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써 주신 유일한 편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얘기인데 장민호의 노래 '내 이름 아시죠' 때문에 또 한번 몸살을 앓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눈물만 흐르고, 가슴 한가운데서 울음샘이 터져 나오는 그런 때 말입니다.
저에게 그 순간은,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어머니는 스물두 살에 시집와서 마흔둘까지 아홉 남매를 낳아 길으셨습니다.
두세 살 터울로 아이를 낳고 또 낳는, 쉼 없는 출산의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젖을 떼기도 전에 다시 들어 선 아이를 품은 채, 낮에는 논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이들을 돌보셨습니다.
60년대 농촌의 여성은 ‘가정을 짊어진 일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밥을 짓고, 물을 길어오고, 빨래를 하고, 방아를 찧고, 바느질하고, 물레를 돌리고, 다듬이질을 하고, 김을 매고, 다시 밥을 짓고…
봄이면 봄, 겨울이면 겨울대로 할일들이 산적해 있으니 어느 계절도, 밤시간도 당신의 손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삶이었으니 몸이 온전할 리 없었겠지요.
60대 초반,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지셨고,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병상에서 보내셨습니다.
그 오랜 세월, 저는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간병 한 번 하지 못했던 것이, 갚지 못한 빚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 30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라 부르면 고향처럼 그립고, 더 짙은 슬픔으로 목이 멥니다.
며칠 전엔,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은 여동생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또 한 번 그런 순간을 맞았습니다.
가족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레 어머니를 소환했고, 그 기억 속으로 돌아가는 순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주위의 시선조차 의식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흘렀습니다.
얘기는 초등학교 6학년 어느 여름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졸업여행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여행비를 내지 못해 저는 어머니와 함께 논에 나가 김을 매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탄 버스가 동네 어귀를 돌아 나갈 때, 저는 부러운 눈빛으로 한참 동안 버스 꽁무니를 좇아갔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학여행은 못 보내지만, 중학교는 꼭 보내주마.”
그 말씀이 감격스러워 저도 어머니께 '성공해서 꼭 행복하게 해 드리겠다' 약속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시절, 시골에서 중학교 진학은 큰 희망이자 축복이었습니다.
우리 집 형편으로서는 언감생심이었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 약속을 지켜주셨습니다.
공납금을 마련하기 위해 항상 아등바등하셨고, 때로는 이웃에 도움을 청해야 했지만, 내가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더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께 드린 약속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습니다.
저로 인해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동생에게는 미안하고, 변변치 못한 내 인생이 부끄럽고, 무엇보다 어머니께 효도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죄스러워 오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은 장민호의 노래 「내 이름 아시죠」를 듣다가 어머니를 또 한번 추억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저는 시내에서 자취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주말이면 쌀과 반찬을 가지고 오셔서, 저녁을 해주시고, 다음 날 제가 학교에 가고 나면 빨래를 해 놓고 돌아가시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다녀 가신 어느 날, 책상 위에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문맹인 줄 알고 있었기에, 무언가 적어 뒀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펼쳐보니 연필로 꾹꾹 눌러쓴, 단 12자의 글이었습니다.
“00아, 공부 열심히 하거래이.”
한글을 성경 공부를 통해 깨우치셨다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춘 듯했습니다.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글.
그 글자 하나하나가 가슴을 치며 울렸습니다.
그리고 그 글은 오늘까지 읽는 가장 긴 글이 되었습니다.
노래 속 가사, ‘한 글자 한 글자 지어주신 이름’이라는 구절이 흘러나오자, 어머니가 적어주신 제 이름 글자가 떠올라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가끔 꿈에라도 어머니가 오셨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그런 마음입니다.
“어무이, 오늘 밤엔 꼭 와 주세요.”
어머니의 삶을 돌아볼 때마다 정철의 시조가 떠오릅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란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닳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부모에 대한 미안함 하나쯤은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표현한다면, 조금은 덜 후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지 못한 저는 정말 정말 후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