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을 가는 날이다.
일주일에 세 번, 올해 여름부터 보조강사로 동네 미술학원 중학생 아이들에게 소묘와 수채화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
어릴 적 배웠던 그림 실력이 어딘가에 쓰이긴 하나 했는데 어딘가 쓰이게 되었다는 게 가끔은 신기하기도 하다.
내 삶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또 흘러가게 될지.
일하는 곳까지는 집에서 나와 걸어서 20분 정도 걷는데
나는 그 시간을 “이끼의 시간”으로 부르고 있다.
이끼는 습한 곳에서 틈바구니를 비집고 자리 잡는다.
누군가는 곰팡이처럼 굳이 가지고 싶지 않을 시간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오르골 같은 삶의 풍미를 올리는 시간이 되었다.
내 삶은 항상 소리에 둘러 쌓여 있다. 조용한 삶은 왜인지 심장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항상 인위적인 소리를 켜둔 채 소리 쪽으로 의식을 옮기고 살아야 했다.
그 ”이끼의 시간“은 소리는 최소한으로 의식을 두고 다른 감각을 최대한 키운 채 주변을 살핀다.
계절의 변화를 찾아본다,
햇빛이 저번보다 따끈하지 않는지.
바람에서 겨울 내음이 섞여있지 않는지.
나뭇잎에 색이 조금은 더 바래진 않았는지.
하늘이 조금은 더 연한 하늘이 되진 않았는지.
매번 같은 길목으로 걷지만 매번 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어 이 시간에는 내가 이끼가 되는 기분이었다.
같은 풍경 아래 다른 풍경 같은.
그런 이끼는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본인을 그 자리에 그려가며 묵묵히 자리를 매겨간다.
나도 그런 이끼의 시간으로 맞는 내 자리를 찾아가며 나의 자리를 매겨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