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0월은 겨울이었다. 바람은 차가웠고 비는 시렸다. 그 시기에 맞는 옷을 입는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패딩도 어울리지 않았고, 카디건도 맞지 않았다. 곧 눈발이 흩날릴 것 같았다. 건조했다. 밤은 낮보다 길었고, 몸은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건 새벽 1시 즈음이었다. 친정에서 하루 쉬기로 한 아내였다. 양수가 터져서 119를 불렀다고 했다. 출산 예정일보다 2주가 빨랐다. 예정일은 아이가 태어나는 날이라고만 생각했다. 출산 준비물은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후회했다. 서랍을 뒤져 필요한 물품들을 찾기 시작했다. 가재 수건과 기저귀, 옷가지와 속옷, 두툼한 이불까지 닥치는 대로 가방에 넣었다. 택시를 타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기다리는 동안 가방을 들고 있는 손이 뜨끈했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서랍을 열다가 긁힌 것이다. 아픈 느낌은 없었다. 그저 빨리 택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빨리 달려가야만 했다. 초보 아빠는 이렇게 어리숙했다.
노산인 산모가 겪어야 할 일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엽산을 비롯한 영양제는 필수였고, 음식도 철저히 조절해야 했다. 임신 당뇨와 출혈 증상이 있어서 응급실을 들락거렸다. 아이에게 문제가 없는지 수시로 검진받아야 했으며, 통증이 있는지도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와 산모에게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는지 초조했다. 도착한 병원에서 아내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분주히 오고 가며 환자를 확인했다. 다행이었다. 산모와 아기는 모두 이상 없었다.
양수가 터진 이후로 산통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주기는 짧아지고 있었다. 아내는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손톱을 꽉 눌러 고통을 흩뿌려주는 것밖에 없었다. 엄지를 누르고, 검지를 누르고, 새끼손가락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엄지를 누르고 검지를 눌렀다. 손을 꼭 잡아주었다. 통증은 더 심해졌다. 2시간 간격이 10분으로 짧아졌다. 그렇게 밤을 새웠다.
산통주기가 짧아진 만큼 의료진은 늘어만 갔다. 노산인 산모는 용감했다. 본인 몸보다 태어날 아이에게만 집중했다. 온통 땀범벅이었다. 온몸을 쥐어짜 내고 있었다. 양수가 터진 이후로 아내는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노산의 위험성으로 제왕절개와 자연분만을 고민했던 모습이 무색했다. 어디서 그런 모성애가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손을 더 잡아주는 일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통은 심해졌다. 드디어 분만실로 이동했다. 어디서 왔는지 의료진이 열 명은 넘어 보였다. 만약을 위해서라고만 했다. 사람들 움직임이 더욱 분주했다. 아내가 잡은 두 손에 힘이 느껴졌다. 모니터 심박소리가 크게 들렸다. 의사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힘을 주라고 격려했다. 영화에서처럼 ’조금 더~ 조금 더 힘내세요‘라는 말이 분만실을 가득 채웠다. 1분이 1년 같은 시간이었다. 산모가 내지르는 고통 소리가 절정에 다다를 때 즈음이었다. 갑자기 적막해졌다. 산모가 외치는 소리도 멈췄다. 모니터 심박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소리. ’으앙, 으아앙.‘
어느 순간 손에 수술용 가위가 들려져 있었다. 알려주는 대로 탯줄을 싹둑 잘랐다. 자그마한 아이가 온몸으로 울고 있었다. 눈은 감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젖어 있었다. 머리는 눌린 채 볼록했고, 손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 하얗고 빨간 막이 몸을 휘감고 있었다. 간호사들이 열심히 닦아줬다. 핏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여전히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고 울음소리는 더 요란했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합니다. 축하합니다."
모두 손뼉을 쳤다. 산모는 땀범벅 얼굴이었지만, 속 시원한 표정이었다. 아이를 자기 옆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아이를 안고 환하게 쳐다보는 모습을 보니 뭉클했다.
닐스 베그만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만큼 극렬한 고통의 순간도 없고, 사랑으로 가득한 순간도 없다. 엄마가 새로 태어난, 세상에 막 나온 아기를 바라보는 것만큼 순수한 사랑도 없다"고 했다. 천사 같은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순수한 사랑이 보였다. 아빠도 안아보겠냐는 말에 그러겠다고 했다. 솜털처럼 가벼웠다. 혹시 떨어지지 않을까 온몸에 털이 곤두섰다. 포근했다. 따스했다. 젖비린내도 향기로웠다. 2018년 10월 27일 18시 42분. 병원에 온 지 18시간 만이었다.
아이는 어린이병동 신생아실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여러 가지 검사도 받고 예방주사도 맞았다. 초보 엄마와 아빠는 정해진 시간만 짧게 만날 수 있었다. 유리 창문 너머 아가는 잠만 자고 있었다.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 코에다 손을 대보고 싶었다. 잘 지낸다고 간호사가 몸짓으로 알려주었다. 아내는 몸이 가벼워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둘에서 하나로 줄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수술하지 않아 이틀 후 퇴원 절차를 밟았다. 산후조리원을 급하게 예약했다. 필요한 물품은 근처에서 사기로 했다. 날은 더 추워지고 있었다. 아들을 집에 데려간다니 실감이 나질 않았다.
우리 부부는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마흔을 넘겨 아이를 갖는 것은 모든 게 두렵다. 아이와 산모 건강이 그렇고, 잘 키울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아이가 클 때까지 경제적 여유가 있을지도 고민스럽다.
임신 당뇨와 출혈은 우리를 늘 괴롭혔다. 조금이라도 탈이 나면 바로 응급실로 향해야 했다. 틈만 나면 위급 상황을 상상하고 대처하는 방법도 연습했다. 위급한 상황에선 119를 불러야 한다는 것과 바로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점을 수시로 상기했다. 이런 연습 덕분에 아이와 산모 모두 건강할 수 있었다. 출산 전 가졌던 두려움은 이제 사라졌다. 미래에 어떤 상황이 닥칠지는 모르겠으나 부부가 대화하고 준비하면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대처 가능한 삶은 두렵지 않다.
산후조리원은 모든 것이 편했다. 바깥 날씨와 다르게 방안은 따뜻했다. 밥도, 잠도 모두 편했다. 창가는 햇볕으로 눈부셨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아내는 곤히 잠이 들었다. 갑자기 아이가 운다. 달려 나갔다. 13명 아이 중 우리 '복덩이'가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고 나왔냐고 원장님이 신기해했다. 그냥 우리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을 뿐이었다. 내 아이 같았다. 조심스레 아이를 안고 엄마 젖을 물렸다. 울음은 그쳤고 엄마와 아이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햇볕은 여전히 따스했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우리 육아는 그렇게 시작됐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홈페이지 :
https://www.betterfuture.go.kr/front/notificationSpace/webToonDetail.do?articleId=116&listLen=0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블로그 :
https://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futurehope2017&categoryNo=60&from=post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