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환자와 조현병 환자의 연애 ①
※주의※
이번 시리즈의 글은 전부 과거의 일이며, 일부 부분은 순화하여 적었습니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다.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됐다. 그러면서 한 번의 연애가 있었고 짧게 만나고 헤어졌다. 그리고 또, 약에 대해서 생각이 달라져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제일 먼저 연애 얘기가 하고 싶다. 맛보기로 그에게 들었던 말을 적어본다.
"정신과 갈 돈이 없어요."
나는 그걸 들었을 때, 그 연애를 포기했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우선 그는 같은 회사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그와 친해진 것은 '어떤 약'을 '자주' 먹는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 덕분이었다. 그가 매번 복용하는 약이 있길래 스몰 토크를 걸었다. 약이라면 나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어서 더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나는 처음에 그가 정신과와 관련이 없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이야기에 살을 붙이기 위해 나도 복용하는 알러지 약이 있다고 거짓말 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복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돌려 말했고 그 탓에 병원을 자주 간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그에게 내가 먹는 약에 대해 곧바로 털어놓지 않았다.
그가 먼저, 내가 이런 분야에 대해서 남들보다 훨씬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간파했다. 자연스럽게 내게 'ADHD'가 있다고 말했다. 나보다 3살 가량 어렸으므로 나는 그가 나에게 거리낌이 없는 것인지 나에게 의지를 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곧바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거짓 없이 말하는 모습에 아주 약간 호감이 갔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쉽게 오픈 해도 되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정신 질환을 가진 입장으로서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앞서 브런치에도 적었듯이, 정신과를 다닌다고 해서 다른 병에 대한 지식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치료에 대한 가치관이 다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좋은 친구 관계로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얘기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약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 다른 ADHD를 가진 내 또래의 친구들은 나아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얘기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내가 증상에 대해 공감해 주자 그는 매우 기뻐했다.
그는 늘 약속한 시간에 정확하게 도착하지 않았다. 9시 출근에 늘 9시 5분 혹은 10분에 도착했다. 상사들의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그 습관을 쉽게 고치지 못했다. 나는 그가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라, '못했다'고 보았다. ADHD의 증상. 정말 잘 알고 있는 분야 중 하나였다. 심지어 나는 주변에 ADHD 환자가 꽤 있어서 서울에서 주최되는 세미나에도 참가한 적이 많았다. 관련 지식도 있고 이해도 갔다.
그리고 점점 친해지면서 그가 약을 챙겨먹는 것을 매우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를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아마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연애 감정 쪽으로. 이런 마음이 아주 위험한 것이라는 걸 알지만, 이번 만큼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었다. 이런 기대가 원래 제일 무서운 법이지만 말이다.
나는 그에게 특수한 상황이 없는 것처럼 대했고 그도 그런 나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외롭다'는 얘기를 했고 나는 그 얘길 듣고 그와 함께 하는 나를 떠올려 보았다. 그는 나보다 30cm 정도 키가 컸고 덩치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술은 잘 못했지만 담배를 자주 피웠다. 유심히 보다 보니 나름 재밌는 사람이었다. 업계에서 인지도 있는 사람이 돼서 대표 간판이 되고 싶다고 내게 넌지시 말하기도 했다. 난 월급만 받으며 돈이나 모으려는 목적으로 직장을 다니는데 그는 꿈이 있어 보였다. 그 자신감을 보니 나에게는 없는 것들이 보였다.
조현병이라는 결함이 크다고 생각해 낮아진 자신감을 그에게서 얻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만나 보고 생각할까? 관심이 있다고 표현이라도 해볼까 싶었다. 물론 일에서 자주 마주치긴 했지만 매일 만나는 사이도 아니였고 같은 지역 사람이라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볼 수 있겠다 싶었다. 내 머릿속으로 나름의 계산을 세웠고 이 사람과 만나 봐도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감 표현만 하자 싶었는데, 당일 저녁 문자가 왔다. 어떻게 하고 싶냐는 문자였다. 되물으니 이랬다.
[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싶은 건지 궁금해서요. ]
이런 식의 문자가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세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날부터 정식으로 사귀는 걸로 얘기를 마치고 다음 날이 왔다. 시간이 좀 지나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호감'만 표시했을 뿐인데 '교제'까지 된 걸 보면 참 여러 생각이 든다. 아무튼 다음 날, 그가 웬일로 정시보다 일찍 출근을 해서 일을 했다. 그게 ADHD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던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느꼈고, 그도 나에게 내가 보고 싶어서 일찍 왔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 이후 그 말을 응원처럼 받아 듣고 근무를 하는 데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후에 상사에게 인정을 받기도 했다.
유년의 상처나 질병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특히 나는 내 질병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미뤘고 내가 먹는 약이 어떤 효능을 하는지 조금씩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나의 질병에 대한 관심보다 내가 어떤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연애 초반이라 한참 불 탈 시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성관계에 특히 관심이 지대했다. 그래서 한술 떠봤더니, 그가 딥웹에서 '에세머'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그때도 머릿속에 위험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같은 정신질환자 입장에서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취향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그게 다소 충격이었던 것 같다. 사귀고 2주일 동안 그가 나의 성적 취향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봤다. 그리고 그때쯤이었다. 오늘 게시글의 제목인 '그 말'을 듣게 된 것이 말이다. 그와 사귄지 첫 일주일은 짜릿하고 정말 재밌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그의 생활 패턴이 급격히 무너지는 게 느껴졌다. 그 롤러코스터 같은 파급력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게 있었다. 내가 물었다.
"콘서타 먹었어요?"
"아뇨."
"어제는?"
"어제도..."
"왜요?"
그가 덤덤하게 말했다. 마치 편의점에 갔다오겠다는 말처럼 말이다.
"정신과 갈 돈이 없어요."
콘서타란, ADHD들이 주로 처방받는 약이다. 내 친구들도 종종 먹는데, 아무튼.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가 고정 지출을 제외한 '여유 비용'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 '돈'이 없어서 월세도, 공과금도, 카드 값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데 그날따라 심각하게 전화를 받았다. 짧게 통화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한동안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길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카드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대답을 못했다. 몇 번 다시 물었더니 자신에게 '빚'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학자금 대출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서 그와 관련된 것이냐고 물어봤다. 내가 알기로 학자금 대출건으로 전화가 오는 것은 드문 일인 것 같아서 의아했다. 나는 뭔가 다른 급한 일임을 감지했다.
"카드 값 연체 돼서요."
액수가 궁금했다. 어느 정도 인지.
"얼마 정도요?"
"감면 받고 120만원정도..."
그 말을 듣고 나는 내 주변의 빚쟁이들을 떠올렸지만 그는 특히 조금 남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어떤 대처를 해야 옳았는지 자주 생각해 보곤 한다. 그때만 생각하면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다. 이 이후의 일은 ②에서 다루려고 한다. 현재를 요약하자면 그와는 이미 헤어졌고 사귀고 있을 당시 그는 여러 모로 궁지에 몰려있었다.
뒤늦게 밝히지만, 이 글이 누군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기록 이외에도 '정신질환자의 치료 자금 마련에 대한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싶어서이다. 그를 깎아내리거나 그의 인생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읽으면서 화가 나더라도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작가도 미숙한 상태였음을 밝히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다음 ②에서는 그의 빚과 청결 상태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비슷한 상황을 발견하거나 공감이 간다면, 꼭 병원을 내원해 보시길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친다.
아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