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아

조현병 환자가 전하는 질병 기록 에세이 (11)

by 아픔

홀수 인원의 팀으로 구성되어 일하고 있는 동안에, 나에게 시련이 왔다. 한 명은 목소리가 컸고, 그래서 휴게 시간에도 그 사람이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절로 들려왔다. 결국 트리거가 눌리고야 말았다. 나를 제외한 인원들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와 함께 조현병도 점점 움트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정도가 심해지더니, 두 사람이 작당 모의를 하는 것 같았고 나에 대한 원한이 생기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전문정신병자라 괜찮다고 뇌까렸다. 일단 침착하자. 지금 내 머릿속에 잘못된 정보 값이 있는 거 같다고 판단했다. 나는 근거를 하나씩 찾아야 했다.


이런 일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할 것도 없다. 나는 나에게 증상이 생겼다는 것을 느꼈고, 그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는 걸 인지했다. 불안한 와중에, 현실감각을 잊지 않아 가늘고 느슨하게 나의 상태를 파악해 냈다. 아, 지금 이거 환청 들리네. 이런 식으로 현실감각에 덧입혀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다음으로 내가 남들에게 잘못한 것은 없는지 톺아봤다. 무언가 크게 잘못하거나 실수한다는 객관적 사실 같은 건 없었다. 나는 나대로 계속 살아갈 뿐이었고 그게 조금씩 부딪히긴 했으나 균열이 날 정도의 건수는 없었다. 혹여나 놓친 게 있는 거 같아 세 사람이 모여 있을 때의 상황을 정리해 보기도 했다. 말실수한 것은 없는지, 그들에게 미움받을 만한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다 보니 참. 힘들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이 좀 지치긴 하지만, 이제는 지쳤다는 마음보다 또네, 내가 잘 조절해 봐야지. 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순간 정신과 의사의 인자한 모습이 떠올라서 당장 병원에 가서 약물에 기대고 싶기도 했다. 지금 바로 병원 가서 약 증량해 달라고 호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어른이고 의무를 다할 줄 알았기 때문에 나름 상황을 타개하고 정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체력을 소비하긴 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지쳐서 집에 오자마자 기절 잠을 자는 게 일상이 됐다.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할 일을 정리하고 사이클을 재정비하자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출근하면서 그들과 더욱 친해지기 위해 애썼다. 다행히 한 명과 친해져서 좋게 헤어지고 현재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중이다. 조금 위태로웠지만 잘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좀 더 다듬어서 의사에게 전달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겼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무조건 보고해야 한다. 나의 병원 철칙이다. 의사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기. 만약 한다고 하더라도 사생활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그 외의 증상은 전부 말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호전된 이유도 이와 같을지 모르겠다. 병이 난 것을 숨기지 않는 것도 나의 장점 중 하나이다. 나는 정말 나의 모든 것을 의사에게 털어놓았다. 일정 부분의 사생활까지도. 처음에는 슬프고 괴로웠지만, 이제는 이 과정에서 안락함을 느끼기도 하고 있다.


지금 글과 연관이 적은 이야기이지만, 인생에 정신적으로 굴곡을 거치지 않았을 법한, 멘탈 관리 잘하는 동료 하나가 나를 ‘엔터테이먼트’라고 평가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요약해 보면 콘텐츠 제공자라는 뜻인 거 같은데 잘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1:1에 강하다고 말해줬다. 고맙기도 했지만, 다수의 사랑을 받기에는 다소 역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해서 약간은 정신 승리를 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제 그 동료를 더 만나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뭔가 첨언하려다가 그냥 뒤돌아서 걸어갔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그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포인트들은 다 발견한 것만 같은, 그런 종결을 감지했다. 나는 애초에 그 사람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 않기도 했다.


브런치에서는 꼬박꼬박 내가 조현병이 있다는 것을 초입에 언급하고 있고, 친한 친구들에게도 속이지 않는 편이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어 보이면 즉각 얘기한다. 왜냐하면 나는 정신질환을 결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주는 커다란 지표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작 이런 걸로 손절당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름 자신감 있는 편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나를 더 알리기 위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인지해 주기 위해서 정신질환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 때로는 약간의 거짓을 섞어 말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진실을 타인에게 설명한다. 난 부끄럽거나 숨기지 않는다. 다만 이 말을 전달할 타인이 준비가 되어있다는 가정하에만 말한다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내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데 있어 조현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일정 이상의 철학, 좌우명 같은 것이 필요한 것처럼, 나는 ‘진실을 밝힌다’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손해 본 적이 얼마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긍정적인 일을 많이 겪었다. 숨기지 않는 것을 통해 얻는 깨달음도 적지 않게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질병이 결함보다는 피할 할 수 있는 포인트 중 하나라고 보게 된 것 같다.


물론 이런 성질이 모든 사람에게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껏 상황이 나를 이렇게 몰아줬고 내가 이에 순응하고 있다는 것에 유감이 없다. 상대방의 반응을 보는 것도 재밌다. 대부분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리고 나는 자신감 있게 내 질병을 내놓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사람에게 그런 건 아니다. 이런 특성을 역이용해서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그건 매우 사소한 부분이었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긍정적인 편이었다. 반응도 다양하다. 곧게 잘 성장했다는 칭찬부터 시작해서 오히려 어떤 증상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럼 털어놓는다.


어쩌면 브런치에 질병을 말한다는 것도, 나를 위한 조절 장치 중에 하나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준히 써서 얼른 전달하고 싶다. 나 조현병 있어요. 그리고 이 병은 이런 특징이 있어요, 라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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