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친숙하게 대화할 수 있다.
2010년 어느 ‘비즈니스 대화 스킬’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의 일이다. MBTI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MBTI에 관해 설명을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강사는 갑작스레 “선생님은 정해 놓은 계획대로 행동하는 것보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는 판단을 더 중요시하는 편이시죠? “라고 말했다. 나와는 통성명도 하지 않았고 서로 말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네, 어떻게 아세요?” 나의 대답에 당황한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여기저기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사는 신이 났는지 아니면 원래 계획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사람을 지목하면서 마치 족집게 무당처럼 그 사람의 성격 특성을 맞추어 버렸다.
별도의 설문 검사나 상담을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일부 심리적 특성은 겉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강사의 주장이었다. 옷차림새, 앉은 자세, 수업 내용에 대한 호응 정도, 걸음걸이 이런 것들이 판단의 소스이다. 사람 대부분은 자기도 모르게 많은 부분에 일관적인 행동 패턴을 보인다. 평소의 걸음걸이가 오늘은 빠르고 내일은 느리지 않다. 오늘은 말이 빠르고 내일은 말이 느리지 않다. 그런 일관적인 행동 패턴은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에 자연스럽게 몸에 밴 일종의 습관인데, 이런 것들이 그 사람의 성격적 특성에서 기인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고 많은 상담을 해야만 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면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당시에 내가 그랬다. 어쩔 수 없이 상담하지만, 그저 내가 해야 하는 말만 하고 상담을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오랜 기간 친하게 지내왔던 선배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대기업의 관리자 직급이었다. 그때는 주식투자와 변액연금 그리고 자산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하는 재무설계가 유행했던 시절이다. 매우 진지하고 서로 호감 있는 대화라는 느낌으로 한 시간 정도 상담했다. 상담결과도 좋아서 그 자리에서 내가 제안한 상품에 그 선배의 남편은 서명했다.
그다음 날, 선배에게 전화를 받았다.
“어제 상담을 잘했나 봐? 집에 와서 남편이 너의 얘기를 많이 했어. 참 똑똑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줘서 이해하기 편했다고. 그런데 말이야, 네가 우리 남편을 가르치듯 말하는 것이 거북했나 봐. 웃으면서 말하기는 했는데, ‘그 친구가 계속 나를 혼내듯이 가르치는 거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10년, 20년을 내다보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러면서, 당신 후배이니까 그냥 웃으면서 듣기는 했는데 재밌는 친구더라’라고 하더라. 다음에 또 만나게 될 테니, 우리 남편 성격 참고하라고 알려주는 거야. 우리 남편은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알아. 알았지? “
전화를 끊은 뒤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그분 아내의 후배였기 때문에 나의 제안에 서명한 것일 뿐, 나의 상담은 형편없었다는 생각에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나의 얘기에 반대의견도 없었고 대체로 수긍하기에 나는 신나게 내 얘기만 했다. 그분의 기본적인 성향에는 관심도 없었고 나의 목표에만 집중하고 몰아갔다.
그런데 이 강사는 나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나의 성향을 알아봤다. 그 뒤로 나는 각 사람의 성격에 차이가 있음과 그것이 선천적인 선호도의 집합체라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MBTI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분석 심리학에도 관심이 생겨서 관련 책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사람 성향의 분류를 구분하고 각 분류에 따른 효과적인 상담방법을 찾는데 흥미가 생겼다.
최근 연 매출 400억 정도 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와 상담을 했다. 대표님의 방에 들어선 순간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가지런히 정리된 책들과 각종 서류철이었다. 업무용 책상에는 노트북 한 개와 모니터. 그 옆에는 색깔과 종류별로 정리된 펜들이 있었다. 대표님은 나를 회의 테이블로 안내했고 유리로 된 회의 테이블에는 그 흔한 지문 자국 하나 없이 깔끔했다.
나는 작년과 올해의 사업성과를 물어보았고, 대표님의 사업계획과 그에 따른 고민도 듣게 되었다. 나는 패드 위에 대표님의 말을 열심히 메모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대표님의 고민은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그 문제로 이미 여러 조언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허락을 구하고 내 노트북을 대표님 방의 대형 모니터에 연결한 뒤, 내가 속한 회사 소개를 했다. 그리고 대표님이 고민 중인 문제들을 이슈별로 구분해서 나열했고 각 문제에 대한 해결한 제시를 구체적인 일정을 들어 제안했다. 대표님은 내가 제시한 일정에 몇 개를 수정했고, 검토에 필요한 회사의 자료가 있다는 나의 요청에 담당자를 불러 협조를 지시하고 상담이 끝났다.
중소기업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첫 10분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은 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동의할 것이다. MBTI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최근 한국에서만 유행이 되어 마치 예전의 혈액형을 기준으로 한 유형 분류와 유사하여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나는 MBTI에 대한 신뢰성 여부를 다루기보다는, 중소기업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그 활용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상담 첫 10분에 활용할 수 있는 팁이 있다거나, 고객의 심리를 조금 더 이해하는 방법이 된다거나, 상담자의 신뢰를 조금 더 얻는 방법이 된다면 충분히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