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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Apr 20. 2023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헤치며.

J가 필리핀 사업을 하고 싶다 하네.

얼마 전 신임이수교육을 받고 한 달 경호 알바를 뛰었던 2월이었다. 비수기 시즌인 만큼 일은 일대로 없고 내 통장 잔고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일이 없으니 무기력해져 간다는 스스로 불러일으킨 자책감이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오죽하면 날 맞이해 준 짱가(9년째 키우던 말티즈)가 귀찮고 밥만 입에 축여주는 생물체에만 한정 지을 정도였을까.


일이 없기에 몸이 편하고 생각의 여유가 있을 줄 알았다. 고작해야 1월 중후반이 지나고 2월 초가 되자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또 스멀스멀 올라왔다. 최근에 친구가 전화해서 DDP 내나라여행박람회를 끝마치고 안국역에서 만나 익선동 노상 포장마차에서 걸쭉하게 막걸리와 파전을 함께했다.


J : 너 나랑 같이 다시 보라카이로 돌아가서 여행 사업하지 않을래?


나 :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J : 내가 아무리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기관 비슷한 하청업체에서 일하자니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전혀 없으면서 그저 돈만 축내는 직원으로 비치니까 그게 참 싫고, 나도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면 결혼해서 세상 편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거 같다고 요즈음 느낀다. 차라리 보라카이 가이드했을 때 돈도 많이 벌고 미래지향적인 꿈과 포부도 가졌잖아.


나 : 그런데 생각 잘해라. 우리 자본금이 얼마나 있고, 더군다나 넌 아내도 있잖아. 영화 수리남 보고 뻑가서 우리 인생 홍어 대박처럼 터질 거 같냐고. 그건 이상적이야.


J : 그냥 그렇게 생각이 든다는거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너한테만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때가 참 좋았지. 돈도 많이 벌고...


(중략)


모진 이야기와 미래적 이야기가 오갈 때 우리가 서로 하는 대화는 분명 지극히 5년 전 파릇했던 20대 중반 사이의 모습의 데자뷰였다.


돈이 있나, 그렇다고 안정적인 직장인가, 하물며 고정적인 투자 수익처가 있나. 거래처는 그렇다 쳐도 말이다.


친구는 다양한 B2B서비스를 직접 현장에서 맞이하며 거래처와 상담을 하다보니 그 대표들과 상담자들의 신상 정보를 매일 확인하며 어느새 자신과 비교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따지면 10억을 들고 나 지방 살래요라고 자부하며 안정 투자유치 확보를 위해 공공기관과 협의를 맺고 지원금을 받고자하는 상위 0.1%를 그 친구가 간접적으로 겪었던 것이다.


"10억 중에 1억은 기부할거고요, 3억은 1년간 지방 투자비로 활용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2억은 영업관리비 및 기본고정비 플러스 알파 할거고요, 나머지는 귀농하고 생각해 봐야죠."


요즈음 귀농귀촌 관련해서 뉴스에도 허벌나게 떠들어대는데 중요한건 있는 자들의 리그에 그친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인구절벽이다, 지방소멸이다, 기술적 인프라 부족이다 뭐다저렇다쿵짝딱딱쿵하면서 결국 다시 사회적 문제인 인구가 부족한 이유로 귀결된다.


행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이를 활용하여 이번에 2023 청년마을 선정 결과를 내놓았고 선발된 예비 청년마을 대표들의 생각과 기대효과가 과연 1년 뒤에 어떻게 맞아떨어질지 나 또한 한편으로 궁금하고 불안했다.


인터뷰 질문과 사업계획서 공유회는 당연히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대부분 IT, 스마트팜, 4차 혁명, AI농업 연계 등 벌써부터 전문적인 스멜이 감도는 발표 면접을 진행했던 건 분명했다.


J에게 물었다.


"너가 해외 사업을 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 청년들이 개같이 힘들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거든. 굳이 국내 사업도 있는데 말이야. 그런데 공감은 된다. 허나 우리 국내에서 사업했으면 좋겠다. 나도 덜 마친 일을 마무리하고 안정적인 수입이 유지될 때 그때 다시 한 번 더 이야기해보자."


J는 표정에서 웃음기 머금은 척 평소대로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은 사실 처음이기에 나 또한 어떤 반응을 내놓아야 할지 얼떨결에 그렇게 얼버무렸다.


최근에 2월과 3월을 개 같은 전시회 시즌으로 마무리했고 4월이 다가오자 일의 강도와 양질이 더 높아졌다. 그리고 나를 더 닦달하고 그만큼 수요를 기대하는 업체들이 많아지자 나 또한 부담이 상승했다.


J : 넌 안정적인 4대 보험 직장은 아니지만 그만큼 힘든 만큼 인센티브 받는 특수성 회사 아니더냐.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


나 : 개소리야. 나 많이 힘들다. 광고대행사나 이벤트기획 이 업종 자체가 특수해서 그만큼 대우를 못 받고 퇴사하는 경우도 허다해. 돈 밀리는 건 일상다반사고 거래처로 먹고사는 우리들은 시즌과 사회적 이슈에 따라 트렌드에 맞게 또 바뀌어가야 해. 한마디로 움직이는 마케터 같아. 우리가 슈퍼컴퓨터도 아니고 신이라도 그 능력조차 부여받지 못해서 서글픈 인생사여" (꺼이꺼이)


2차로 만선호프로 갔다. 비가 그치자 날씨가 서늘해지고 을지로 일대 종각역 일대 직장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노가리와 맥주 500cc를 연거푸 게걸스럽게 먹어대며 깊은 대화 심연으로 더 빨려 들어갔다.


나 : 을지로 옛날 같지가 않네. 이제 그 허름한 간판과 인쇄업자 아저씨들이 보기 힘들어. 그렇게 터전이 사라지면 슬픈거야.


J : 아.. 그건그렇고 왜 OB베어가 없냐?


나 : 소식 못들었구나. 만선이 강제 병합했잖아.


J : 일제강점기처럼 말하네. 역시 권력이 대세인가.


나 : (째려봄)


어쩌다 미래 청년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의 꿈이 무엇인지 분석해 보기로 했는데 결국 J는 해외 사업으로 돈 많이 벌자요, 난 평범하게 40대에 제주도에 생활형 오피스텔 2대 받아서 안정수익 먹을 예정이었다. 다들 꿈은 야무졌다.


돈이란 돈은 세금으로 다 빨려 들어가면서 가끔 위험한 궁상도 떠들어댔다. 취기 덕분일지 말이다.


나 : 하아.. 차라리 우리나라가 공산주의였으면 좋겠다. 다들 평범하게 공평하게 기회적인 균등으로 차등있게! 시부레!


J : 야이 새끼야 말 조심해. 그딴 사상 가지고 무슨 돈을 벌겠다고. 공무원 같지도 않은 국가 공노비 앞에서 그딴 말이 나와? 아... 하긴 나도 야근 수당 안 나오지.. 진급을 하라고 다독이는데 그 순간부터 난 하급 공노비에서 상급 공노비로 확정이다.


나 : 야 청년채움제도 아직도 운영하냐? 그거 2년 말고 조건 더 완화시켜서 특수성 회사도 해달라고 여쭤봐줘. 안 그래도 불안한 고용 시장에서 4대 보험 책정도 없는 우리 같은 사람 불쌍하지도 않냐고.


J : 말단 공노비는 힘이 없다. 그리고 나 하청이다.


나 : 나도 하청이다. 우리 모두 다 함께 원청으로 올라가보자. 이제 혁명이다!


J : 윤석열이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해라.


돈이 많은 사람은 결국 투자에 대해 논리적인 판단을 내린다. 허나 없는 사람이기에 난 투기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더라. 집은 생활적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인데 어느새 경제적인 부동산 관점에서 자가 가계 확보가 많을수록 용이한 수단으로 바뀌었다. 수단과 목적의 전도 현상이 내 머리를 아프게 했다. 맥주 500cc로 더 속을 채우지만 남는 건 없을 뿐이다.


결국 우린 자본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J가 궁상떨었던 이유는 세계 인플레이션 속에서 수출 의존도가 나날이 증가하는 현 대한민국 주소를 관철했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둥켜 으쌰으쌰하자 정치적 대립이 난무하고 그 간극 사이 결핍의 무지에서 오는 암묵적인 카스트 제도가 곳곳에 보이는 것은 당연한 바이다.


교육을 운운하기도 했다. 난 대체로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현실적인 사람이라 초등 교육 과정에서 부동산 교육과 올바른 투자 방법, 주식 교육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커리큘럼이 올라갈수록 영업을 위한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 활용법과 치안 확보를 위한 심폐소생술 및 체력단련 테스트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다만 J는 그 과정에서 공교육과 사교육의 차이점이 강화되어 교육적 빈부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난 공교육이 우세해야 한다고 믿지만 이미 우리나라는 시장 자본주의가 90프로 먹고 들어가는 국가적 시스템이라 정부의 지원은 그저 돈만 퍼주고 수시적 모니터링으로의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싶다.


아무튼 그렇게 음란패설을 꼬이듯 사회 현실 이야기에 비유하자 너나 할 것 없이 신동엽의 이빨 까기 멘트가 이어지고 그렇게 내가 맥주먹방서 과감히 패배하자 J가 한사코 한숨을 내쉬었다.


J : 사람은 말이야. 깡이 있어야지. 니 1월에 무기력했다며. 짜식 내색 안 하더니 철들었나. 오히려 니가 음지(집구석)에 처박혀있더니 생각이 좀 바뀌어서 기분 좋네. 히키코모리는 되지 말자.


나 : 아직 미생이다 새끼야.



#갓혁의일기 #일기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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