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오(守吾)

-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by 봄솔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처음엔 아주 작은 유혹일 뿐입니다. 아무도 모를 것 같고, 티도 나지 않죠. 하지만 그 작은 유혹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를 잃기 시작합니다.


어제 버스를 탔는데

이런! 카드가 읽히질 않지 뭡니까?

현금 한 푼 들고 다니지 않는 요즘 카드밖에 믿을 게 없는데 말입니다.

몹시 당황하고 있는데 기사님이 버스회사 계좌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주면서

'집에 가서 입금하면 된다.' 해서

'휴~'안도했지요.


그 메모지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 외출 준비하면서 주머니에서 발견하고

이제야 입금했답니다.

그런데 버스비 1700원을 입금하면서 '넣어? 말아?" 하는 묘한 갈등이 일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 리도 없을 테고 같은 버스를 또 탄다 해도 기사님이 기억할 것 같지도 않고

혹, 기억하고 입금하지 않은 걸 추궁하면, 깜박했다 하고 그때 넣어도 늦지 않다는

아주 적절한 핑계까지 준비하면서 말입니다.


또 오늘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마트 자율 계산대에서 구입한 물건을 빠짐없이 바코드 찍고 결제 후

경고 버저문도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입구에 있는 자율포장대까지 왔을 땝니다.

뒤따라오며 계산서를 확인하던 집사람이 바나나 하나가 계산되지 않았다 말합니다.

같은 걸 두 개 샀는데 하나만 체크된 겁니다.


또 갈등합니다.

빠뜨릴 의도도 없었고 바코드 다 찍었는데

계산 안된 것이니 '이건 행운이야!' '아니, 도둑질이야' 마음속에서 서로 아옹다옹합니다. 하하하


5000원짜리 로또 한 장 사면서 수 억 원이 걸린 1등 행운을 바라는 통 큰 마음보를 가지고서

손에 쥔 고작 4990원에 지나지 않은 바나나 하나 행운에 갈등하고 있는 마음은 누구의 것일까?

바나나가 몇 억짜리였다면 어땠을까?


다산 정약용이 그의 큰형 정약현이 정자를 짓고 그 편액 이름을 수오재라 한 것을 두고 쓴 글

수오재기가 있지요.

둘째 형 정약전과 자신은 과거에 붙어 우쭐대며 벼슬의 유혹에 자신을 잃고 현혹되어 살다가

지금 둘 다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데 반해, 큰형은 자신을 잃지 않아 고향에 머물러 살고 있을 수 있었다는 깨달음을 쓴 글이지요.

'守吾' 곧 '나를 지킨다.'는 것인데 정약용은 처음엔 '나란 내 몸과 한 몸이니 지키고 말고 할

대상이 될 수 없다.'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잃을 수 없는 것이기에 지킬 필요가 없고 지킬 대상은 오로지

내 마음뿐이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정말이지 한평생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는 오직 나와의 관계뿐이잖아요?

나를 잃고서는 내 삶이 아니라 남보이기 위한 삶, 들러리 서는 삶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란. 내 마음이란 정말 잃기 쉬운 것인 것 같아요.

마음의 변덕을 일러 조변석개라고도 하고,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느니

변덕이 죽 끓듯 한다고도 하잖아요?

이렇듯 마음이란 종잡을 수 없는 것이지요.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이런 멍청한 고백의 글을 써? 말아?'라는 생각이 번갈아 파동치고 있습니다. 하하

마음은 잡고 있지 않으면 달려갈 곳이 참으로 많잖아요?

돈에, 권력에, 명예에, 이성에, 또 쾌락에~~

매력적인 이런 곳에 마음은 늘 달려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탕왕은 가까이 두고 쓰는 쟁반에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구일신 일일신 우일신: 진실로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이라 새겨 두고 수신했다 한다지요.

나도 컴퓨터 앞에라도 '마음을 잡자', '나를 잃지 말자'라고 써 둬야 할 것 같습니다.


1700원 버스비, 4990원짜리 바나나 하나에 도망가는 마음이 수 억 원 앞에서는 동아줄로

매어둬도 안심하기 어려울 듯하니 말입니다.

그뿐이겠어요?

공명심이나 권력욕구가 일 때는 또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이 마음은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말로만 '믿습니다, 회개합니다.' 기도하고선

그 좋다는, 돈으로 사려면 수조 원으로도 못 살 천국행 티켓을 얻겠다는 마음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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