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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Feb 04. 2024

돈을 벌고 싶은 백수들에게

사람이 시작이다?

주변에 4대 보험 사무직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의 이야기소재는 언제나 주식 아니면 코인, 최근 도약계좌와 같은 청년 우선 정책이다.


허나 프리랜서와 같은 일종의 안정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고심하는 문제, 바로 대출이다.


최근 트럼프 재선 문제로 한국의 금리 인상 관련 이슈도 한층 부각되었다. 아직까지는 시기상조라 읽지만 장담컨대 트럼프가 될 확률이 높은 건 기정사실화다.


즉, 4대 보험 직종자든 3.3 프리랜서든, 사업주와 같은 근로를 기본으로 하는 자들에게는 '돈'과 관련된 문제가 제일 피부에 와닿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돈을 위주로 생각했던 우리들이었을까.

이미 자본주의 물결에 따라 제1 세계에 돌입한 대한민국은 그 부류에 우뚝 서고 있다. 이젠 현실을 자각할 때이다.


그 반대로 몽상가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들, 이를테면 생산조차 하지 못하고 그런 의지와 용기도 없는 백수들만 속이 탄다.


그들은 그저 돈을 벌고 싶은 의지가 부족함을 떠나서 사람에게 패했던 자기 긍정이 무너진 상태가 기저에 깔려있다.


실로 안타깝지만 달리 말하자면 1 세계에 도태된 자들이다. 이렇게 팩트로만 조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 사람 간의 관계성에서 가해자로 되거나, 피해자의 형태를 이루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질적, 정신적 가해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하여 경제적 활동마저 곤란하게 하는 사람들을 일컫고, 그 반대로 내가 말하는 피해자는 저 가해자들로 인해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조직의 결속력에서 탈피하는 자들을 말한다.


돈이라는 건 무시무시하고 어마어마하다.

가족마저 포기하고 사람 간의 관계를 돈으로 가치화하는 현시대에서 점차 문화와 예술마저 그렇게 물들어간다.


그나마 사람의 공통적 공감과 감각적 동질성은 예술의 기반이었지만 목적전도현상을 일삼아 돈이 예술을 사는 희한한 발상이 나오며 점차 그 가치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예술도 결국 돈으로 치부되며, 실제로 감각주의를 모색하고 인류 공동애를 위해 실천하는 기관과 그런 조직력 자체도 와해되는 추세이다.


다시 정리하면 돈이라는 건 예술을 망각화하여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것 외로 정신적 세뇌를 시키는 중이다. 그리고 그나마 문화와 예술의 범위에서 서로 위로를 받고자 하는 백수들, 일명 경제적 빈곤자들이 갈 곳이 없어지는 실상을 보여준다.


백수들에게는 문화와 예술 그 자체가 자신들의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었고, 온라인 속에서도 담론과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가 삶의 의미를 부여하게 해 주었던 찰나였지만 점차 그 정체성도 왜곡되고 희미해져 간다.


백수들을 위한 정책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허나 현실위주의 돈돈거리는 경제적 극대화, 효율적 톱니바퀴로 갈아 끼우기 위한 수단 정책에 불과하다.


정작 그들이 백수가 된 것은 일방적인 경쟁과 돈이라는 경제적 피해가 아니라, 사람을 돈으로 사는 현실과 그 틀에서만 파생되는 일명 <변질된 청년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다.


정책만큼은 나도 모르겠지만 모든 청년 정책이 그러하듯 돈에만 관념을 무릅쓰고 그 틀에서만 파악하고 기획하고 뿌리려는 정부의 음모가 있다.


세수 확보를 위함이겠지만 언제나 현실은 야생이기에 그나마 일하는 근로자들과 사업주들은 열심히 현실과 타협하겠지만..


정작 실 수혜자가 없는 정책의 최대 피해자는 백수들이다.


백수들아 너희들 잘못은 없다.

그저 돈돈 거리는 사회에서 인간관계마저도 돈으로 사고파는 매매 현실 속에서 도태된 너희들아.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으려고 자신의 소신을 힘껏 발휘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부정하게 하는 정책에 대해 힘껏 소리쳐줘라.


백수들아 청년이라는 이유로 힘들다는 건 당연하다. 어쩌면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라 정말 사람이 곧 돈이다로 따지는 시대가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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