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던 것을 ‘보는’ 태도에 대하여
점심시간에 아이들로 복닥거리던 도서관이
오후 수업이 시작되자 썰물 빠지듯 텅 빕니다.
이제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입니다.
서가 사이를 돌며 흐트러진 책을 정리합니다.
발바닥에 마루의 감촉이 매끄럽고 시원하게 닿습니다.
창밖엔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마르티니의 ‘사랑의 기쁨’이 잔잔히 흐릅니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이
영원히 남아 있다.” 노랫말이 떠오르지만,
내 마음은 슬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요하고 여유로운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스스로도 조금 의아하여 괜히 웃습니다.
행복은 흔히 큰 성공이나 재물,
특별한 인연에서 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파트 평수가 늘어나면 마음은 그보다 더 넓어지고,
새 차를 몰 때면 어깨가 으쓱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언제나, 모두에게 주어지진 않습니다.
그런 조건에서만 행복을 찾는다면
인생은 무채색의 그림처럼 단조로워질 것입니다.
행복은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라 느낌입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마음의 각도에 따라
행, 불행으로 갈라질 수 있습니다.
넘어져 상처가 났지만 “이 정도면 다행(多幸)이지”라며
웃는 순간, 그 안에도 이미 작은 행복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일은
결코 특별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감각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의 훈련이 필요할 뿐이지요.
행복의 촉수를 예민하게 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처음처럼 보고, 마지막처럼 느끼는 것’. 그걸로 충분합니다.
아침 햇살이 창가로 스며들 때, 그 빛줄기 속엔
계절의 색이 녹아 있습니다.
봄의 연초록, 여름의 붉음, 가을의 금빛, 겨울의 희디흰 색까지.
우리는 매일 그 빛을 보지만, 늘 느끼며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 빛이 새삼 눈부시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긴 장마 끝에 갠 날 아침 햇살을 보는 듯한 순간—
그때 우리는 조용히 감탄하고,
그 감탄 속에서 행복이 피어납니다.
행복은 ‘보이던 것을 새롭게 보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텃밭에 가거나 출근길에 늘 지나치는 샘밭성당.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주하지만,
어느 날 문득 성모상이 유난히 희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 순간 걸음을 멈추고 바라봅니다.
성모님의 품에 안긴 듯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늘 눈에 보이던 성모님을, 그날은 비로소 마음으로 본 것입니다.
또 하나, 행복은 ‘마지막처럼 여기는 마음’에서 더욱 깊어집니다.
손자·손녀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
이 웃음이 혹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순간 우리는 더 집중해서 듣고, 더 따뜻하게 웃게 됩니다.
그 교감 속에서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고, 진한 행복감이 스며듭니다.
여름날 소나기 뒤 앞산 너머로 무지개가 걸립니다.
“이게 내 생의 마지막 무지개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눈앞의 색은 더욱 선명해지고,
무지개가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뗄 수 없습니다.
그 감탄이 곧 행복입니다.
행복은 결국 한 잔의 따뜻한 커피, 길가의 들꽃,
우연히 마주친 이웃의 미소 속에 숨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시선입니다.
익숙한 것들 속에서 새로움을 찾고,
당연한 일상을 더없이 소중하게 여길 때,
행복은 비로소 환한 얼굴을 내밀어 줍니다.
지금, ‘사랑의 기쁨’ 피아노 선율이 다시 이어집니다.
창밖의 빗소리와 어울려 더욱 낭만적으로 들립니다.
이 조용하고 여유로운 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