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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이온 Oct 13. 2023

인문학 더하기 교회사 1

크리스트교를 역사학적으로 살펴보면 어떤 느낌일까?

 살다보면 세상에는 참 다양한 가르침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무실에서 일을 할때도 주변 선배 직원분들이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금언같은 조언들을 해주시기도 하고, 동아리 활동 새로 기획하려 해도 주변 친구들이나 인생의 선배들이 기획에 관한 다양한 가르침을 공유해주신다. 심지어 최근 물가상승의 여파로 늘어난 식비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고찰할 때도 유튜브의 가르침을 구하기 마련이니, 가히 인간의 삶은 가르침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리라.


우리는 누구나 고민하며, 어디선가로부터 가르침을 구하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진다. 수백명의 사람 각각에 필요한 가르침은 모두 다르기 마련일텐데, 어떻게 전세계 수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친 가르침인 종교가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모름지기 인류가 수천년간 따르거나 신봉해온 가르침에는 대체적인 공통점들이 있기 마련인 듯하다. 동아시아의 성인이자 큰 스승인 공자는 춘추전국시대 동안 고통받던 사회 속에서 태어나 만인의 삶을 구제하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역시 세계 곳곳에 큰 가르침의 영향을 미친 석가모니도 실존 그 자체에 기인한 인간 삶의 고통을 구원하기 위해 구도의 길을 나섰고, 소크라테스 역시 전통적인 헬라인들의 가치관이 붕괴되며 도래한 윤리의 아노미 상태와 소피스테스들의 혼란스러운 논쟁을 정리하기 위한 기나긴 토론을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성인들의 가르침은, 모순적이게도 인류 사회의 고통과 고난 속에서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며 인류의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그 생을 이어오며 수많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친 것이다. 인류의 또 다른 성인인 예수의 도전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삶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계 4대 성인 그림. 맨 왼쪽부터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모니, 공자


 사실 필자는 신학과 크리스트교에 대해 거의 문외한인지라 예수의 삶의 궤적과 그 목적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소한 역사학적으로 크리스트교가 지중해 세계에서 급격하게 팽창하기 시작한 시기는 로마 제국이 극도의 혼란에 시달리고 있던 군인 황제 시대에 이르러서였다는 점이다.


 군인 황제 시대는 소위 말하는 "3세기의 위기"라고 일컬어지며, 심각할 때는 고르디아누스 1세 황제의 제위가 단 15일만에 끝날 정도로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군사적 혼란을 겪던 시기였다. 약 49년간 황제가 18번이나 바뀌었으며, 로마 제국 각지에 주둔되어 있던 군단들이 각자마다의 황제들을 옹립하며 반역을 일으키는 짓을 밥 먹듯이 했으니 당시 민중들의 삶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알 만하다.


로마제국의 "3세기의 위기" 는 내부, 외부적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중앙에서는 군대와 정치인들의 심각한 분쟁과 내전, 외부에서는 게르만족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침략 등 만만찮은 문제들이 산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와중에 일단 민중들은 고위 계층의 보잘 것 없는 싸움과 외세의 침략 속에서 극심한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것이며, 분명 그들의 고통을 구원해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서기 100년 경, 제국 전체 인구 6천만명 중 크리스트교 신자 수는 대략 7천명 언저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위 말하는 예수 탄생 이후 100년이 지나도 크리스트교 신봉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서기 200년 경에는 20만명 정도로 늘어나고, 군인 황제 시대가 열린 3세기 중반에는 신자 수가 500만명 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해버린다. 1~2세기는 소위 말하는 팍스 로마나의 시대, 즉 평화와 번영의 시대이다. 그런데 이러한 번영의 시대에는 크리스트교 신자의 수가 거의 늘어나고 있지 않다가 이후에 열린 끔찍한 혼란의 시대에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점은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그렇게 크리스트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이르러 합법적인 종교로 공인되었고, 이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에 이르러 로마의 공식적인 종교, 즉 국교로 선포되기에 이른다


"기독교의 승리" Tommaso Laureti, 1582


 필자는 도대체 당시 고통 받던 민중들이 크리스트교의 어떤 면모에 반해 크리스트교를 신봉하게 됐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신학에 대해 정확히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예수의 어떠한 가르침, 또한 크리스트교의 어떠한 울림이 당시 고난에 시달리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들이 어떤 가르침이 그들의 가슴속에 발자취를 남긴 것일까?


 이번에 필자는 다양한 인문학 공부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이곳에 교회사 세션을 소소하게 개설했으니 혹시라도 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자유롭게 참여했으면 한다.

연락 : https://open.kakao.com/o/sJCxL7Bf 혹은 0102122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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