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사는 하루살이

--“하루살이 목숨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by 봄솔

“하루살이 목숨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짧고 덧없는 삶이라도 그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루살이조차 자신의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데, 우리라고 해서 매일을 허투루 보낼 수 있을까?


며칠 전, 베란다에서 키우던 화분을 거실로 옮겼다. 계절이 바뀌어 식물들에 더 따뜻한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의 손님이 함께 들어왔다. 이름 그대로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는 작은 날벌레, '하루살이'였다.

벌레를 유난히 싫어하는 아내에게는 반갑지 않은 존재였다. 어제저녁, 창가에서 책을 읽던 아내는 “저놈 또 나타났네!” 하며 벌떡 일어섰다. 나름 재빠르게 녀석을 쫓았지만, 하루살이는 작은 날갯짓으로 이리저리 피하다가 이내 어두운 구석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상해하는 아내에게 나는 웃으며 “겨우 하루밖에 못 사는 벌레야. 불쌍하지도 않아? 그냥 둬요”라고, 위로했다.

그 말을 하며 나도 문득 궁금해졌다. 하루만 사는 생명이라면, 그 모양은 어떨까? 하루 동안 무얼 하며 살아갈까?

다음 날, 식탁 위에 음식을 놓아두고 한참 기다린 끝에 잠시 앉은 하루살이 한 마리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깨알만큼 작은 이미지를 확대해 보니, 연약하지만 머리와 눈, 다리와 날개, 꼬리까지 모두 갖춘 완전한 하나의 생명체였다. 짧은 생애를 사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정교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짧은 생명'이 ‘어설픈 생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루살이나 70년, 80년을 살 수 있다는 앨버트로스도 날며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몸의 기능은 똑같다.

사실 하루살이는 알에서 깨나 유충과 아성충의 단계에서 2, 3년 가까이 살지만, 성충이 되어서는 보통 24시간 내로 죽는다. 성충이 되어 하루살이가 짧은 삶을 산다고 하여 아무렇게나 사는 것도 아니다. 다른 날것과 마찬가지로 부지런한 날갯짓으로 짝을 만나고, 알까지 낳고 스러진다. 너무나도 짧은 삶을 사는 것이라서 무언가를 이룰 시간도 없어 보이지만, ‘하루’가 전부이기 때문에 그 하루를 온전히 살며 생의 마지막 과업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렇게 짧고도 충실한 하루살이의 삶을 보며 문득 생각해 본다. 우리의 삶은 하루살이에 비하면 영원에 가깝지만, 우주의 시간으로 본다면 『금강경』에 나오는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구절처럼, 이슬 같고 번개 같아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짧은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따라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루살이가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의 저서 월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삶의 진정한 가치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소로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였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이 질문은 하루살이가 전하는 메시지와 매우 유사하다. 하루살이가 온전히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듯,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쓸지는 우리의 몫이다.

하루살이와 '오늘'

우리의 일생은 하루살이에 비해 영겁과도 같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의 시간 또한 우리가 체감하는 것만큼 길지 않다. 하루살이가 살아가는 24시간을 다르게 말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끝까지 의미 있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점이다.

하루살이가 살아가는 방식은, 하루가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을 완수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그 짧은 순간을 ‘완전하게’ 살아내려는 자연의 법칙과 같고, 우리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만약 매일을 '완전한 하루'로 산다면, 삶은 비록 짧아도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살이의 삶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그 존재는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아낸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데 있어 더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하루살이가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다면, 우리는 그 하루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목적과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루살이는 그 짧은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오늘을 인생의 전부로 여기며 살고 있나요?” 그 질문은 우리가 매일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중요한 성찰을 요구한다. 하루살이의 존재가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다.

오늘 아침,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또 한 마리의 하루살이가 눈앞을 이리저리 날고 있다. 하루만 사는 존재라 불쌍하다는 생각은 말뿐이었다. 눈앞에 나타난 하루살이는 이제 더 이상 작은 벌레가 아니라, 내게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묻는 존재였다. 재빨리 손을 뻗었지만, 허공만 움켜쥔 채 녀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손바람에 놀라 도망친 그 하루살이는 어딘가에서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신의 마지막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묻고 있을지 모른다.

"당신은 오늘을 인생의 전부로 여기며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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