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이 글을 쓰는 동안 알 수 없는 이유로 각각 다른 앱에서 세 번 날아갔다. 마치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혼나는 느낌이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서 가져온 바질 나무가 하루 아침에 동사하고
백합은 줄기와 잎을 말리고 구근으로 돌아가 겨울나기 월동 준비를 시작했다.
이 와중에 봄부터 키운 토마토 나무에서 갑작스럽게 꽃이 피어난 참 느닷없고 기이한 한파였다.
그리고 그 끝에 첫 눈이 내렸다.
첫 눈이 주는 이미지에 비해 너무 포악했던 첫눈이 지나간 흔적은 우리집 현관에 고스란히 남았다. 눈이 녹은 자리에 흙탕물이 고이고 그 사이에 숨어있던 흙이며 나뭇가지며 출처를 알 수 없는 지푸라기 등등이 쌓였다. 가을 내 낙엽 부스러기 치우느라 고역이었는데 끝나자마자 눈이라니.
쓸고 닦고 할 기력이 없어 주말 내내 발로 대충 쓱쓱 밀어내며 내버려 두었는데, 월요일 아침 남편과 아이들의 신발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자리에 벌거벗은 듯 드러난 현관 바닥을 보니 더 이상 외면 할 수가 없었다. 빗자루로 마른 먼지들을 그러모으고 밀대에 물걸레 청소포를 부착해 힘을 줘서 쓱쓱 닦고나니 윤이 나는 바닥을 다시 볼 수 있었다. 5분 여의 노동에 비해 꽤 괜찮은 대가였다. 이제 청소포를 빼서 모아둔 먼지를 집어버리면 끝이다. 까맣게 더러워진 청소포에서 그나마 깨끗한 부분을 찾아 손가락 끝으로 모아쥐고 잠깐 쭈그려 앉아 바닥을 쳐다보았다. 마지막 한 번의 손짓이면 끝이다. 말끔해진다. 마치 눈이 오지 않은 것처럼.
내 마음도 그렇다. 마지막 한 번의 인사로 이 우울감을 날려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갈테다.
갑작스러운 이별 이후 첫 날은 종일 눈물이 났다. 아이들이 웃는 걸 보면서도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둘째날에는 밥을 먹다가도 TV를 보다가도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슬퍼서 눈물이 나는 건지 슬프려고 눈물을 쥐어짜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할당된 눈물의 양을 빨리 털어버리려는게 아닌가 싶을 만큼. 그날 오후까지도 밝고 발랄한 어느 아이돌 그룹의 노래에 꽂혀 하루종일 흥얼거리던 나에게 죄책감이 들어 아무 소리도 내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셋째날부터는 나도 모르게 밥을 하다가 고기나 참치 등을 한줌씩 남겨두거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내 무릎 높이에 시선을 두는 자동 반사적인 행동들에 울컥울컥 손 끝이 저려왔지만 눈물 대신 큰 숨으로 슬픔을 내보냈다.
그런데 4일째부터 약 이주간 한파처럼 이벤트가 몰아쳤다. 하루하루 특별한 일을 쥐어짜내지 않으면 찾기 힘들만큼 내 인생에 정말 드물고 느닷없는 시기였다.
3년 전부터 매년 하는 정기 검진을 위한 검사 일정이 밀리는 바람에 병원을 세 번이나 방문해야 했으며, 주말에는 1박2일 지방 친척 결혼식에 참석했다. 사이사이 시댁 제사에 평일에는 아이들 라이딩, 주말에는 아이들 체험을 쫓아다녔다. 그러는 사이 집안일은 계속 쌓이고 밀리면서 하루하루가 눈폭풍에 휘말린 듯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폭설이 내릴 때 쯤에는 소식을 들은 이후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며 나의 우울을 걱정하는 가족 및 친척들의 위로와 현재 건강에 문제 없다는 의사의 진단, 심약해짐과 동시에 다소 유해진 나의 태도에 신이 난 아이들의 웃음소리 등으로 내 마음에도 안정감이 소복이 쌓였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잔잔하던 마음에 예상치 못한 폭설이 내려 모든 것을 덮어버릴 뻔했지만 가족들의 위로와 시간의 힘으로 모두 녹여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간 내가 스트레스라고 부르던 것들이 얼마나 사소하고 하찮았는지, 지겹고 권태롭다고 울부짖던 나날들이 사실은 얼마나 평안한 삶이었는지, 바닥을 치고 내려가는 건 내맘이지만 다시 올라오려면 얼마나 많은 도움이 필요한지 절실히 깨달은 시간이었다.
한 줌으로 모인 먼지들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집어들어 걸레와 함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새 축축하던 바닥의 물기도 모두 말라있었다. 물자국이 조금 남았지만 이 정도면 됐다.
오늘은 오랜만에 햇살이 좋으니 밝고 산뜻한 노래를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