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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nded Mar 04. 2024

듄을 보고

드니 빌뇌브의 듄은 많은 기대를 모은 작품이였다. 드니 빌뇌브의 커리어는 그을린 사랑으로 개화했고 시카리오를 기점으로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듄은, 그의 모든 역량과권력이 집약된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 던져야할 질문은 이것이다.

왜 듄인가? 호도르프스키의 전설적인 프로젝트와 위대한 대가 데이비드 린치의 유일한 실패작. 스타워즈를 비롯한 후대의 작품들에게 영감을 미친 작품. 드니 빌뇌브는 이 작품이 본인에게 각인된 소설이라고 했고 사실상 그의 라이프워크이다.무엇이 그를 이토록 오래 매료시켰을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원작을 읽어본 후 찾아낸 지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그의 전작들이 이질적인 존재들의 만남 혹은 대립을 다루고 있다는 것.

두번째는 주인공들이 운명에 무력하거나 순응하는 서사를 자주 택했다는 것.

세번째로 드니 빌뇌브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실재감을 전달하는데 뛰어난 기량과 관심을 발휘해왔다.

여러 부분서 기대되었던 만남이고 빌뇌브에게는 운명이라는 말까지 붙일 수 있는 조합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듄 1편은 매우 아쉬웠던 작품이였다.

물론 영화가 엉망이라든가 혹은 연출적으로 실패했다 라는 의견은 아니다.

연출은 아름다우며 장엄하다. 한 장면마다 오랜 팬으로서 영화화를 꿈꾼 장인의 정성이 가득 배어있다. 마치 정성껏 로스팅한 원두같은 풍미를 자랑하며 아마 원작팬들은 본인들이 상상에 그렸던 이미지들보다 생생하고 강렬해서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드니 빌뇌브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면 느린 호흡과 비어있는 화면일 것이다.

더 빠르고 큰(too fast! too strong!) 연출을 지향하는 할리우드서 그는 독특한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드니 빌뇌브는 화면을 구성할 때 채운다기보다는 비우는 편을 선호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극대화된 미니멀리즘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스크린에 정보와 감정을 압축시켜서 담기보다는 여백이 있는 이미지를 창조하는 감독이다. 이를 통해 드니 빌뇌브가 구현하고자하는 목표는 분위기이다. 드니가 집중하는 요소는 정보나 감정이 아니다.

 드니 빌뇌브는 세계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세계의 일부를 보여줄 뿐이다. 시카리오에서부터 듄까지 드니 빌뇌브는 분위기와 뉘앙스를 우선순위로 삼았다. 그의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의 분위기와 리듬에 녹아들거나 지루해지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의 편집리듬이 긴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 길게 보여줄 때 분위기는 유지된다.그리고 이런 특성들을 구현하는 인상깊은 숏들은  대체적으로 롱숏이다. 이 롱숏은 영화의 세계를 구현하고 설득한다.

더 중요하게 드니 빌뇌브의 롱숏은 환경과 인물을 같이 담아낸다. 롱숏에 존재하는 거대한 세계와 작은 인간의 이미지는 운명 앞에 무력한 존재라는 테마를 효율적으로 드러낸다.


 드니 빌뇌브는 의외로 세계를 만들 때 세세한 설정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세계를 정보로 이해시킨다기보다는 분위기로 전달시키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그는 전체 세계를 보여주기 보다는 일부분만 체감하게 만든다. (cg가 아닌 실제 세트와 소품에 힘을 기울이는 이유도 이런 실체감에 있지 않을까)

영화 듄 역시 분위기와 무드는 대단하다. 촉감과 질감이 화면에서 느껴질 정도이며 사막 장면은 목이 마르다. 원작에 대한 악명과 달리 이 작품의 이야기는 이해하기 용이하며 의외로 별 내용이 없다. 그럼에도 영화러닝타임이 살인적인 이유는 이 작품의 목적이 아라키스의 분위기표현에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세계에 몰입하고 녹아드는 시간의 필요성을 드니 빌뇌브는 간과하지 않는다.

영화는 하나의 세계에 대한 실재감과 분위기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이야기는 작고 생략되어있는 편이다.


거기서 이 작품의 결함들이 발생한다. 영화 속 이야기는 미진하고 완결성이 매우 부족하다. 오페라로 치면 서곡과 같다. 그러니까 재밌어질 것 같기만 하다가 2시간 43분이 지나간다. 재밌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움직이는 현대미술전시관에 온 것과 같은 화면에 취하면 더없이 만족스러운 영화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수없이 재생된 이야기와 주제를 반복한 작품에 불과하다. 그 과정서 아트레이드 가문이 무너지는 이유는 매우 어처구니없이 설명된다.

 무엇보다 듄의 결정적인 단점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인물과 세계가 공명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세계와 인간이 상호작용하고 주제와 감정이 만나는 장면이 부재한 영화다. 그렇기에 인물들은 관객과의 접착력이 부족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붕붕 떠다니는 듯 느껴진다.

내가 이 작품에 미지근한 평을 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극단적으로 이 영화에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세계와 분위기밖에 없다. 인물과 감정,주제는 희미하다. 누군가에게는 그 분위기 하나만으로 일생의 체험이 될 수도 있지만 또다른 이들에게 따분하기 이를 데가 없는 관람이였으리라.

지속적으로 등장하지만 관습적인 연출로 아쉬운 꿈장면, 허술한 격투액션은 역시 (사소하지만) 흠이다.


사족1.거대한 사막과 갈등에 빠진 이질적인 집단들, 그리고 구원자(?)까지 이 영화는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닮아있다. 아쉽게도(그리고 당연하게)이 작품의 이미지와 롱숏과클로즈업은 린의 비전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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