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한순간에 오류

by 산속


사람의 수명만큼 기억의 오류가 존재한다.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계란말이 맛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달콤하면서도 짭짤하고, 노란색이 유독 예뻤던 그 계란말이를. 그런데 몇 년 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씀하셨다. "그때는 설탕을 안 넣었는데?"
그 순간 깨달았다. 내 기억 속의 단맛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할머니와 함께했던 따뜻한 시간의 달콤함이 음식의 맛과 뒤섞여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기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확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바래고 윤곽이 흐려진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색칠을 다시 하고, 선을 다시 그어 넣는다는 사실이다.
"그때 정말 그랬지?" 하고 자주 물어보는 습관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확신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내 기억을 의심하게 되었다. 친구에게 "우리 그때 그 영화관에서 만났지?"라고 물으면, "아니야, 카페에서 만났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던 두 사람의 기억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객관적인 사실은 존재하는 걸까?
기억의 오류는 항상 자신의 생각을 교란시킨다. 어떤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경험 자체가 완전히 정확하지 않다면, 우리의 모든 판단과 결정은 불완전한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다.
특히 상처받았던 기억들은 더욱 복잡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픔이 증폭되기도 하고, 때로는 실제보다 완화되어 기억되기도 한다. "그때 정말 많이 아팠는데"라고 생각했던 일이 다시 되돌아보니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던 경우도 있고, 반대로 "별일 아니었는데"라고 여겼던 순간이 사실은 깊은 상처가 되어있던 경우도 있다.
내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대화들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내가 그렇게 듣고 싶어서, 혹은 그렇게 들을까 봐 두려워서 만들어낸 기억일 수도 있다. 우리의 감정과 욕망, 두려움이 기억을 재구성하고 각색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모든 기억이 의심스럽다면, 과거는 무의미한 것일까?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기억의 오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더욱 겸손해질 수 있다. "내가 맞고 네가 틀렸다"는 확신 대신, "우리가 다르게 기억하고 있구나"라는 이해가 생긴다.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에게 실망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안을 주기도 한다. 괴로웠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아픈 과거가 영원히 그대로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기억의 오류는 우리에게 현재에 집중할 이유를 준다. 불완전한 과거의 기억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선명하게 경험하고 기록하려는 마음을 갖게 한다. 오늘 나누는 대화, 오늘 느끼는 감정, 오늘 보는 풍경을 더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억도 존중하게 된다. 같은 일을 겪고도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기억되는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기억의 오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정확하지 않을지라도, 그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할머니의 계란말이가 정말 달콤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이 내게 주는 따뜻함이고, 그 따뜻함이 진짜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기억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지혜로워진다. 과거에 매여있지 않으면서도 과거를 소중히 여기고, 확신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도 경험의 가치를 인정하는 법을 배운다.
오늘도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간다. 언젠가는 이 기억도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두렵지 않다. 기억의 오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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