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된 동문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by 봄솔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말을 할 때 늘 신중해야 합니다. 작은 말실수라도 때로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돌이키기 어려운 문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도서관 이용법을 배우고 나서, 직접 책을 뽑아 옵니다.
표정이 꽃입니다.

“선생님, 이 책 반납해 주세요.”
“응, 빌려 가서 읽으려고?”
“네! 선생님.”
“아하, 그럼 대출해 달라고 해야지.”
“아, 맞다! 대출이요.”

대출과 반납을 혼동해도 귀엽기만 합니다.
우리 아이가 말 배울 때도 배꼽 잡는 실수를 곧잘 했지요.

세 살 무렵부터 혼자 재우기 시작했는데, 핑곗거리만 생기면 안방으로 돌진해 왔습니다.
어느 날 저녁, 밖에서 약간 큰 소리가 들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베개를 안고 울먹이며 문턱에 발을 올려놓고 말했습니다.

“엄마, 이따 그거 무슨 소리였어?”

또 한 번은 천둥 번개가 몰아치던 장마철 밤이었는데, 놀란 아이가 이불속으로 쏙 파고들며 말했지요.

“엄마, 천 개 번 둥 너무 무서워...”

이런 아이들의 말실수는 웃음을 주지만, 말이 항상 가볍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책임을 져야 하는 도구가 됩니다. 사적인 대화에선 실언이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공인의 말 한마디는 역사를 바꾸기도 합니다.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독일 통일의 도화선이 된 건 '말실수'였답니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부는 여행 자유화 법안을 발표했습니다.

동독 주민 누구나 검문소를 통해 외국으로 여행할 수 있다.

여행 사유 증명 없이도 신청하면 곧바로 허가된다.

이 발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부 대변인은 이 법안의 적용 시기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기자 질문에 답합니다.

“국경을 넘을 수 있습니까?”
“그럴 것입니다.”
“언제부터입니까?”
“지금 당장부터요.”

TV 생중계로 이 장면을 본 베를린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검문소는 열렸으며, 그날 밤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언 하나가 독일 통일의 불씨가 된 것입니다.

그 장면을 보며 당시 한국 사람들도 “우리도 언젠가 휴전선 철책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을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말실수는 여전히 뉴스가 됩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NATO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이름을 **'푸틴'**으로 잘못 불렀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전에도 윤석열 대통령을 전임 문대통령으로 부르거나, 김정은을 한국 대통령으로 지칭하는 등 말실수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이런 실수들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정치적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변수가 되기도 합니다.


말실수가 눈앞의 상황을 바꾼다면, 글의 실수는 오랫동안 영향을 남깁니다.
글은 보존되고, 복제되고, 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시금치는 철분이 풍부한 채소'라는 잘못된 상식은, 독일의 화학자 에리히 폰 볼프가 시금치의 철분 함량을 35.0mg으로 잘못 기록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실제 함량은 3.5mg인데, 소수점 하나가 잘못 찍힌 것이지요.
이 오차 하나가 시금치를 ‘철분 왕’으로 만든 셈입니다.


저도 글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습니다.
공고에서 문예반을 맡으며 교지를 만들었을 때 일이에요.
2500부를 찍어 축제 하루 전날 책이 도착했죠.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만족스럽게 읽어가던 중, 동문회 소식을 전하는 페이지에서
**‘동물회’**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포항에도 우리 학교 출신 동물들이 진출하여 매월 동물회를 연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동문회’를 ‘동물회’로 오타 낸 겁니다.
문예반 학생들에게 자장면을 사주며 ‘문’ 자 스티커를 7500장 만들어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페이지 펼치기, 자르기, 붙이기...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습니다.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껄껄 웃으시며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예전에는 ‘국군의 날’을 ‘군국의 날’로 오인쇄해서 신문사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어요. 동문들이 보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네요."

그 일이 있고 난 뒤로는, 글을 쓸 때 맞춤법, 오타, 인용 정보 하나하나 꼼꼼히 톺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안감은 늘 따라다닙니다.


말실수는 순간이지만, 엎질러진 물이라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글은 종이 위에 남아 그 영향력이 오래도록 미칩니다.

아이들의 말실수는 사랑스럽지만, 공인의 실언은 위기를 부를 수 있습니다.
작은 오타 하나도 사회적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과 글은 신중해야 하고, 정확해야 하며, 따뜻해야 합니다.
한 마디, 한 글자에도 그 사람이 담기니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