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존재하는 이유
어떻게든 살 방법이 없을까?
영화 〈휴민트〉는 대한민국과 북한 정보 요원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첨예한 국경지대에서 충돌하는 이야기를 담은 첩보 액션 영화입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정보요원이 악당들을 물리치는 마지막 총격 신이 대단한 장면이었습니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속도감 있는 액션과 긴장감도 물론 압도적입니다. 마치 오래전 영화 <영웅본색>을 보는 듯했으니까요. 하지만 <휴민트>는 겉보기에는 액션 스릴러 영화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습니다.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합니다. 제목 Humint는 ‘Human Intelligence’, 즉 사람을 통한 정보 수집을 뜻합니다. 물론 이것은 정보요원들이 정보를 수집하는 인맥을 뜻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정보기술사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수한 정보요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실시간으로 정보에 접근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며 살아갑니다. 이제는 기술과 데이터를 넘어서 “사람의 목소리·움직임·관계” 자체가 정보가 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 영화가 진짜로 말을 걸어오는 부분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인간이 하나의 ‘정보’로 취급되는 삶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인간이 정보가 될 때
영화의 중심에는 네 인물이 있습니다. 남한의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 (조인성), 북한 보위부 조장 ‘박건’ (박정민), 북한 총영사 ‘황치성’ (박해준), 그리고 휴민트, 인적 정보원 ‘채선화’ (신세경) 입니다.
조 과장은 자신의 작전 중에 사망한 휴민트 북한 여성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채선화는 그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했고 어떻게 해서든 이번에는 휴민트를 지켜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정보라는 소모품으로 보는 국정원과 조 과장은 늘 충돌합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영사 황치성은 탈북여성들을 러시아 마피아에게 팔아 돈을 버는 악한입니다. 황치성은 이 사건을 조사하러 온 박건이 채선화와 과거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함정을 만듭니다. 국정원과 북한 요원들의 첩보전 속에 박건과 조 과장은 채선화를 구하기 위해 한편이 되어 싸우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충돌하고 교차하는 지점은 사람을 정보로 보느냐, 존재로 보느냐의 차이였습니다. 정보기관과 같은 권력기구와 인신매매꾼들에게 사람은 그저 '가치'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조 과장과 박건은 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결국 작품에서 휴민트는 단순히 “정보를 수집한다"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사람 자체가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은 시스템의 부속품인가, 또는 돈인가, 아니면 타인의 삶에 의미를 만드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남과 북 체제의 아픔과 화해의 가능성
또 한 가지는 남과 북의 분단의 아픔과 그 회복의 의미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경제적 궁핍 때문에 사람들을 외화벌이로 내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러.우전쟁에 총알받이로 젊은이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들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당간부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사람은 공산주의의 시선 그대로 물질적 존재, 돈일뿐입니다. 반면에 남한도 마차가지였습니다. 국정원은 휴민트를 정보의 가치로 매깁니다. 필요 없으면 언제든 내버릴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 매섭게 추운 변방에서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조 과장과 박건을 통해 남과 북이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지 보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남과 북은 화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박건의 고백은 그 목소리를 대변합니다. "어떻게든 살 방법이 없겠냐"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신학적 성찰: 존재와 관계의 가치
이 점에서 영화는 신학적 성찰의 여지를 내보입니다. 현대 사회는 사람을 도구로 봅니다. 효율, 성과, 정보, 목적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가치는 결코 그 사람의 기능이나 역할이 아닙니다.
“너는 이것을 위해 존재한다”가 아니라, "너는 사랑받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것입니다.
존재와 정보의 경계는 바로 이 사랑의 회복에 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그저 제자로 부르지 않고 그들을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이 작은 호칭의 전환이야말로, 사람을 도구가 아닌 관계의 자리로 불러 세우는 방식입니다. 〈휴민트〉는 첩보영화라는 장르를 빌렸지만, 결국 인간을 인간으로 읽어내는 방식, 그것이 진짜 서사의 중심이었습니다. 휴민트는 정보가 아닙니다. 휴민트 역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요한복음 15:15) 인간은 가치가 아닌 존재로 평가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