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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nded Feb 22. 2022

맥베스의 비극 스포 후기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걸작들 중에서도 찬란한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리어왕과 더불어 가장 좋아한다. 이런 사람은 나만이 아니여서 오슨 웰즈, 구로사와 아키라 등이 영화화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저스틴 커젤 버전이 성공하기도 했었다.

이번에는 코엔이라는 대가가 연출했고 댄젤 워싱턴과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출연했다. 그리고 그 이름에 어울리는 특별한 걸작이 나왔다.

 

코엔은 왜 맥베스를 선택했을까. 언뜻 보기에 맥베스는 코엔 의 선택을 받기에는 지나치게 위엄있고 진지하다. 물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인물들은 진지했지만 그들에게서 맥베스가 가지는 운명적인 카리스마를 찾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결국 맥베스도 그 전까지 코엔이 추구한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부조리하고 불가해한 삶과 무력한 인간이다.데뷔한 후로 코엔 형제는 끊임없이 이 주제에 집중해왔다.

결국 맥베스도 코엔의 영화 속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맥베스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허무에 관한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허무는 결국 모순에서 온다.

먼저 마녀들의 대사를 보면 이는 상당히 괴이하다.


'전투에서 패하고 승리했을 때'

선한 것이 악한 것, 악한 것이 선한 것"


첫대사는 아마도 승리자와 패배자가 나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둘이 구별될 수 없다는 뜻일 가능성도 존재한다.그렇게 본다면 '선한 것이 악한 것, 악한 것이 선한 것' 이 구절도 심상치 않다. 이 역시 상반되는 요소들이 동일하다는 이상한 역설을 드러낸다.

 이런 대사들이 표현하는 것은 모호함과 역설이다.마녀는 신비로운 존재이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알 수 없다.

그들이 말하지 않았어도 맥베스는 왕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 말을 듣고 행동했기에 왕이 되었을까?


이런 모호함은 맥베스의 여정을 이끌며 넓게 보면 삶에 대한 인식이다.

 결국 맥베스는 마지막에 그 모호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허무를 느낀다. 선한 것이 악한 것이고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의 모호함에 허무를 알게 되었다.

맥베스 부인을 잃고 나서 맥베스가 하는 독백이다.


내일, 그리고 내일, 그리고 내일도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까지

하루하루 더딘 걸음으로 기어가는 거지.

우리의 어제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보여주지

우리 모두가 죽어 먼지로 돌아감을.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고 종종거리며 돌아다니지만

얼마 안 가 잊히고 마는 불행한 배우일 뿐.

인생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와 같아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엔 아무 의미도 없도다.


(이 독백은 워낙에 유명하고 윌리엄 포크너가 그의 걸작 음향과 분노의 제목을 따오기도 했다.)


맥베스는 상술한대로 애매함과 무의미, 역설로 가득차 있다.

전반부에서 악랄하던 레이디 맥베스는 후반부에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린다.

 반면 전반부에서 고뇌하던 맥베스는 더 잔인해지고 과격하게변한다.

이런 아이러니한 변화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여자가 낳은 자 라는 예언을 뒤트는 방식 역시 의미심장하다.

결국 끝에서 맥더프와 대면한 맥베스도 그걸 깨닫는다.

이중의 의미로 속인다 라고 마녀들을 저주한다.

맥베스의 인물들과 대사들, 여정은 모두 모호함에 둘러싸여있다. 그 모호함은 인간과 삶의 핵심이다.


그리고 조엘 코엔은 화면에서 그 이중의 모호함과 무의미를 정확히 담아냈다. 흑과 백, 빛과 그림자, 하늘과 땅, 연극과 영화까지 맥베스의 비극은 알 수 없는 경계에 존재한다. 예언이 그랬듯이 둘 모두이면서 그렇기에 그 둘 중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

 오프닝은 어둠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하얀 화면으로 전환된다. 마녀의 예언이 깔리는 검은 화면과 뒤이어 따라오는 하얀 화면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모티브 중 하나인 두 세계의 대립 혹은 합일을 다룬다. 안개 속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이미지는 처음에는 하늘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후에 영화는 부감으로 전환되어 땅을 찍는다. 즉 하늘과 땅은 구별되지 않는다.

 이 구별불가능, 무지를 강화시키는 소재는 안개이다. 초반부터 화면을 장악하는 안개는 그 자체로 주제인 미장센이다.

동시에 안개는 어둠과 달리 본인이 보이면서 남들이 보이지 않게 만든다. 존재를 통해 부재하게 만든다는 점서 안개는 묘하다.

 마지막 일전 궁궐과 숲이 합치되어서 기둥과 나무가 겹치는 연출 역시 이런 구별할 수 없음과 연결된다.


영화는 아카데믹한 비율인 1.37:1을 절묘하게 사용했다. 앞에서 말한 기둥과 숲의 수직적인 모습을 훌륭히 담아냈다. 특히 이런 수직감은 높이 올라가고자하는 권력의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위험하고 아찔하기도 하다. 예컨데 수직으로 깍인 절벽 위의 레이디 맥베스는 가장 위에 있지만 위태롭고 아슬아슬해보인다.

이 비율은 필연적으로 인물을 강조하는데 화면을 지배하는 두 대배우의 클로즈업 역시 경탄스럽다.

동시에  비율은 시야를 제한시키는데  예언과 운명을 일부분만을 보고 아는 맥베스의 상태를  표현한다. 상대적으로 이 비율은 운동감을 살린다기보다는  정적이고 구도와 프레이밍 역시 그렇다. 이는 운명의 힘을 표현하는 연출이다.

 저스틴 커젤의 맥베스가 생생하고 과잉된 색깔과 미술이 가득찬 씨네마스코프 비율서 작아지는 것과 반대이다. 저스틴 커젤의 영화서는 환경이 중요했다.

하지만 코엔에게는 인물의 얼굴과 공간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런 면서 파고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다르지만)  영화서 시공간은 모호한 것에 가깝고 그렇기에 보편적이다.

 

맥베스의 비극은 매우 영화적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것이 허구이고 영화임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영화 속 세트들은 단순하면서도 비현실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다. 흑백화면 역시 인공성을 알리며 관객들이 인물과 영화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다. 경계와 모순을 다루는 작품답게 현실과 영화, 연극의 경계를 교란시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늘 엄살과 지나친 감상없이 거리를 지킨 코엔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들)의 카메라는 인물들을 우습게 만들면서도 연민을 가지게 만들었다. 혹은 무력한 흔적들을 응시하거나.


맥베스가 던컨을 살해할 때 걷는 복도의 동선은 흥미롭다. 그 긴 독백 동안 맥베스는 수평으로 나아간다. 그는 상승하지 않는 것이다. 거사를 치룬 후 손을 씻는 맥베스를 찍은 부감은 그의 타락을 보여준다.이 때의 피와 바다가 섞일 것이라는 대사는 경이로운데 이 역시 구별할 수 없다는 핵심을 강화한다.

물이 다시 피로 이어지는 편집 역시 그렇다. 이 피와 물을 강조하는 연출은 마녀로부터 듣는 두 번째 예언과 연결되는데 그 순간 방은 물로 가득차있다. 이는 맥베스가 흐르게 만든 피이고 죄악이다.


코엔의 맥베스는 셰익스피어만이 아니라 다른 대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표현주의적 개성을 물씬 드러내는 화면은 무르나우와 프리츠 랑, 찰스 로튼을 연상시킨다. 빛과 그림자로 가득찬 화면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주제(선과 악, 경계와 모순)과 결합할 때 황홀하다. 화면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맥베스의 심리의 표현이면서 세계의 진실을 담았다는 점서 정확하다.

 이 영화서 가장 아름다운 숏이 그러한데 본인의 성으로 귀환하기 전 맥베스는 고뇌한다. 이 숏은 천막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를 비추며 끝난다. 그림자는 흔적이다. 그저 빛과 물체에 따라 결정되는 흔적. 어쩌면 이는 운명과 불가해한 삶에 지배당하는 무력한 인간과 유사하다. 그 때의 대사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다.

 

영화의 결말부에 이르러 그 위대한 독백이 나오는 장면서 레이디 맥베스는 초라하게 낮은 곳에 죽어있다. 쓸쓸하고 무서운 부감이다. 그리고 독백을 읊는 맥베스는 내려가고있다.

왕관을 잡으려다가 참수당하는 맥베스, 피칠갑된 채 허공을 떠도는 왕관의 이미지는 강렬하기 이를 데가 없다.

엔딩은 경이롭고 우아하다. 화면은 검은 새로 가득차있다. 새는 마녀들의 상징이고 마녀들은 모호함과 무의미,허무로.이루어진 수수께끼다. 세상과 삶은 그것들이 지배하고 있다. 아니 그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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