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한파라니 이거이거 봄이 오기도 전에 마지막 발악인가보다. 오늘의 여행 컨셉은 골목길 투어. 딱히 의미는 없고 원래부터 레트로와 숨겨진 아담한 골목길을 좋아하기 때문에 딱 적당한 곳이 이 종로 쪽이라 생각이 들어서 일 끝나고 바로 이동했다. 이제부터는 대중적인 장소가 아니라 정말 숨겨진 골목길과 맛집. 그리고 남들이 가지 않은 그런 곳을 도전하려고 한다. 어차피 관광지 및 맛집들, 카페들은 정보의 바다에 무한하고 이렇게 소담하고 보잘것없는 내 브런치에 오시는 분들에게 감사의 한마디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원하는 골목길 투어 시작하겠음 :>
일 끝난 시간은 16시 30분 즈음.
김포에서 일 끝나고 바로 삼청동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멀다. 아니 멀다기보다는 나는 하루에 평소 뚜벅이로 만 보이상을 걷는 사람이라(업무적 특징도 있음) 이 정도는 껌이라고 생각했는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바람에 컨디션 저조로 피로감이 많이 든 하루더라. 문득 든 생각은 이거였다. 일이 끝났다. 그런데 몸이 아프다. 이거 부작용이 뒤늦게 오나? 아니 일주일 뒤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 그러면 그냥 추워서 그런건가? 감기 기운이 있나? 별의별 잡생각이 들더라. 그러더니 10분간 G6002 버스를 타면서 고민을 하더니 '이건 아니다. 어차피 집은 김포공항 근처. 그냥 왔다 갔다 하면 더 시간 낭비일 뿐이니 바로 601번 갈아타고 이동하자. 그냥 차 안에서 1시간 30분 정도 숙면을 취하면 되겠지.'라는 자기 합리화 끝에 다시 제정신으로 결국 도착했다. 결국 혼자 잡생각한거였다.
1. 삼청동(북촌)
안국역 근처에서 내렸다. 정확히는 인사동 쌈지길로 가는 방향에서 내림. 그리고 후다닥 공중화장실로 달려갔다. 분명 아까 점심에는 덜 추웠는데.. 흰 셔츠 상의만 착의한 나는 미친 듯이 가방을 열었다. 다행히 검은색 후드티 발견하고 얼른 그 위에 살포시 입고 시원하게 볼 일 보고 삼청동 방향으로 터벅터벅 나왔다. 내가 삼청동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 바로 서울에서 유일하게 빈티지함과 레트로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감성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강남이랑 홍대, 신촌, 이태원이 재미있다 하더라도 20대를 넘기고 30대가 다가오면 예전의 감수성을 간직한 소소한 곳으로 떠나고 싶더라.
그것이 을지로가 핫해진 이유였다. 예전에 한참 사람들이 을지로3가역의 만선 호프 노상에 매력을 느낀 이유가 있지 않은가. 여의도 한강공원 또한 한 여름의 꿈이라고 일컬어지며 다들 돗자리와 소소한 캠핑장구류, 치맥과 넷플렉스로 소소한 주말을 만끽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회색빛이 물든 이 사회에서 유흥과 나락의 2000대 초반 유명한 장소가 아닌 다들 남들이 알지 못하고, 오히려 추억과 옛 감성이 담긴, 사람들이 없는 곳이며 더더욱 멀리 떠나고 싶은 욕구가 작용되었다고 본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여행의 개념이 바뀐다. 나 또한 그러고 있는 중이다. 오히려 20대에는 술과 사람들이 있는 유흥의 매력이 여행이었다면, 30대로 접어가는 지금은 소소한 감성과 자연스러운 힐링 방향에 초점을 맞추어 여행을 하는 중일 것이다.
오후 18:10 일몰
빨간색 체크 방향에서 결정해 본다. 관광지를 볼래, 골목투어를 해볼래? 당연히 골목이지!
저 위치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무척이나 황홀했다. 저번에 아차산 정상에서 바라본 하늘과 또 다른 의미.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스스로 고민해 보았던 그때와는 달리, 이 삼청동에서 바라본 하늘과 저 너머 경복궁 담벼락을 바라보며 앞으로 우리 청년들이 무엇을 일구어야 하고 이 불분명한 미래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는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더욱 북쪽으로 이동했다. 삼청동의 참맛은 바로 게스트하우스 쪽으로 이동함에 있어서 의미가 있더라.
회색빛으로 물든 서울은 삼청동을 충분히 담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이 든다. 빨간 벽에는 시멘트로 칠해진 전통 건축 방법이 고스란히 보인다. 나어렸을 적, 집과 집 사이 담을 보면서 가끔씩 옆집 친구가 궁금해 "XX야 뭐 하니~ 놀자~" 이랬던 순수한 기억이 나는 그런 서울이었는데, 이제는 더욱 삭막해지고 더욱 방음이 철저해진 인공적인 건축물로 완공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성장했구나. (반어법) 나도 저렇게 언젠가는 순수함을 잃고 내 개성을 잃어가며 사회라는 틀에 녹아내리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성장하면서 이런 고통에 세뇌되어 더 이상의 감동을 맛보지 못할 어른이 되어 갈 것이다.
노을을 등지면서 나도 언젠가 그렇게 바뀔 거라는 착각에 오늘도 걸으면서 '나'에 대해 생각을 깊게 해본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운명론자들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변수가 생긴다는 것도 결국 자기 운명이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점을 보고 운을 치지 않을까. 사주가 왜 있을까. 물론 나는 무종교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관념에 대해서는 그렇게 질색이며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믿게 된다면 이것 또한 '너의 이름은'
3000원 튀김과 어묵 국물
뭐길래 사람들이 떡볶이를 야무지게 맛있게 먹지? 마치 어릴 적 동네 할머니가 해준 동네 분식점 같다. 아 진짜 동네 분식점이다. 삼청동 어르신들께서 열심히 떡볶이를 만드신다. 떡꼬치가 맛있다고 한다. 그런데 난 패스했다. 튀김주세요. 현금으로 내야 하죠? 3000원부터는 카드 받는단다. 오 감사합니다. 신기하다. 그냥 평범한 떡볶이집인데 왜 다들 여기서 이렇게 맛나게 드시고 계시지?
사람들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난 입석해서 먹었다. 아주머니들이 춥다고 들어와서 먹으라고 설득하셨다. 난 그래도 단호하게 여기가 편하다고 했다. 이유는 추운 바람을 맞으면서 먹는 튀김은 제맛이기 때문이었다. 한 겨울 평창 군부대에서 근무를 마치고 선임이랑 새벽 2~3시에 먹는 라면은 꿀맛이었다. 고생하면서 먹는 맛이 더 일품이면서 2배로 더 맛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살며시 웃으면서 한마디를 던졌다.
"맛.. 맛있네요 흐허렁"
이제는 운영을 하지 않는 옛날 목욕탕
노란색이 목욕탕 위치
예전 삼청동의 랜드마크이자 현지 주민들에게도 듬뿍 사랑을 받았던 곳이라고 한다. 어렸을 적에 가끔 주위를 보면 저러한 목욕탕 하나씩은 있었다. 주인장은 나이가 진득한 할아버님이셨고 아버지랑 항상 목욕탕에 가면 이태리타월로 내 등을 스매싱하셨다. 그 끔찍한 트라우마로 인해서 절대 목욕탕이나 사우나에 안 가겠다고 다짐했었으나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친구들과 가게 되는 특이한 그런 곳이 이런 느낌의 목욕탕이었다. 끝나고 식혜와 군계란, 그리고 사이다로 마무리해주고 나무 침상에 누워서 무한도전을 봤던 내 어린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노을이 점점 사라지면서 어둠이 몰려올 때 인왕산을 바라보면 언제나 아름답고 추억이 돋는다. 예전 3년 전에 관광통역안내사 실습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무조건 삼청동에 와서 실습생들과 카페 투어를 하거나, 근처 수제비집에서 해장을 하곤 했다. 그리고 인왕산 등산을 완료한 후 인근 공원에서 노상을 깠다. 그래도 그런 추억이 하나하나 모여있길. 이 위치에서 우리가 인왕산을 바라보는 그 장면처럼 하나의 약속을 했었다. "얘들아 우리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따고 최고의 통역사가 되어서 여기에서 만나자." 그 어떤 누나 같은 리더분이 참으로 소신 있고 자신 있게 외쳤고, 우리들도 그 분위기에 동조하여 눈시울을 머금으면서 다음에 성공하길 고대했다. 그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북촌마을 계단
난 이런 돌담길이 너무 좋더라. 인근 주민들은 항의를 했다. 너무 시끄럽고 소란스럽다고. 예전의 삼청동 느낌이 안 난다고 하셨다. 언제부터 프랜차이즈가 세워지고 젠트리피케이션화 되면서 삼청동 또한 홍대에서 연희동 이전처럼 그렇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일까. 역지사지 입장에서 재개발한다면 인근 서민들에게 좋은 의미겠지만, 그 원래 살던 세입자와 현지인, 유구한 그 지역의 전통을 유지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잡힌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말이다.
따릉이 타는 갓혁
자전거 타느라 카메라마저 흔들리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따릉이를 오래간만에 탄다. 출퇴근 용도로 이용했던 이 서울 공공재가 가끔씩 좋기만 하다. 그나마 서울시 정책 중에 이 공공자전거 정책이 굉장히 인기가 많다. 지금도 그렇다. 차가 없는 청년들은 이 운송장치를 이용하여 가끔씩 여행도 가고, 힐링을 하고, 삶의 질이 높아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물론 나는 여의도를 다녀올 때 이용한다. 참으로 재미있다. 꼭 타보길 권유한다. 아쉬운 점은 따릉이 거치대에 지붕이 없어서 비나 눈이 내릴 때 하자가 생길 수 있다는 점. 이건 내가 게시판에 글을 올려도 공무원들이 그냥 읽는지 아니면 넘어가는지 대충 무시하는 느낌이 든다.
2. 효자동(서촌)
바닥 또한 앤티크해
카페 NUHA191. 이런 레트로 감성 좋다.
코로나 시국 썰렁한 효자동
북촌한옥마을 - 서촌마을 이동 (따릉이 20분 소요)
따릉이를 타고 서촌으로 이동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날씨가 더 추워지고 사람들은 점점 술집으로 몰려든다. 특히 사케와 와인, 그리고 아기자기한 소품, DIY 제품, 귀여운 소품 가게로 즐비한 이 서촌 또한 낭만과 매력의 장소이다. 2016년 대외활동 중에 경복궁 스태프 역할을 찾는다는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하고 어느 한 사무실이나 행정복지센터에서 20명끼리 모여 현장 스태프 커리큘럼 교육을 받고 안전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장소가 바로 이 서촌 마을이 아닐까 한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카페가 눈에 보였다. 그러나 '자리 비움'이라는 포스트잇이 남겨진 문을 바라보며 그냥 기다릴까 말까 하다가 조금 더 북쪽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미술관 옆 작업실
정확한 위치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서촌의 큰 도로가 아닌 중간쯤으로 보이는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양 사이드로 아기자기한 카페와 와인바들이 즐비하다. 가끔씩 외국인들도 보인다. 인근에 한옥 게스트하우스가 있어서 저녁에 이쪽으로 몰려오나 보다. 그리고 1990년대 오락실도 발견하였다. 꽤나 재미있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철권과 메탈슬러그가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어느 아저씨들은 옛 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듯이 게임에 심취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이 참으로 감성적인 장면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다시 온다면 이 오락실을 지나치지 않고 그 아저씨들과 마주하는 날을 기약하며 철권 한판 붙고 싶더라.
서촌 마을 작은 골목길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앤티크한 조선식 가로등이 더 불을 세차게 내비쳤다. 한지로 만들어진 전등이라 그런지, 암막 커튼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감성적인 장면을 연출하게 하였다. 예전 조선 사대문 내에 있는 가로등도 다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현대와 과거의 공존
소소함의 풍경이 물든 어느 서촌의 한적한 동네.
필운대로
오늘도 열일하신 카페 사장님들께서 잡담을 하신다. 얼른 코로나가 풀려서 다 같이 여행이나 가고 싶다고. 지나가면서 우연치않게 들었던 그 강력한 말 한마디. 사장님들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지 예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촌마을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계신 분들께 격려의 박수를 드립니다.
당신에게 서촌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난 굉장히 여운을 주는 동네라고 믿고 싶다. 옛 전통과 역사의 유구가 깊은 동네. 그리고 북촌 또한 만만치 않지만 오히려 서촌은 예술을 좋아하는 일반 백성들의 소소한 감성이 물들어져있고, 북촌은 권위적인 양반들의 고위 감성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렇게 투어를 마치고 나는 이제 집에간다. 여행의 의미는 다를 바가 없더라. 누구는 이 골목길을 도대체 왜 가는 거야?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가끔 옛날 내 집이나 동네를 구경하다 보면 그 담과 집의 생김새마저 빤히 쳐다보지 않았던가. 이 지역에 뭐가 유명했지? 이 집에 어떤 구성이 있었지? 옛 감정 회고가 가끔 떠오를 때마다 내 가슴속 한 켠에서 나 또한 인생 헛살지 않았고 아직 그러한 감성이 남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앞으로 내가 이런 골목길 투어 여행을 하면서 계속 블로그에 남기는 취지도 '옛 감성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 좀 다른 방향의 의미를 가진 여행'을 선사해 주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