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평화
마치 운수 좋은 날 같은 하루였다.
주말에 지방 친척 결혼식에 가기 위한 기차표의 대기가 풀려 원하는 시간대에 예매에 성공했고,
몇주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내년도 다이어리를 마침내 결정해서 주문완료했다.
남편이 저녁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동안 주말내내 엉망이 된 집을 말끔하게 정리한 뒤 오랜만에 여유롭게 얼굴에 팩도 한장 붙였다.
그리고 그날 밤 13년간 키워온 강아지가 돌연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이들을 재우고 침대에 누웠는데 오늘 따라 녀석이 이상하게 침대로 뛰어올라오더니 남편과 나 사이에 파고들었다. 평소라면 거실에서 자라고 쫓아냈을 남편이 왠일로 가만히 쓰다듬어 주자 강아지는 숨을 몇 차례 빠르게 몰아쉬더니 갑자기 거실로 나가버렸다. 침대가 더운가보다 하고 잠든지 한시간쯤 지났을까. 자고 있는 내 귓가에 거친 숨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잠에서 깨어날수록 소리 뿐만 아니라 작은 몸이 들썩거리는 느낌과 뜨거운 숨결이 또렷하게 느껴지면서 번쩍 눈을 떴다. 어느새 또 곁에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강아지를 안고 거실로 나와 한참 토닥이고 쓰다듬어 주어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요 몇일 내내 먹은걸 다 토하더니 오늘 저녁에는 간식에 손도 대지 않은게 생각났다. 한 달 전부터 몸이 급격하게 안좋아지고 있었지만 설마 싶었다. 이건 너무 빠르잖아. 얼마 전 노령견용으로 새로 산 사료와 껌은 아직 3분의 1도 못먹었고 제일 좋아하는 고기 간식도 반이나 남아있었다. 패드도 더 흡수가 잘되는 걸로 새로 구입한 건 이걸 다 소비할 정도의 시간은 남아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안겼다 누워있다 잠깐 돌아다니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 3시를 향해하고 있었다. 한 차례 왈칵 토하고 오더니 눈에 띄게 기운이 빠져 앉아있기도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었다. 출근을 위해 일찍 잠든 남편을 깨웠다. 자다가도 아빠 소리만 들으면 뛰쳐나갈만큼 강아지가 가장 좋아했던 남편과 마지막 인사는 시켜주고 싶었다.
여보 애가 호흡이 가라앉질 않아. 아무래도 오늘 가려나봐.
이미 심상치 않음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는지 깊은 잠에 빠져있던 남편도 벌떡 일어났다. 번갈아가며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는 동안 쉴새없이 가쁘게 몰아쉬던 숨이 반대로 점점 느려졌고 남편이 심장박동을 체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몇 초만 움직임이 없어도 설마 하며 화들짝 놀라기를 몇차례. 오래 지나지 않아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던 쿠션 위에서 자는 듯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나는 내가 이 강아지를 떠나보내며 이렇게까지 하루종일 눈물을 흘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 녀석이 어떤 녀석이냐면, 나와 13년 인생을 함께하면서 3할의 행복과 7할의 고통을 남기고 간 애증의 똥개다.
멋모르던 어린 시절, 강아지 정보를 나누던 인터넷 카페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아직 한 살이 채 안된 어린 강아지인데 대소변도 못가리고 다른 강아지들을 너무 괴롭혀서 시골에 보내버리려 한다는 글이었다. 나는 사진 속의 녀석이 너무 예뻐서 내가 키우고 싶다고 연락해버리고 말았다. 그 때 그 주인의 마지막 경고를 들었을 때 도망쳤어야 했는데, 예쁜 얼굴에 반해 데려왔다가 13년 동안 고난의 세월이 시작되고 말았다.
조금 모자란 정도가 아닌 이 녀석은 6개월 가량을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즉, 한 살을 넘긴 후에도 완벽히 훈련이 되지 않아 오줌을 질질 흘리며 패드로 데려가는 일이 꽤 자주 있었다는 일이다. 그렇게 겨우겨우 똥오줌은 가리게 되었는데, 바로 두번째 문제가 시작되었다. 사실 원래 키우고 있던 한 살 많은 강아지가 있었는데 성별이 달라서인지 오빠 노릇한다 싶을 만큼 잘해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온 이 녀석이 덩치가 비슷해지자 처음에는 침대 주위에, 나중에는 내 주위에 얼씬도 못하게 물어 뜯어버리는게 아닌가. 그르릉거리는게 아니라 정말 달려들어 선명하게 이빨 자국을 만들어놓았다. 공격이 너무 갑작스럽게 시작되니 당하는 첫째도 말리는 나와 남편도 정신이 없어 얼마나 많이 다쳤는지 모른다. 먼저 정이들어있던 큰 강아지를 너무나 불쌍히 여긴 시어머니가 데려가 키우겠다고 선언하시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가끔 이 녀석을 데리고 시댁을 가면 시어머니가 참 예쁘게 생겼다고 좋아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넌 정말 얼굴 덕에 여태 살아있는거라고 속으로 외치곤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고를 치는 와중에 틈틈이 집을 나갔다. 분명 거실에 있었는데, 간식도 던져주고 나왔는데 현관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튀어나가는 일이 셀 수도 없었다. 어린 아이들을 하나는 허리에 매고 하나는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매번 차라리 아주 멀리 가버리면 인연이 여기까지인가보다 포기해야지 생각했지만 꼭 헤매면 찾을만한 거리쯤에서 방황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폭 안겨 돌아오곤 했다. 신혼초 빌라에 살면서 현관문을 열 때마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중문부터 계약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에게도 현관문보다 중문 닫으라는 잔소리를 훨씬 더 많이 했을 정도였다.
밖에서는 얌전했느냐.
녀석이 첫 째 강아지만 물리친게 아니다. 온 세상 강아지랑 다 배틀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겁쟁이라 짖는 줄 알았더니 어느 날 앞서가던 강아지의 엉덩이 털을 이유없이 물어뜯는게 아닌가. 그 다음부터 다른 강아지들을 피해 산책을 다녔고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내가 체력이 되는 한 거의 매일, 하루에 두세번도 나가곤 했다. 그런데도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다른 개만 보면 쫓아가는데 뒷걸음질치다가 목줄이 빠지는 바람에 바람처럼 쫓아가 물어뜯어 병원비를 물어준 적도 있다. 그 때부터는 추운 날, 비오는 날, 늦은 밤, 점심 시간처럼 다른 강아지를 만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시간에만 아주 가끔 나가곤 했다.
아이들과는 잘 지냈느냐.
첫째 둘째 걷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수차례 물리고 긁혔다. 물론 대부분 아이들이 녀석을 놀래키는 일이 많았고 일부러 공격한 건 아니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 살았음에도 죽는 순간까지 아이들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정도 없었다. 첫째는 강아지를 좋아해서 어릴 때 쓰다듬으려다가 몇 차례 크게 다칠 뻔 했음에도 끝까지 친해지기를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지만 물릴까 무서워 끝내 한 번도 혼자서는 강아지를 안아올리지도 못했다. 다행히 둘째는 강아지에게 관심이 없어 우리집에 강아지는 없는 것처럼 살아서인지 죽음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 녀석이 아이들과도 계속 싸우면 첫째 강아지처럼 쫓아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몇 년같은 긴장 속에 살았다. 그 때 왜 아이들을 생각해서 다른데로 보내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때는 이렇게 버릴 수 없다는 마음에 버텼고, 그 동안 아이들은 성장해 집에서 떠나있는 시간이 점차 길어졌다. 동시에 아주 조금씩이지만 녀석의 기운도 줄어드는게 느껴졌다. 그렇게 서로에게 적응해가면서 그럭저럭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10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사람이 먹는 음식에 대한 식탐이 미친듯이 강해지면서 식사 시간에 아무것도 주지 않거나 쫓아버리면 말 그대로 온집안에 아무데나 똥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특히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건 안방 침대였다. 이불위에 흥건하게 싸놓은 오줌은 이불을 타고 침대 커버 아래로 흘러내려가 매트리스까지 흠뻑 적셨다. 처음 당한 날에는 망연자실한 상태에서도 치매나 관련 병이 있는 건가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었지만 두번, 세번 반복되면서 복수인 걸 알았고 이 때는 정말 지금이라도 실수인 척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도 집나가면 고생이라는 걸 알았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바깥 공기 냄새만 맡고 샥 돌아오는데 정말 얄미웠다. 그리고 나는 현관문에 이어 안방문을 닫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노이로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몇 개월 전부터는 몸에 이상이 생기면서 말그대로 똥오줌에 여기저기 토해놓는 일도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식탐이 가시지 않아 아이들이 먹고 있는 음식도 뺏어가고, 평생 관심도 없던 사과 당근까지 훔쳐먹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바닥부터 치우고, 외출해서 돌아올 때마다 집 상태가 어떨까 긴장하고, 매일 한 명씩은 발이 더러워져 욕실로 콩콩 뛰어가던 삶을 살아가며 모두가 지칠대로 지친 와중에 갑자기 작별한 것이다.
그래도 슬펐다. 남편은 내게 정말 고생했다며, 최선을 다했으니 미안해하지말라고, 시골에 버려져서 들개한테 대들다가 잡아먹힐 뻔 한 애한테 이정도 해줬으니 잘 살다 간거라며 나를 위로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잘 못해준 순간만 떠올랐다. 화장 전 마지막으로 경직된 녀석의 몸을 쓰다듬는 순간 죽음이 확 실감되면서 엉엉 울었다. 저녁에서야 사실을 알게 된 첫 째는 나에게 안겨 한참 눈물을 흘렸다. 아이의 눈물이, 녀석의 부재를 같이 슬퍼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이 글을 쓰는 건 슬픔을 떨치지 못해서가 아니다.
얼마나 문제가 많은 강아지였는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피력하고자 함도 아니다.
오늘이 지나기 전에 녀석과 나의 다사다난했던 세월을 되돌아보며 충분히 애도한 뒤 피식 웃으면서 보내주고 싶은 마음 뿐이다.
이 상실감은 똥오줌 치우기와 산책으로부터의 해방에서 오는 편안함으로 채워야겠다는 우스갯소리도 해가면서 말이다.
이 녀석아,
넌 아무래도 천국 가기는 힘들겠지만 어디서든 제발 다른 강아지들이랑 싸우지 말고 아프지도 말고 평화롭게 지내렴.
많이 미안하고 정말 사랑했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