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일기, 회자정리 거자필반>

갓혁의 에쎄이 끝

by 갓혁

시간은 어느 정도 흘렀던 시점이다.


1년간 동고동락했던 K의 흔적을 찾아 다시 한 번 더 연희동에 도착했다. N형님의 소식은 깜깜무소식이다. H는 자신의 커리어 개발을 위해 잠시 해외여행을 떠난 상황이었다. 그렇다. 연희동에서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한 명뿐이었다.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소중했던 추억의 방울들이 나의 가슴속에 응어리처럼 매달려있다. 여전한 심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다소 부끄러운 필력이지만,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이었기에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겠는가.


여전히 K가 있었던 카페를 오늘도 거닐면서 그 친구의 흔적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인근에 자리 잡은 ‘연희 사러가’ 쇼핑센터를 잠깐 구경하였다. 3년 전에 봤던 그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고로 이 센터는 연희동 사람들의 아지트였다. 즉, 서로 알고 지내기 위한 만남의 장소라고 불린다. 처음에 연희동에 온 계기와 K의 첫 만남 또한 이 장소에서 시작됐다. 연희예술극장에서 안면식이 있었던 2019년, 그 이후로 K와 친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연희예술극장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 계기도 K덕분이었다.


난 그래서 그 친구에게 굉장히 감사할 따름이었다. 모든 감정의 절제된 품격을 하나하나 고스란히 기재하기 위한 방법이었을까. 그 친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갔고 특히 ‘예술’에 대해 눈을 뜬 계기 또한 없지않아 있었지. 비록 오래 있을수록 더욱 짙어지는 갈등의 관계에서도 서로 알아가며 치근덕 거리는 그러한 마음을 서로 붙잡아 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친구였다.


연희예술극장 사람들과 친해지며 다음 소개로 이어진 장소가 바로 연희창작촌이었다.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장소, 다만 그 근처는 연희동의 부촌이었다. 다소 예술가들이 살기에는 임대가 비싼 곳이라 꺼려지는 그러한 곳에 난생처음으로 안면식이 잠깐 있었던 사람들과 이동하였다. 색다로웠다. 미묘한 감성이 솟구치면서 이 장소 또한 나의 창의적인 생각의 결실물을 만들어주도록 도와주었다.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남자의 주도면밀한 낌새를 포착했을 때, 우리는 정적이 흘렀다. 다만 검은색 정장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서는 다소 반전 효과를 만끽할 수 있었다. 신은 공평한 것일까. 잘생긴 사람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변성기가 덜 지난 순수한 목소리라니. 아무튼 존 윅을 닮은 이 N형님 또한 연희동 예술 예술가들의 일원이 되었고, 덕분에 연희동에 잠깐 들릴 때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특히 학교나 복지센터에서 강의하기 어려운 예술 강의를 이 형님이 진행하고 있었다. 아마 본인의 적성을 제대로 찾은 듯했다. N형님은 수수료 짭짤한 경제 관련 이야기보다는 자신으로 하여금 예술에 문외한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받고 예술의 창작 가치를 전수해줄 수 있다고 굳게 믿으셨다. 그 결과는 당연히 연희동뿐만 아니라 서대문 내에 있는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참된 의미를 널리 이롭게 알려주셨다. 언제나 형이 이야기했던 이 말 한마디는 잊지 말아야겠다.


“예술은 사랑이고, 믿음이며, 자신이다. 진혁아.”


아직도 각인되어서 나의 문장 수집 다이어리에도 꾸준히 1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서로 알아가면서 또 한 명의 여성을 만나게 되었지. H는 정말 나에게 겸손과 진중함을 알려준 매너 있는 여성이었다. 때로는 산만한 ENFP를 지닌 나를 행동 절제하도록 만들어준 좋은 사람이었다. 비록 K와 N형님보다는 사이가 어색하지만 N형님이 떠나고 난 후, K와 함께 사진을 찍고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면서, H와 돈독한 시간을 많이 가졌고 인간관계에 대한 많은 관점을 다방면으로 깨우치게 되었다.


그래서 H는 지금 뭘 하고 있냐고? 자신의 커리어 개발은 사실 명분이었으며 핑계였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스스로 입에서 꺼낸 그 말 한마디는 사실 도피였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위해 이 연희동에 정착하면서 많은 과정을 스스로 알아갔기에 더 대단했다. 과유불급이라는 자세로 언제나 겸손의 마음으로 본인은 차근차근 열심히 앞날을 준비해 갔다. 그녀가 준비해왔던 결실물은 결코 작지가 않았다. 본인이 끝까지 해내기 위해 편의점 업무와 각종 카페 알바까지 진행했지만 솔직히 N형님과 K보다 더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HSK와 예술복지센터로부터 입사 추천을 받게 되었다. 참 멋진 그녀.


그녀는 거의 모든 날을 우리와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자기 계발을 위해 힘썼음이 분명했다. 그녀로부터 많이 배웠다는 점이 바로 여기이다. ‘겸손’과 ‘자세’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이라고 할까. 입만 열면 허세 부리는 누구와는 달랐다. (K야 미안해. 하지만 애증 표현이잖아.) 그래도 보고 싶은 이 친구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서로 다양하고 제각각이지만 개인적인 그들의 미묘한 표정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무시 못하겠더라. 어느 알에서 부화한 개구리가 자신의 고향이 논밭인지, 우물 안인지 서로 인지하지 못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 개구리들은 이제 제각각 자신의 미래를 위해 달려 나갔다. 서로의 연락은 주고받을 수 없었기에 더욱 슬픈 우리의 세상.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야, 진혁아 오늘도 일기 쓰냐? 그런데 누구 이야기냐?”


“너 이야기다. :D”


“그건 뭔 소리야. 야 계속 우리 이야기 이상한 에세이 형식으로 올리지 마라고 창피하다.”


“지나면 다 추억이지 않겠냐.”


“N형님 얘좀 말려봐요. 미친놈 같아.”


“풋- 역시 너답다.”


“다들 좋은 추억 만들어준 대가야. 기록하면 복이 된다.”


“장난하냐.”



연희일기.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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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일기 끝>

2019년 어느 9월의 나의 연희동 일상. 비록 2년이 지난 지금은 의미 없을 진부한 이야기지만 누군가가 기록한다는 것은 꽤 재미를 선사해준다는 점.


로맨스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니야. 이건 그저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감미롭고 아름다운 삶의 기록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기록하자고.


이런 모든 하나하나가 서로 의미 있게 만들잖아.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자. 싸우지 말자. 다음에는 어떤 일기를 작성해볼까. (K는 아직도 나한테 어이가 없다면서 웃고 있다. 쓰는 내가 짜증 날 정도로 말이다. 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