정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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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 국립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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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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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내버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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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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