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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Jan 08. 2023

청파동 어느 BAR에서




때는 오후 5시 30분. 청파동 언덕을 천천히 올라갔다.


K와 4시에 만나기로 했지만 어젯밤 나만의 개인적인 취미생활로 다음날 사적 약속에 차질이 생겼다는 점에 꽤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을까, 친구 또한 전날 여자친구와의 여수 여행을 다녀오고 장기간 운전으로 몸이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고 순간 나의 연락으로 활기찬 늦은 하루를 맞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행 아닌 다행이라고 생각이지만, 이러한 유치한 관계 또한 오래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쁘나 여유로우나 항상 긍정적인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코스는 정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 K가 집에 남동생이 있는 관계로 자기 집에서 잠을 청할 수 없다는 것은 하나의 변수였고 급작스럽게 인근 미니스톱 근처에 있는 2층 집 초밥집에서 알밥과 오징어튀김으로 배를 채우고 천천히 숙명여대로 이동하였다.


세월의 무상함이었을까. 코로나가 장기화되니 대학가라는 이미지가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오히려 이질감 가득한 숙명여대로 올라가는 이 골목이 나에게 선뜻 공감되지도 않았기에 천천히 친구와 삶의 흔적에 대해 물어보며 자조 섞인 목소리로 이 대학가를 걸었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인근 15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2개 주문하였다. 그리고 무작정 네이버 지도를 확인했다.


서울 용산을 중심으로 우리는 어디로 떠날 것인가.

그렇게 무규칙 당일치기 힐링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쩐지 그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널 보면 내가 쉽게 생각하는 걸 넌 어렵게 생각하고, 그 반대로 내가 어렵게 생각하는 걸 넌 쉽게 생각하더라."


"그건 맞아. 성향의 차이라도 서로 아는 그동안의 짬과 정이 얼마나 장기적인데 그걸 무시할 수 있겠냐."


소소한 말에서 우러나오는 30대 초 사회생들의 어색한 칭찬은 마음을 여유롭게 보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하더라.


이유 없는 오후 8시 가평으로 떠나는 한 늦은 남정네 2명이서 시시콜콜한 인생 이야기와, 친구의 사업이야기, 그리고 연애관과 정치 이슈 관련 썰까지.


차 안에서 그동안 이야기하지 못했던 부분을 새해가 되어서야 하는구나.


"술만 마신다고 그 자리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닌데, 내가 힘들다는 부분을 어필하는 것 자체가 솔직히 스트레스야."


"그건 방법의 차이일 뿐이야, 우리는 사실 내로남불이라는 틀에 갇혀 속에 살고 있지 않을까."


다양함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대선 방향과 부동산 이야기, 그리고 소소한 길을 찾아 헤매고 떠나는 중이었다. 사실 모르겠다. 해답이란 게 있을까? 있다면 누군가가 제시해 주겠지만 K의 이 말 하나만큼은 꼭 기억해야 했다.



"그동안 했던 사업에 대해서 후회가 생기고,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트러블이 있고, 대통령 후보 관련된 정치판에 구설을 담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 우리가 존재하는 큰 의미다. 죽지 못해 산다면 왜 저런 걱정까지 하겠냐."


-


이런 소소한 이야기 또한 술만 마셔야 나온다는 감정적인 편견이 아니었고, 오히려 맨 정신에서 나올 때가 다행이었다.


굳이 우리는 서로 술을 마시며 하소연한다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모순을 지적했으며 그것 또한 편견이었다. 더 이상 나에게 흑백논리를 지니게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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