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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Mar 05. 2022

30대가 되어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갓혁의 일기

새해가 되었지만 그렇게 특출나고 재미있는 일상의 연속은 아니었다.

오히려 감개무량할 정도로 올라가는 확진자 수, 그와 반대로 하염없이 하락하는 나의 주식 덩어리들.


최근에 각종 이슈가 불똥같이 터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베이징 동계 올림픽 편파판정, 오미크론 확산에 따른 정부의 방침 변경안, 대선 내부 갈등론, 안철수와 윤석열의 정당 단일화, 심지어 오늘 마지막 화제였던 삼척 산불까지. 모든 것은 마치 계획된 것처럼, 2022년은 마치 증발할 것처럼 점점 악화의 연속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러니까 일반 국민들이 이 사태를 수습하고 최대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이해'와 '수긍'일뿐이었다. 나 또한 그 소시민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렇게 암울한 현실이 지속된다는 상황은 마치 스스로 자존감을 내려낮추고 그저 '아 어떻게든 되겠지. 인생무상이다.'라고 다소 회의적인 신념에 불과할 뿐이다. 


3월은 봄꽃이 슬슬 피기 시작하는 화목의 계절이다. 가정의 달은 2개월 뒤요, 식목일과 석가탄신일 또한 곧 코앞이다. 연휴일과 공휴일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의 행복감은 나날이 상승해야 한다는 점은 나 또한 당연히 알고 있다. 비록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이 글을 적으면서도 최대한 나만의 생각을 쥐어짜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하나 달라져야 하는 점은 이제 3월이다. 


그리고 30대가 되어서 많이 깨달았고, 앞으로의 선택의 갈림길 또한 나한테 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글을 작성하고 기재한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프로불편러가 없길 바랍니다. 아니- 애초에 공감대가 없어서 이 글을 비난하거나, 생각이 다르다고 자신의 주장을 기재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 글은 저만의 일기장입니다.


copyright pixaboy





1. 한 푼이라도 더 벌자.


솔직한 내 심정이다.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진리가 아닐까. 이러한 절대적인 가치관은 언제나 나의 머릿속을 후벼판다. 본업에 충실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부와 수익 창출을 위한 다양한 소통의 장을 지속한다. 그 방법의 일례 중에 하나가 '영업'이다. 


대면 상담과 영업의 한계를 느낀 요즈음 코로나 시국, 내가 정말 힘들어하는 부분 요소가 바로 이 점이다. 솔직히 모든 현장직, 영업직들은 뼈저리게 느끼실 것이다. 그리고 가장 힘든 점을 5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B2B 상담을 위해서 그 회사가 원하는 원칙과 획일적인 기획서를 작성하는 과정. 


-고객의 니즈가 점점 다양해짐에 있어서 인맥과 동정을 우선시하는 감성 만연주의


-파이가 많은 수요 지역에 뛰어드는 레드오션


-특수 이익 성향을 가진 커뮤니티에서 구전되고 전해지는 '카더라' 소통


-B2C 상담 시 시간 대비 노력, 그리고 컴플레인 대처 방법


지금까지 내가 고스란히 느꼈던 힘든 부분이었다. 어느 정도 상황을 인지하고 최대한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정말 열심히 나아가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운 부분이 아니었던 '영업의 꽃', 바로 상담이었다. 더군다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의 관리 유지가 안되는 사실을 느끼고는 고치려고 노력했다. 즉각적인 피드백 사유를 받아들이고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더라도 상대방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여느 누구나 이 말 한마디로 정의했다.


"힘든 이유는 사람 관계였다."


알면서도 이 말 한마디에 매우 납득이 갔다. 납득으로 끝나기 싫었고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원하는 목표치를 찍을 때까지 버티다 보니 그래도 수익은 나왔다. 결과가 좋으니 당연히 보상심리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2. 좋은 인간관계란 무엇일까.


가장 고심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해답은 있지만 사람마다 차이가 있었다. 조언과 격언은 하나의 일용 의약품일 뿐이었다.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매우 힘든 시대를 버티고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감성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나'의 존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내가 회사 생활도 해보고 프리랜서, 영업도 해보니 좋은 관계란 없다.


진짜 없다. 있으면 그 사람은 현자이다. 이미 모든 만물과 속세의 틀을 끊어버리고 자아를 100프로 충실하시는 분이다. 심지어 욕물, 성욕, 모든 나태의 근원인 게으름 또한 없다. 그러니까 모든 감성과 이성의 경계선에 선 사람이 아닌 말 그대로 '현자'이다. 


한 예시로, 내가 현자라면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주겠지. 하지만 상대방은 욕심이란 걸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욕심이 있기에 인간관계가 흐트러지는 것은 당연하다. 욕망과 욕심은 현저히 다르다. 욕망은 더 나쁜 것이다. 욕망의 끝은 언제나 상대방을 갉아먹는 가해자의 본보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아껴야 하고 평소에 행동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난 요즈음 가장 중요한 덕목을 배우고 있다. 바로 '겸손'이다. ENFP가 산만한 이유로 가끔 ADHD 아니냐고 오해받았고, 그 오해가 나중에는 겸손하지 못하다는 낙인 취급을 받은 적이 있다. 억울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겸손'을 배우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참 힘든 덕목이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고 싶을 때가 있다. 억울하거나 하소연할 처지에 놓일 때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적극 들어준다는 것? 그 자체는 그 사람이 현자일 때이다. 아니면 자신의 본 수익이나 치명적인 피해를 받을까 봐 대처해 주는 하나의 부분일 뿐이다. 


이 말을 꺼낸 내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요 근래 힘들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갈구거나 하소연하여 더욱 자존감을 낮추는 게 종종 보여 참으로 마음이 아파서이다. 우리는 똑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며, 벤츠와 루이비똥 하나 가졌다고 그 욕물이 나의 인생 전체를 대변해 주지도 않는다. 


진정 내면에 쌓인 덕목이 차근차근 자리 잡을 때 비로소 '현자'가 되어간다. 그래서 오늘도 좋은 덕목을 배우고 실천한다. '겸손'을 통해서 말이다.




3. 전쟁은 왜 일어날까.


요근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한 사건은 당연지사 알 것이다. 각종 뉴스와 보도를 통해 실시간으로 매 이슈화했던 그 사건. 언론에서는 너무 정확히 이야기한다. '푸틴의 욕심'. 그리고 반대 여론에서는 이런 말을 쏟는다. '약육강식에 패배한 우크라이나.' 두 문구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말에 뉘앙스부터 시작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팩트는 하나이다. 결국 인간의 욕망에서 일어난다. 푸틴의 침공 또한 NATO와 UN, 그리고 미국의 간섭으로 인해 먼저 침공했다는 국익을 위한 욕심, 그리고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호소하는 여러 국민들을 위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처절한 국가 보안을 위한 욕심, 사실 우리는 뉴스를 보고 잠깐의 이성을 잃고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무참히 죽어가는 현장을 목격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부모님 또한 눈물을 흘리셨다. 나도 그랬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런데 어쩌면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세계사의 만악의 근원 70프로가 대부분 영국이라고 하지 않던가. 찍을 때 영국을 찍으면 대부분 맞았던 세계사 시험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그러한 사정을 영국인들에게 알리면 참으로 어이없을 듯하다. 


역사를 배울 때 원인과 결과를 배우지 말라고 했다. '왜?'라고 배워야 한다. 예를 들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왜 식민지화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 단순히 학교 교과 과정에 입 맞추는 대로 일제강점기의 나쁜 점만 배웠던 우리는 오롯이 일본의 그러한 만행(이라고 부르기 전에 행적이 맞다)을 차근차근 되살펴 봐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 언급은 참으로 씁쓸하지만 본래 일본의 욕심에 있어서이다. '학도근로병' 또한 일본에 충성하도록 하는 소년들에 대한 세뇌 군사 교육 방법이었다. 일본은 그저 대한제국이라고 부르기 전에 자신들의 국익을 위한 식민지에 편입하기 위한 방안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그것이 일본의 욕심이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또한 욕심이 많았다. 베트남 전쟁을 가서 무고한 사람들 학살과 '라이따이한'으로 불리는 '적대적 국가의 아들'의 산물, 즉 베트남 입장에서는 적대국이 우리나라였다. 그래서 아직도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한 것이다. 


역사를 볼 때 원인과 결과를 따지기 전에, '왜'라고 먼저 질문해 보면 꽤 수월해진다. 


그리고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우리가 위로와 위안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적극 수용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결국에는 푸틴의 욕심이 맞았다. 그래서 맹비난을 받을 자격을 본인이 스스로 만든 셈이다.



4. '술'의 향연보다 '술자리'가 좋아서.


20대 대학생활에는 일주일에 4번꼴로 술만 마셨다. 아니 정확히는 1교시부터 4교시가 끝나면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뒷동산에서 막걸리 파티를 하고, 5교시~7교시가 끝나면 그 이후 인근 대학가에서 또 부어라 마셔라 했다. 그때에는 그것이 일상이었고 일종의 대학 랜드마크라고 자부했다. 


어릴 적부터 교육열이 강한 세상에 자랐던 M세대(밀레니얼세대)라서 당연히 이런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자유는 대학 때 누려라. 그때 술 퍼마시고 너 알아서 해라.'


그래서 지금 얻은 결과가 무엇일까. 그렇게 말했던 당시 담임 선생님들과 학원 선생님들께 너무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원망도 많이 했다. 교육의 끝은 '인재 양성'이 아니었는가. 어이없는 교육체계에 대한 모순점을 한탄스럽게 풀었지만 바뀔 건 없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대학까지 왔다. 나의 빈 공간을 어르만저줄 '술'이라는 걸 처음 마셔본 어느 3월의 OT. 어금니 꽉 물면서 20대 초 낭만의 술 파티에 동참하게 되었던 나. 그러나 그것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술과 관련된 사건, 사고가 만연했고 더군다나 똥 군기 잡는 대학 선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항공과나 건축학과 등 나름 텃새가 심한 전공과도 아니었다. 행정학과와 함께 복수 전공인 관광경영학과를 다니면서도 그러한 행태를 관조하고 이해하려고 바빴다.


언제나 술이 가득한 OT, MT 그리고 축제 뒷풀이, 학술제 뒷풀이, 응원전 뒷풀이, 졸업식 뒷풀이, 종업식 뒷풀이, 친구 생일 뒷풀이, OO선배 뒷풀이, OO학회장 뒷풀이.


뭐 만 하면 뒤에 항상 뒷풀이만 수식어구처럼 붙어 다녔다. 이제서야 느끼는 거지만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맥락이었다. 뒷풀이의 목적은 술자리였다. 그러니까 술을 잘 마시냐가 아니라 술이 가지고 있는 그 '장소'에 더 중점을 둔 것이었다. 처음으로 개념이 박힌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2학년 이후로는 술을 좋아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 만나려고 가는 '술자리'를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변화와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혹시라도 하나 말씀드리지만- 아니 당부드리지만 술자리 강요하거나, 술로 허세 부리는 사람들 있는 자리는 웬만해서는 피하자.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5. 절대 못 바꾼다. 사람은 못 고친다.


이건 명백하다. 영업하면서 사람 설득도 많이 해보고 최대한 장기적인 관점으로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지만 상대방이 마음이 바뀌면 떠나는 게 영업이었다. 그렇게 알게 되었던 점은 신입인 내가 어디가 잘못되었을지 스스로 피드백을 받아보고 '나'를 고치려고 했지, '타인'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서비스업과 동행했던 영업직이라 오롯이 피해는 내가 봐야 했던 상황이지만 어느 영업 회사나 다를 바 없이 회사의 수익에 변동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처참하게 그렇게 스스로 묵인해 가야 했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영업으로 내가 돈을 벌려고 들어온 회사였는데 오히려 회사한테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상대방에게 알량 방귀를 뀌어대며 나를 낮추고 돈을 못 받아 간다니. 


그런 경우가 드문드문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 대나무숲처럼 사회에는 하소연을 할 수가 없다. 사회생활에 찌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회사와 나를 위한, 정확히 이야기하면 회사의 노예가 되어 나를 낮춰서 고객과 회원을 설득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게 먹힌 경우도 많았지만 나의 마음 한편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더군다나 진실적으로 돈이 아닌 순수하게 영업하는 사람들이 그런 상황까지 맞물리면 아무래도 그 사람은 바로 퇴사할 것이다. 그게 나였다. 돈에 관심이 그렇게 없었던 지난날을 되살리며 수익도 온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회사가 오케이라는 싸인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저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고객은 그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니다. 나의 구질구질한 영업 방식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여 돈을 구걸하기 시작할 때 고객도 이미 알게 된다.


여기서 갈림길이 난다. 고객과의 관계유지를 위해 영업을 해주는 것이냐, 아니면 온전히 순수하게 회사 수익을 위한 영업에 파묻힐 것이냐.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영업을 뛰고 일을 하지 않는가. 참으로 웃기고 슬프다. 그러니까 웃프다.


나 또한 톱니바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절대 타인을 바꿀 수도 없고, 심지어 나 또한 못 바꾼다. 그렇게 안정된 늪으로 빠져들어가려고 하겠지. 심지어 고객이 알더라도 온전히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게 사람 관계다. 어쩌면 우리는 역시나 자신의 위치를 방어하기 위해 서로 거리 두기를 하는 모양이다. 겉으로는 있는 척, 아닌척하지만 사실은 방어기제였을 뿐이다. 


절대적인 페르소나(이중성)은 없다. 다만 때에 맞춰서 바꿔 입을 페르소나는 언제나 환영이다. 오늘 슬펐던 내가 당장 돈을 위해 행복한 가면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6. 안정적이고 편하면 위험하다.


혹시라도 코로나라는 핑계로 재택근무하거나 비대면 수업하는 이웃분들과 익명성의 사람들께 알리고자 한다. 이 문장 자체는 진짜 위험하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았다는 것이 없더라도 비록 힘든 정신과 몸이 있을지언정 '오늘 뭐 했지?'라고 시작으로 끝나면 무의미한 인생이다. 현생은 한 번이다. 마치 신과 함께 차사랑 동행하는 김자홍(차태현)처럼 행동하려는 분들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자. 그건 지옥에서나 편해지자. 김자홍 또한 현생(이승)에서 엄청난 고군분투를 겪었다. 소방관 공무원으로 출동 현장 업무를 맡아가며, 밤에는 항상 고깃집 알바를 해왔다. 그런 사람을 비난하다고 우리가 절대 바뀌는 것은 없다. 아- 이 글은 5번째 맥락으로 올려야 하지만 6번이랑도 관련이 있으니 계속 쓰겠다.


결국에는 인생은 한 번인데, 영영 죽어서 편하게 살 것인지. 아니면 지금 힘들더라도 비록 우리를 지치게 하고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만들지언정 '그래도 해냈다, 수고했다'라고 스스로에게 격려를 할 수 있다면 넌 성공한 거다. 나도 그렇게 바라길 갈망하고 기대했다. 그래서 챌린저스 앱 돌리면서 요근래 하루에 만보 걷고 뛰고 스페인어 공부하는 중이다. 


사람을 산만하게 해주는 자잘한 것들이 비록 의미가 없을 지어도, 절대 나중에 이 말이 습관 되도록 하지는 말자.


'나 오늘 뭐 했지?'


진짜 위험하다. 이거 병이다.



7. 마지막으로 내가 나를 안다.


모든 부분에 중심이었다. 비록 회사에서 내가 승진했더라도, 내가 좋은 결과물을 가져와도 24시간 내의 박수갈채와 카카오톡 선물뿐이다. 그냥 그걸로 끝난다. 


작년 나의 생일이 떠올랐다. 생일이었는데 선물을 받은 기분도 좋았지만 사실 좋았던 점은 형식적이든 아니든 직접 축하해 주는 '타인'들이었다. 그냥 어색하다고 자신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선물만 찍 하고 형식적인 '선물 축하해.'라고 보내는 지인들을 보면서 많은 인간관계를 느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어색한 분위기 속에 다시 보내야 하는 압박감은 덤이었다. 언젠가 그들이 결혼할 때 나 또한 참석해서 무의미한 5만 원을 내려놓고 간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그래서 애초에 서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려면 '나'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며, 특히 '나'를 잘 알도록 '자기계발'을 자주 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자주 계발을 하려고 노력하는지 스스로가 정답을 알지어다.


남들이 비난하고 비판하더라고,

남들이 칭찬하고 이해하더라도,


결국 수용하는 자체는 본인 '나'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몸을 깨끗이 해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가는 환경 또한 '나'로 하여금 좋아지거나 나빠진다. 그러니까 '자신'의 관점이 제일 중요하다. 회사에서 기분 우울하다고 망치지 말고 그전에 자신이 왜 우울했는지 되살피는 계기가 필요하다. 나도 그랬으면 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온전히 연예인 뉴스를 보거나,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연예인 걱정, 자랑, 감탄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우리 또한 혼자 살 수 있다. 그 혼자 사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혼자 살지 않을까.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그리고 행복하길 바라며.


오늘의 장문 일기 끝.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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