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안경을 닦다가 문득 예전에 버스에서 안경이 깨졌던 일이 떠올랐다.
잠실역에서 양재역까지 전철을 타고, 다시 포이 4거리에 있는 삼호물산 앞까지 버스로 출근하던 시절이었다.
출근길은 일반 회사 시간과 달라 비교적 한산했지만, 퇴근 시간이 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삼호물산 주변 회사들의 퇴근 시간과 겹쳐 버스 정류장은 늘 북새통이었다. 버스가 도착하면 사람들은 앞사람의 등을 밀며 한 발이라도 먼저 출입문에 오르려 했다. 저절로 버스 안으로 밀려들 때가 많았다. 누구 하나 이를 탓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모두가 버스를 타야 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사람을 밀고 한 발 올라섰는데 순간 앞사람이 되밀려왔다. 그의 등에 내 얼굴이 정면으로 부딪히며 안경이 벗겨져 출입문 발판에 떨어졌다. 몸을 숙일 틈은 없었고, 뒤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밀고 올라오는 바람에 나는 안으로 떠밀려 들어가야 했고, 안경은 여러 발에 밟혀 산산조각났다. 그 와중에 누구를 원망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흐름’에 휩쓸린 결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날의 장면을 떠올리자, 비슷한 상황들이 생각난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고, 밀고 밀리며, 결국 누군가의 안경이 깨지는 장면. 아파트 시장과 주식 시장도 어쩌면 이와 다르지 않다.
아파트 시장이 수급 불균형으로 가격이 치솟자,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에 젊은 세대들이 ‘영끌’에 나선다. 빚을 끌어모아 사지만 금리 인상이나 경기 침체가 찾아오면 감당이 어려워지고, 깡통전세나 경매 증가 같은 형태로 ‘깨진 안경’의 흔적이 나타난다. 누구 하나 고의로 민 사람은 없지만, 전체 흐름이 너무 빠르고 과열되면 결국 누군가는 발 아래서 비용을 치르게 된다.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다. 활황장에는 너나없이 뛰어들며 ‘빚투’를 서슴지 않다가, 급락장이 오면 반대매매에 몰리고 결국 빚만 남는다. 모두가 밀고 들어갈 때 앞사람의 등을 잡고 올라서려 하지만, 방향이 바뀌는 순간 안경은 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버스에서 안경이 깨지고 난 다음날 나는 결심했다. 버스를 타지 않기로.
대신 회사에서 양재역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양재천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길은 생각보다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또 눈 오는 대로 그 풍경을 즐기며 걷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가시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퇴근 시간이 10여 분 늦어졌을 뿐인데, 안전과 자유, 여유와 즐거움, 그리고 건강까지 덤으로 얻었다.
영끌과 빚투에서 벗어나는 길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시장이라는 버스에 무리하게 몸을 싣고 밀고 밀리며 올라타기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걷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저축해 목돈을 만들고, 반대매매 걱정 없이 자기 자본으로 투자하고, 충분한 자금이 마련된 후에 필요한 만큼만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다면 안경은 늘 제자리에 온전히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저축이 늘어가는 소소한 기쁨, 안전한 투자로 얻는 작은 성취감,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걸어가며 느끼는 여유가 삶의 진정한 즐거움 아닐까.
빠르게 움직이는 무리 속에서 앞사람을 밀다 보면 결국 가장 먼저 깨지는 건 내 안경임을, 나는 그날의 버스에서 배웠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늦더라도, 나에게 맞는 속도로 걸어가는 길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