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온이 개설한 플라톤 세션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플라톤 철학을 짚기 위해서는 간단히라도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삶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명실공히 서양 철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인물이며, 최근에는 소크라테스를 상표명으로 삼은 배달음식 업체도 생길 정도로 그 인지도가 대단히 높다.
아고라(Agora)의 상상도. 아고라는 그리스인들의 상업활동을 비롯한 문화적, 지적 교류가 이루어지던 장소였다.
소크라테스는 소위 말하는 한량이었다. 물론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조금은 있었다고 하지만, 평소에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을 하거나 가산을 관리하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했다는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그런 탓일까, 그의 아내인 크산티페가 악처로 소문난 이유도 일응 안 하고 놀러만 다니는 소크라테스를 핀잔주고 구박하기만 했기 때문이라는 가설 아닌 가설도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정말로 놀러 다니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는 나름대로 "지적인" 활동을 하며 아테네 인들이 정신적으로 깨어있도록 만드는 장구한 철학적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활동은 무엇이었느냐? 바로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캐묻거나 비판하고 다니며 아테네 사람들을 귀찮게 구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지적인 활동은 처음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유명한 소크라테스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뒤 독배를 마시고 사망한 뒤에서야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그는 다양한 방향에서 후손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지만, 역시 그가 남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은 명백하다.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행복"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묻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2. 행복이야 말로 삶의 목적이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왜 사는 거지?' 사실 이러한 질문은 인류가 지구상에 태어난 이래로 끊이지 않고 제기된 질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소피스트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이러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아테네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다. 스파르타와 치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후 다양한 정치적인 혼란을 겪었으며, 심지어 민주정을 농락하던 참주들을 몰아내고 민주정을 수복한 지도 얼마 되지 않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소피스트들이 난립해서 당시 그리스인들이 당연하다고 수용해 온 다양한 윤리적, 전통적 가치들을 부정하는 등 정신적인 아노미 상태도 나타났다고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담긴 그림. 이 전쟁에서 그리스인들은 골육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는다.
하지만 인류의 지성은 이러한 혼란한 시기에 꽃 피워왔다. 동양인들의 정신을 오랫동안 달래온 유학도 춘추전국시대라는 지극한 혼돈의 시대에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도 3번이나 참전했다고 전해지며, 12인의 참주정이 유지되던 때에도 정치적 분쟁 때문에 거의 죽을 뻔했었던 경험이 있다. 그는 이러한 세상의 풍파와 소피스트들이 난립하며 자신이 사랑하던 아테네의 전통과 법이 문란해지는 것에 대해 대단히 심각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드디어 '나는 왜 사는 거지?'라는 질문을 한 단계 발전시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