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의 거울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하는 행동, 말투, 습관, 성향 등을 아이가 그대로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거울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1. 물체의 모양이나 형상을 비추어 볼 수 있게 유리 따위로 만든 물건. 예전에는 구리나 돌을 매끄럽게 갈아서 만들었으나 요즘은 보통 유리 뒤쪽에 아말감이라는 화학 성분을 발라 만든다.
2. 어떤 대상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보여 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명사 ‘모범(模範)’이나 ‘본(本)보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위의 말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 세 번째 의미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거울을 1번과 2번 즉, 상대방의 모습을 비추어 나를 돌아보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한다면 부모가 꼭 거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게 된다.
아이가 하는 행동, 말투, 습관, 성향, 사람을 태하는 태도, 문제 해결 방식 등등 아이의 모든 것을 통해서 부모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다.
오늘 아침 등교 준비를 하던 큰 아이가 갑자기 씩씩대며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 내 잠바 줘!
패딩? 외투 걸어놓는데 없어?
없다고! 엄마가 다른데 걸어놨잖아!
무슨 말이야? 나는 정리안했어. 너가 아무데나 놓고 왜 나한테 와서 찾아?
아웅다웅하는 걸 듣던 남편이 아이에게 옷방 의자에 검은 잠바 하나 걸려있던데 확인해봤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러 간 아이는 현관문을 열고 나설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바쁜 아침 시간에 마음이 급해져서 허둥지둥 하다보면 눈 앞에 있는 물건도 안보일 수 있다는 거 이해하지만 저렇게 다짜고짜 와서 따지면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다.
아이는 아빠 말을 듣고 잠바를 찾으러 가고 나는 열받아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핸드폰을 보던 남편이 남편이 나를 불렀다.
이거 봐봐. 첫째 아들은 엄마의 남자버전이래.
뭐?
큰 아들은 엄마랑 똑같이 닮는 경우가 많나봐.
안그래도 정신없고 짜증나 죽겠는데 아침부터 뭐라는거야.
마치 유전자를 한 쪽에 몰아넣은 것처럼 첫째는 나와 둘째는 아빠와 판박이처럼 똑 닮았다는 말은 그 동안 지겹도록 들은터라 처음에는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아, 그래서 지금 쟤가 저러는게 나 닮아서 그렇다는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건 몇 초 뒤였다. 남편이 물건을 찾을 때 몰라, 난 안만졌어 하고 신경도 안썼는데, 알고보니 내가 정리한답시고 구석에 잘 넣어둔 것을 몇 번 걸린 건 사실이다. 최근에는 반대로 내가 어딨냐고 물었는데 그것조차 구석에서 발견한 적도 있다. 남편이 본인 옷과 컴퓨터 주변 물건들을 도무지 정리를 안하고 널부러트려놓은게 보기 싫어서 에코백에 다 쑤셔 넣어둔 것을 물건을 보고서야 기억난 것 이다.
맨날 모른다고만 하지말고 좀 찾아보라는 말에 민망해서 슬쩍 넘어가버렸는데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보다. 굳이 지금 연결시켜서 상기시키다니. 하지만 이거랑은 상황이 좀 다르지 않나? 뭐라고 대꾸하기도 싫어 짜증으로 가득찬 표정 그대로 남편을 빤히 쳐다봤더니 아차, 분위기 파악 잘못했다 싶었는지 갑자기 자기 이게 유투브에 뜨네 우리 말 다 듣나봐 하면서 몸을 돌리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이 집에는 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인간이 없다고, 맨날 아무데나 두고 나한테 와서 난리인데 내가 찾아주고 싶겠냐고 남편 들으라는 듯이 화풀이를 하고 나니 아이가 등교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오겠습니다 하는데 기가 팍 죽었다. 인사도 하기 싫은데 목구멍에서 억지로 소리를 쥐어짜내는게 뻔히 보였다. 화가 났다가도 이렇게 눈도 못마주치고 인사하는 아이를 보면 또 짠하다.
첫 째는 장미꽃같은 아들이다. 활짝 피어서 행복의 향이 뿜어져 나올 때면 온 집안에 기쁨이 가득 찬다.
하지만 장미의 개화 시간은 길지 않다. 항상 모든 일에 가시를 세울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종일 본인이 활짝 피는 것에만 집중해서 그 가시에 남들이 찔리는 걸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절대 스스로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이나 백퍼센트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 못한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착한 아이의 가장 큰 덕목이라 할 수 있는 무던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 원하는게 분명하고 뚜렷해서 그것만 충족시켜주면 되는데 그게 너무 세부적이고 많은데다 대부분 상대방의 일방적인 희생과 노력을 요구한다. 충분한 영양분과 햇빛, 양질의 토양을 제공하려면 이에 방해되는 누군가는 그늘의 시멘트 바닥에서 배고픔에 떨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애를 써서 뭔가를 해줘도 크게 기뻐하거나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이러니 아무리 부모의 사랑이 무한하다고 해도 번번히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소리를 지르게 된다.
아이가 나를 닮은 걸 내가 모르겠냐고. 말투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폭풍이 몰아치던 어린 시절의 나를 상기시키고 가족들에게 무한한 사과를 하게 만드는데. 아이는 그 어느 자기계발서보다 뼈를 때리는 나의 거울이다.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가시를 세울 때면 내가 애랑 말싸움에서 이기는게 목적인가 싶기도 하다. 남편도 아이를 당연히 아이를 이해하지 지만 못하지만 일전에 화가 나서 쟤는 누굴 닮아서 이러는거냐고 했다가 욕먹은 뒤로 한동안 말을 아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니 같은 말을 돌려서 한 것 같은데 사실 맞는 말인데 타이밍이 안좋았을 뿐이다.
아이를 혼내고 나서 한 걸음 멀어져 나의 모습도 함께 들여다보면 나도 참 모질다. 왜 하필 이런 성격이 닮았을까, 왜 나는 내 아이조차도 온전히 수용하지를 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을 요구할까 자책도 하게 된다. 가시만 좀 제거하려다 잘못해서 어느 순간 시들어버릴까봐 걱정이다. 아무리 심하게 혼나도 좋아하는 간식만 내밀면 모든 감정이 초기화되는 아들이라 참 다행이다 안심이 되면서도 도무지 드러내지 않는 저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지 조마조마하다. 서로의 거울이 되는 김에 자신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반성하는 거울치료라도 되면 좋을텐데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니 망했다.
장미를 낳아놓고 개나리로 키우려고 하니 매일이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