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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Jun 06. 2023

하늘나라에서 보내온 할머니의 편지

세상은 공평하지만은 않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

   

사랑하는 손주 xx야!

너도 이젠 노년기에 접어들었구나. 그동안 온갖 역경과 싸우며 용케도 여기까지 왔네. 돌이켜보면 네가 처했던 하나하나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고 시련이었어.  

   

아비어미가 엄연히 살아 있건만, 애들이 일곱이나 되는 고모네서 눈칫밥을 먹으며 학교 다니던 그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 사춘기라 감수성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건 네게는 사치에 지나지 않았지.      


매번 수업료 낼 돈이 없어, 50리 길을 걸어 종조부님을 찾아가, 당숙모의 눈을 피해 손을 벌릴 때마다 할미는 가슴이 먹먹했단다.

수업료를 받아 들고는, 차비가 없어 여주에서 이천까지 비포장도로를 터벅거리며 걸어왔지. 심술궂은 자동차들이 흙먼지를 일으키고 지나가면 눈앞을 가리는 먼지 속에서 콜록거리며, 커서 반드시 돈 많이 벌겠다며 이를 악물 때는 이 할미 억장이 무너졌단다.  

    

그런 것 못지않게 너를 괴롭힌 건 몹쓸 신경증이었지. 온갖 잡념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네 정신은 언제나 구정물처럼 혼탁했어.

책을 펴 놓은들 무슨 공부가 되겠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에 쫓기다 보면 정신은 온통 딴 세상을 헤매고 있는 걸. 정신을 차려보면 앞에 놓인 책은 한 줄도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 뿐. 그래도 용케 1등을 놓친 적이 없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공부마저 못했다면 친구들에게 놀림께나 받았을 게다. 애들이 신나게 놀 때 너는 어깨를 늘어뜨린 채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듯 매가리가 없었으니.      


고맙게도 수원 선생님의 후원으로 고등학교는 마쳤지. 그러나 대학은 꿈꿀 수 없었기에 친척이 하는 명동장에서 사환 노릇을 했지만 대학진학을 꿈꾸기엔 너무나 동떨어진 길이었지. 한 달 월급이 단돈 1,800원. 그때 돈으로 커피 5잔 값이었을 거야.

 그 돈을 모아 등록금을 마련할 생각을 하니, 대학은 신기루를 쫓는 거나 다름없었지.     

아무 대책 없이 명동장을 뛰쳐나왔을 때는 먹고 잘 곳도 없이 어쩌려고 저러나 이 할미 가슴이 콩알만 해졌단다.


그래도 너는 해냈어. 맨땅에 헤딩하며 돈 벌고 공부해 스카이대 영문과 합격증을 거머쥐었으니.

명동장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지.

그래도 그들은 네가 과로와 영양실조로 노상에서 쓰러져가며 해냈다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했을 거야.

장하다! 내 손주야!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구나. 온몸을 던져 갖은 역경을 헤쳐왔는데, 이 나이 되도록 별로 이룬 게 없다고 허탈해하는 네 모습이.      


xx야!

그럴수록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살아보면 세상이 야속할 때가 많아. 인간사 노력한 것만큼 보상이 따르는 건 아니란다.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눈을 감지 못하고 죽는 이들도 적지 않은 걸.  그래도 너는 연금으로 여생을 꾸려갈 수는 있지 않니. 그걸로 위안 삼으려무나.   

 

진부한 얘기 같지만  너도 그 나이 됐으니 알만 할 거야. 부가 행복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마음을 잘 다스리면 상처받은 네 영혼도 평온해질 거야. 그리곤 얼마든지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암, 그럴 자격이 충분하고말고. 


끝으로 이 할미는 하늘나라에서 언제나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라. 어렸을 때 너를 돌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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