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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우주인 Feb 11. 2022

나는 항상 다섯시 반에 일어난다.

도시락과의 전쟁

나는 대중적 디자인을 판매하는 체인점 체계로 운영되는 꽃 회사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한다.  내가 사는 지역은 회사의 타겟층이 아니기 때문에 집에서 출퇴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지역들에 회사의 매장들이 존재한다.



단조로움을 잘 견디지 못하는 성격적 하자를 가지고 있는 나는.. 설상가상으로  직장생활에서 파생되는 인간관계 스트레스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은 비겁함을 보유했다.  나의 하자와 비겁함을 잘 돌보고 유지하기 위해...일하는 날마다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3곳의 매장에서 일한다. 거리두기와 뛰엄뛰엄이 나만의 슬기로운 직장생활의 비결이다. 먹고 자고 일어나서 출퇴근하고 가까스로 가족들의 챙기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시어 빠진 파김치 워킹맘.  직장생활에서 파생되는 스트레스에 나를 그대로 버려두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의 첫 번째 조항이다.


대단히 불편한 호주의 대중교통 시스템 덕에 출퇴근 시간이 꽤 길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회사라는 조직생활에 몸담는 것이 끊임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해내지 못했었다. 부양가족이 생기고 심경의 변화를 맞땋뜨렸던 마흔쯤에...  세상에 대한 생각들도 삶에 대한 자세도 손바닥을 뒤집듯 바뀌었다. 주체적으로 팀을 이끌어나가는 것보다는 주체적인 팀 멤버를 서포트하는 것이 맘 편하다. 퇴근 후에 회사일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나의 직장생활에 만족한다. 사서고생 아이콘이었던 나는 그럭저럭 흘러가는 대로 사는 법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다.


이미 40대인 내가  내에서 막내이다. 워킹맘들로 구성된 직장동료와 상사들의 이해와 배려도 내게는  힘이 된다.  최첨단 테크놀로지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상상도   없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느림이 미덕인 곳이다.  갑작스럽게  팬데믹 세상이 된지 3년이 넘었으나 아직까지도 언컨텍트 세계에 준비되지 못한  예전으로 돌아가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달팽이(?)들이 많다. 다행히 인터넷 시스템이 단단히 구축되어 있기에  먹고사는 일에 대한 걱정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속한 조직에 감사한다. 파김치 워킹맘인 내게는 밥벌이의 조건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스럽게 아이 아빠도 비슷한 시기에 그동안의 길고 길었던 방황(?)을 마치고 지역 공무원으로 이직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거의 모든 것이 180도 다른 우리 부부지만. 서로의 삶의 스텝이나 터닝 포인트의 시기가 같은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나는 항상 다섯 시 반에 일어난다.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4개를 싼다. (나를 포함한 4 가족)  비가 오는 날엔 양말까지 젖어도 꿋꿋하게 유모차를 밀어 버스를 타고 둘째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준다. 제대로 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릴 시간도 없어서 세븐일레븐이 단 15초 만에 만들어주는 커피를 손에 들고 개찰구 앞에 있는 벤치에 앉는다.


출근 시간에 맞는 기차가 도착하기 전 단  10분!


소중하고 달콤한 내게 주어진 10분의 시간을 즐긴다.


하루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편의점 커피


아이 둘이 학교에 가고 어린이 집에 가는 평일 며칠은 시드니 시티에서 일한다. 그런 날은 남편이 첫째를 맡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를 데리고 출퇴근 가능한 지역에 회사의 매장이 있는 곳은 시티 한 곳이다.


시티 지역 손님들은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 퇴근시간이 시작되는 4:30경에 몰리기 시작하는데... 둘째 아이를 어린이 집에  제시간에 데리러 가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4:30분부터 내게 긴장과 다급함이 밀려온다. 자주 매장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는 다섯 시 언저리쯤 문을 두드리는 손님들...  냉정히 그들을 돌려보내고, 기차에 몸을 싣는다.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나는 항상 조마조마하다. 어린이집이 문을 닫기 전에 간신히 도착한다. 어린이집 근처에서 30분마다 있는 집에 가는 버스 시간표에 맞추어 버스를 타기 위해 파김치 엄마는 유모차를 미는 100미터 육상선수로 다시 태어난다. 아이는 어느새 유모차에 타기에는 너무나 커져버렸다. 타고 싶지 않아서 저항하는 아이를 몸으로 프로 레슬러가 되어 제압해 유모차에 태워야 하는 날은 꽤 힘에 부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와의 출퇴근이 3시간이 훌쩍 넘어버린다.


제법 커진 아이랑 몸싸움을 하다 보면 몸이 지치기도 하지만 미안한 맘이 들 때도 많다. 가끔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유모차에 잠이 들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느새 커져버린 몸을 작은 유모차에 구겨 넣어도 잠이 들만큼...  아이도 나만큼 긴 하루를 보냈나 보다.


잠든 둘째를 데리고 집 앞 골목길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다 보면 차를 하나 살까? 하다가도 우리 집은 물론 일하고 있는 매장들의 주차 상황을 생각해보면 고개를 흔들게 된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다시 집으로의 출근한다. 손을 씻자마자 냉장고 문부터 연다.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하면 아이 아빠가 첫 해를 학교에서 데리고 집에 도착한다. 함께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씻기고 잠 옷을 입히고 나면 아이 아빠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 사이에 부엌을 정리하고 아이들과 함께 잠이 든다.라고 쓰면 평화로운 문장이지만, 글 속의 평화로운 서술과는 다르게 저녁시간의 실상은 고성과 울음, 가족 구성원 4인의 분노의 폭발과 화해가 무한 반복되는 신개념(?)의 전쟁영화이다. 누가 누가 목청이 큰가인 장기자랑이자 경연대회이기도 하다. 고성이 없으면 진행이 안 되는 출근 준비, 등교 준비인 아침시간과 데칼코마니 드라마!


노는 데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 아빠는 아이들의 영웅이자 친구이다.  아이들과 놀고 다투는 육아활동에만 전념하기 때문에 가사노동에 참여할 여력이 없다.  그리하여 나 혼자 온 가족이 함께하는  전쟁 영화 제작 중간중간에 빨래 활동이나 빨래 개기 활동, 집 정리 활동을 시도하다 보면 분노 폭발 씬이 그 날밤 전쟁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솔직히 부엌 정리는커녕 얼굴에 모하나 발라 보지도 못한 채 아이들을 재우다 울다 웃다가 그렇게 잠이 든다.  


나는 항상 다섯 시 반에 일어난다. 그리고 도시락 4개를 싼다.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 일을 하는 사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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