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과 정의 사이

-친구의 돌팔매와 내 꼬집기

by 봄솔

어린 시절 짝꿍 중에는 사이가 좋아 단짝이 된 아이도 있었고, 사소한 경쟁심에 늘 다투던 앙숙도 있었지요.
내 머리에 흉한 상처를 남긴 아이는, 싸움으로 맺어진 앙숙이었답니다.


우리 동네에는 또래 남자아이들이 열 명 남짓 있었어요.
그중 내가 키도 크고 힘도 세서 반장이나 부반장을 도맡았지요.
자연스레 아이들이 를 따랐고, 나도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독 나에게 자주 시비를 거는 아이가 한 명 있었어요.
걔는 덩치도 작고 힘도 약했지만, 형을 믿는 구석이 있었지요.


그 시절 싸움은 나름 신사적이었답니다.
씨름하듯 서로를 붙잡아 밀치고 넘어뜨리면, 이긴 쪽이 상대의 배 위에 올라타 귀를 잡고 머리를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며 “졌냐, 이겼냐?” 묻곤 했어요.
상대가 “졌다!”라고 항복하면 바로 압박을 풀고 일으켜 주는 걸로 싸움은 끝났지요. 그러곤 언제 싸웠냐는 듯 함께 어울렸답니다.
주먹을 휘두르거나 발로 차는 일은 거의 없는 싸움이니 상처 날 일은 거의 없었지요.

아이와는, 우리 또래끼리만 있을 때 싸우면 내가 늘 이겼어요.
하지만 한두 살 나이 많은 형들이 함께 있을 땐 반대로 내가 지고 말았지요.
나중에야 안 일인데, 내가 그 아이 배 위에 올라타고 항복을 받아낼 쯤이면, 그 형이 제 동생 다리를 번쩍 들어 내가 앞으로 고꾸라지게 했던 겁니다. 내 등 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속수무책이었지요.

그런 사실을 그 친구랑 또 다른 친구가 싸울 때 그 형이 하는 짓을 보고야 알았답니다.
나도 형들이 있었지만, 나이 차가 많아서 우리 또래와 어울리지 않으니 억울했지만 나는 ‘형 찬스’를 쓸 수가 없었지요.


그날도 놀다가 그 아이와 싸움이 붙었어요.
전날 걔네 형의 훼방으로 내가 졌던 게 분해서 사실 내가 먼저 시비를 걸었지요.
그리고 결국 내가 이겼답니다. “졌냐, 이겼냐?” 묻자 그 애가 “졌다”라고 했고요.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는데, 어라? 일어나자마자 다시 달려드는 게 아니겠어요?
다시 쓰러뜨려 눕히고 이번엔 확실한 항복을 받고야 말겠다 마음먹고 손톱까지 세워 귀를 아주 거칠게 잡고 땅바닥에 여러 차례 머리를 박았어요.
그 애 얼굴이 파랗게 질린 걸 보고서야 아주 천천히 “졌-냐?” "이겼냐?" 물었어요.
그 애는 울먹이며 “졌다”라고 했지요.


이제 평화가 찾아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녀석이 씩씩대며 일어나 집으로 향하더니 갑자기 돌아서서 뭐라 욕을 퍼부으며 주먹만 한 돌멩이를 내게 던지지 않겠어요.
순간이라 피할 겨를이 없었지요.
‘딱!’ 소리와 함께 돌멩이가 내 이마를 강타했어요.
눈앞이 번쩍하고 피가 쏟아졌지요.


우리 집 가정의인 엄마의 치료는 간단했어요.
상처에 된장을 바르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게 전부였지요.
며칠 동안 그 냄새 때문에 친구들에게 엄청 놀림을 받았지요.
상처가 컸는데도 꿰매지 않아서 찢어진 피부가 말려 들어갔고, 새살이 그 위를 덮어 반질반질한 흉터가 지금도 남아 있답니다.
머리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 천만다행이지요.


그날 이후 우리는 다시 싸우지 않았답니다.
그 아이는 또래들 사이에 비겁자로 따돌림당했고, 나는 그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지요.

실은 내가 주동하여 따돌린 셈이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진로가 달라 자연스럽게 멀어졌어요.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났어요.
이상하게 다른 누구보다 반가웠어요. 그도 그런 눈치였고요.
어릴 적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다 보니, 결국 그날의 돌멩이 사건도 얘기하게 되었지요.
내가 이마의 흉터를 보여주며 “이거 그날 네가 던진 돌멩이가 만든 거야”라고 했더니,
그도 피식 웃으며 자기 귀 뒤를 보여줬어요. 거기엔 제 손톱자국이 아주 깊게 쪼르르 나 있었지요.

그날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어. 그래서 비겁한 놈이라 욕하며 돌을 던진 거야.”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먼저 비겁한 짓을 했구나 싶어 술이 확 깨고 말았답니다.












작가의 이전글설악산 울산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