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거리두기
전역할 당시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한 말이다.
'전역뽕 좀 빼라'
그때 당시에는 웃어넘겼지만, 전역뽕이 빠진 현재 내 모습을 보니 왜 그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전역을 할 당시에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고, 군생활 동안 꾸준히 해왔던 자기 계발을 밖에 나와서도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전역을 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헬스를 꾸준히 해서 커져버린 몸뚱이 말고는 딱히 군대 입대하기 전과 바뀐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밤에는 대학교도 다니고 있지만 딱히 흥미는 없다. 야간 대학교 학위를 통해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고, 학업에 열의도 크게 없기 때문이다.
방구석에서 누워서 유튜브나 보고 있고, 그렇다고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다. 운동하고 하루에 한 끼는 닭가슴살과 건강한 음식 위주로 식단을 하며 회사랑 대학교 다니는 것이 전부이다. 나를 보고 '꽤나 열심히 살고 있네.'라고 말을 하는 주변인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이루고 하고 있는 행동들이 별 것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그래도 이만하면 꽤나 잘 살고 있는 것 같기도?'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군대에서 있을 때 세워놓은 나름 체계적인 계획들이 하나도 지켜지지가 않고, 목표했던 것들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마음가짐도 나약해지며 계속 계획을 미루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채찍질하기 바쁘다.
나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고, 성취물에 대한 기대도 높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을 미루는 게 아닌가 싶다. 군대에서는 전역을 하고 나서의 미래에 대해 명확한 목적의식이 존재하고 어떠한 행동을 하는데 이유가 있었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들은 어떠한 목적의식과 이유를 동반하고 있지 않다.
군대에 있을 때, 열심히 살며 무언가 성취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기적에 가깝다. 군대에서는 완벽한 통제의 환경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환경적 요인들이 나를 구속하고 통제해줬고, 어떠한 행동을 하는데 드는 에너지 소모가 크게 없었다. 하지만 바깥은 다르다. 나를 유혹하는 요소가 산재하고, 나 스스로 그런 환경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생각해보면, 전역 후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욕망을 가지고 살면서 통제된 환경에서 살았던 군대가 오히려 행복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족쇄를 풀고 싶어 하던 노예가 족쇄가 풀린 후, '이제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어!'라고 생각하며 이것저것 해보다가 현실의 벽을 깨닫고, 다시 주인님께 돌아가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진정히 원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에 도달한 순간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상황이 연출된다. 내가 진정히 원하는 것은 전역 후의 파란만장한 삶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나는 그저 군대 안에서 열심히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창창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욕망의 대상으로 삼은 게 아닐까.
이카로스의 아버지는 이카로스에게 태양 가까이 날면 태양의 열 때문에 밀랍이 녹게 되고, 바다와 가까이 날게 되면 바다의 물기 때문에 날개가 무거워져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충고하였다. 이카로스는 그 말을 듣지 않고 하늘 높이 날다가 밀랍이 녹아 하늘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욕망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실행하고 행동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진정하게 욕망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