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 생활의 힘든 마음이 포근하게 데워지는 시간
벌써 지난달의 일이 되어버린, 내 미국 가족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려본다. 한국의 설날, 추석이 대명절이듯이, 미국에서는 적어도 일 년에 두 번, 땡스기빙(Thanksgiving)과 크리스마스는 온 가족이 합체하는 날이다. 한국에서는 명절이면 귀성객들로 고속도로가 꽉 막히듯, 미국에서는 이 시기에 하늘길이 비행기로 분주해진다. 한국보다 거의 100배에 가까운 넓은 땅에서 살아가는 미국인들에게 주요 이동 수단은 자동차 아니면 비행기다. 우리나라처럼 기차나 고속버스가 편리하고 촘촘하게 연결돼 있지도 않고, 비행기로도 서부에서 동부까지 이동하는 데 8시간이나 걸리니 명절 이동은 그 자체로 큰일이다.
우리 부부는 뉴욕 시티에 살다가 코로나 직전인 2019년, 뉴욕 바로 위에 붙어 있는 코네티컷 주 노워크(Norwalk)로 이사 왔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이 지역은 뉴욕, 그랜드 센트럴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비교적 조용한 교외 도시다. 이곳은 미국인 남편의 고향이기도 해서 시댁과 시동생들 모두 근처에 살고 있다. 남편은 삼 형제 중 첫째이고,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막내 시동생 부부의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와 이혼하신 뒤, 새 시어머니와 함께 코스타리카에 집까지 지으신 후 거기서 은퇴 생활을 즐기고 계신다. 미국에서는 은퇴 후 따뜻한 나라로 이주해 사는 경우가 꽤 흔한데, 특히 코스타리카는 아름다운 자연에 저렴한 물가, 의료 시스템도 잘 돼있고 미국과도 멀지 않아 많이들 내려가 산다고 들었다. 두 분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미국에 오시는데, 늘 더운 나라에서 지내시다 갑자기 추운 온도를 대하시면 건강에 무리는 없을지 조금 걱정이 된다. 시어머니 역시 이혼 후 오랜 시간 함께한 남자친구와 살고 계신다. 백인 할머니와 흑인 아저씨의 모습. 처음에는 나 역시 조금 어색해했지만, 이제는 여느 부부처럼 자연스럽게 보인다.
한국의 정서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일지 모르겠지만, 시아버지 부부와 시어머니 커플이 한자리에 모이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이, 서로 반갑게 포옹으로 인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신다. 모든 미국인 가족이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시댁 가족에게는 아주 평범한 일상이다. 아마 각자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인연을 만나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어서일 것이다.
이런 장면을 처음 접했던 경험은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학 시절, 학교를 마친 뒤 프리랜서로 약 1년간 일했던 회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였던 린다와 유난히 친했는데, 그 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 자리에는 린다의 남편과 두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친아빠까지 함께 있었다. 모두가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당시의 나에게 꽤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의 경험이 미국식 가족 문화에 서서히 익숙해지기 시작한 첫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우리 가족으로 돌아와서, 시아버지 부부, 시어머니 커플, 우리 부부, 그리고 두 시동생 부부까지 모두 모여 허그와 웃음으로 크리스마스 파티가 시작됐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화려한 크리스마스 테이블과 트리, 장식들을 보니 마음속에도 빨강·초록 전구가 하나둘 켜지는 기분이었다. 막내 시동생의 와이프는 인테리어 감각이 뛰어나 테이블 세팅, 이름표 붙인 자리 배치, 크리스마스 장식 하나하나까지 그녀의 센스가 보였다. 애피타이저 테이블에는 치즈, 올리브, 견과류, 새우와 칵테일소스가 놓여 있었다. 그야말로 식전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들이다. 그중에서도 칵테일소스에 찍어 먹는 새우는 나의 최애 애피타이저이다. 하지만 메인 요리를 위해 적당히 참아야 한다.
한국처럼 처음부터 앉아 얘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은 채) 각자 와인이나 음료잔을 들고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파티는 서서히 무르익었다. 막내 시동생이 “딩딩딩딩” 장난스러운 소리를 내며 음식이 다 됐음을 알렸고, 우리는 각자의 이름이 적혀 지정된 자리의 접시를 들고 뷔페 쪽으로 가 줄을 섰다. 가지 파마산, 치킨 파마산, 숏립, 마늘빵…. 시동생의 요리 솜씨에 감탄하며 몇 번이나 접시를 채웠는지 모르겠다. 이래서 명절이 지나면 ‘어떻게 다시 다이어트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지. 아무리 맛있어도 결국 나는 한국인인지라, 잡채나 동태 전, 오이소박이가 은근 그리웠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부른 배를 달래며 미국 가정에서 흔히 하는 Trivial Pursuit라는 게임을 했다. 각 커플이 팀을 이루어 주사위를 던지고, 지리·역사·예술 등 여섯 분야의 퀴즈를 맞혀 모든 조각을 모은 뒤 중앙의 최종 문제를 맞히면 이기는 상식 퀴즈 보드게임이다. 영어로 된 문제들이 쉽지는 않았지만, 시민권 필기 공부할 때 외웠던 미국 지리 문제 하나를 내가 혼자 맞힌 순간은 꽤 뿌듯했다.
게임이 끝난 뒤에는 파티의 하이라이트, 선물 교환 시간이 이어졌다. 트리 아래에 미리 쌓아 둔 선물 더미에서 가족 각자의 이름이 적힌 선물을 찾아 주고받았다. 우리나라처럼 선물 하나만 주는 것이 아니라, 과자와 초콜릿이 든 큰 쇼핑백, 조금 더 특별한 선물이 들어 있는 작은 쇼핑백, 기프트 카드까지 서너 가지 선물을 준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소비의 천국 미국은 통장이 마이너스여도 물건을 사게 만드는 극도의 물질 사회로 모두가 ‘소비만이 살길이다’고 외치는 듯하다. 선물 포장지와 박스,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또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그것들이 결국 가난한 나라로 보내진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즐거운 파티 한편에서 씁쓸한 마음도 함께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도 한가득 쌓인 선물 꾸러미들. 초콜릿, 쿠키, 스토어 기프트 카드, 오가닉 올리브 오일…. 선물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시동생은 내가 해물을 좋아하는 걸 알고 캐나다에서 직접 배송받은 연어, 조개, 참치 같은 냉동 생선을 선물해 주었다. 참 사려 깊은 사람이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남편이 응원하는 야구팀 피츠버그 파이리츠(Pittsburgh Pirates) 선수의 이름이 새겨진 져지 셔츠를 우리 둘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디저트까지 먹고 선물도 주고받은 뒤, 한두 커플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동생은 음식을 마음껏 싸 가라며 빈 용기까지 준비해 줬고, 나는 ‘지나치지 않는 선’까지 최대한 담아 왔다. 그렇게 며칠 동안 남은 음식을 먹고 나니, 지난주 한인 마트, H Mart에서 사 온 총각김치가 두 배는 더 맛있게 느껴졌다.
가까이 살면서도 일 년에 손꼽을 정도로만 만나는 미국 가족들. 부모와 자식보다 부부의 관계를 더 중심에 두는 미국 문화. 한국도 점점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 같지만, 아직은 명절이 특히 여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호스트가 손님을 맞이하는 날에 가깝다. 방문한 사람들은 남녀 구분 없이 먹고, 마시고, 즐긴다. 예전에 시어머니 댁에서 보낼 때도 나는 그저 손님으로 갔다가 손님으로 돌아왔다. 일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차려진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만 누리고 왔다.
올해도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메리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지나고 보니, 그저 고맙고 타지 생활의 힘든 마음이 포근하게 데워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